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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Oct 03. 2022

라디오 사연 당첨 잘 되려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30만원어치 문화 상품권 / 타월세트 4세트/ 세제 세트/ 오리훈제 세트/ 쇼핑몰 상품권 20만원어치/ 만두세트/ 원두 커피세트 2통/ 수제세트/ 도서상품권 5만원/ 떡국세트/ 보이차 세트/ 밀폐용기세트/ 차량용방향제/커리세트/ 고래사 어묵세트/ 샤워필터기/ 홍삼 2박스/신세계 상품권 10만원/ 쌀 20키로  등등                


몇 해 동안 라디오에 사연을 응모해서 받는 상품 내역이다. 돈으로 환산하면 제법 큰 액수다.      

차를 몰고  친구를 만나러 시내를 나가다가 습관적으로 틀어놓은 '이루마의 골든 디스크'에 내 사연이 나오는 걸 듣고 놀래서 순간 핸들을 움찔거렸었다.      

기분이 묘했다.  이루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사연을 전국으로 들려주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했다.      

이게 뭐라고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들떠 싱글싱글 웃고 다녔다.      

  '이루마의 다이어리'라는 코너에 글 사연들을 들으며 재미있기도 했었고,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겠다 생각해 가볍게 보낸 사연이 뜻밖에 깜짝 선물처럼 덜컥 안겨져 더 들떴던 것 같다. 그냥 읽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한데 상품도 준단다.      

그렇게 내가 라디오 사연으로 처음 받은 상품이 신세계 5만원 상품권이었다.      

이게 정말 신세계였다.  눈이 빤짝빤짝 떠졌다. 오... 이게 돈이 된다고?      

내가 쓴 조악한 글에 누군가 대가를 지불했다는게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당장 시작했다. 라디오 어플을 깔고 일일이 들어가 상품 내역을 확인 했다. 다양한 연령의 청취자가 많은 싱글벙글쇼가 상품이 가장 두둑했고 서경석 양희은의 여성시대도 제법 주는 상품 종류가 많았고, 이루마 라디오도 쏠쏠했다. 잿밥에 더 관심이 갔다.      

어떤 글들이 당첨 됐나 사연글들을 들어봤다. 몇 번을 들어 보니 뭔가 패턴이 보였다.      

싱글벙글쇼나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글솜씨가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웃기는 사연이면 당첨 확률이 높았다.      

사실 내가 보낸 글 중에서 제일 짧고 가볍게 쓴 글이 웃기다는 것만으로 무려 문상 20만원을 받았다. (가르치는 애가 백설공주 영어 이름이 신데렐라 아니냐고 황당한 이야기를 해서 그런 에피소드 몇 개를 넣었더니 되더라)     

서경석 양희은의 여성시대는 청취자의 연령층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신파가 들어간 감동적인 사연이 많았다. ( 세 번이 당첨 됐는데 내 삶의 고생담이 잘 걸리더라) 이루마의 골든디스크는 조금 세련되고 센티멘탈한 이야기들이 잘 뽑혔다. (한 5번 정도 걸렸다. 발레 배운 이야기, 아이들과 자전거를 처음 배운 이야기, 대학교때 만난 설레는 남자이야기 등등 )      

적을 알고 나를 아니 백전백승이었다.      


막내랑 추억도 쌓을 겸 아이 어릴 적부터 백일장에 종종 데리고 갔다. 큰애는 질겁을 하고 싫어 했지만 막내는 제법 흥미를 보이며 잘 따라 다녔다. 조막만한 손으로 끙끙거리며 원고지에 뭘 그리 적는지 창피하다고 나한테 보여주지도 않고 한껏 몸을 움츠리고 써댔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필력도 제법 있었는지 백일장 나가는 족족 아이가 상을 받았다. 부모로서 기쁘기 그지 없긴한데 문제는 나였다.      

초등부와 성인부로 나누어진 백일장마다 나는 번번이 떨어지고 아이는 크고 작은 상을 받으며 책에까지 실렸다. 처음엔 내가 걸린것 보다 더 큰 기쁨이었는데 3번을 나간 백일장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다보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중학생이 된 아이와 같이 간 대학교 백일장에서 또 떨어진 나를 막내는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며 자기가 받은 상을 숨겼다.(요놈이 내 웹소설을 비웃던 그놈이다)  자식이라도 자존심이 상했다. 내 자존감도 조금씩 바닥을 쳤다.      

조선시대 문장가 박지원도 그당시 조선 선비들이 천박한 문체라고 그렇게 비난했다는데 내글도 알아주는 누가 있겠지..  조엔 롤링도 출판사에서 수없이 거절 당했잖아 (해리포터 빠순이 막내가 어디 감히 조앤롤링이랑 나를 비교하냔다) 스스로 허그해도 자존감이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다.               

그쯤에 라디오 사연이 당첨 된 거였다. 그래서 내가 더 들떴던거 같기도 하다. 뭐라도 인정받은 느낌...  장르가 다르고 매체가 다르면 어떠랴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좋아하고 인정해줬다는게 중요했다. 뭐라도 계속 썼다는 게 중요했다. 백일장 심사위원들에겐 눈길을 끌지 못했던 내 글이 라디오에선 제법 먹혔는지 서경석 양희은의 여성시대에서는 내 글에 대한 문의가 빗발쳐서 라디오 홈페이지 메인에 글을 올린다는 담당자의 공지도 올라와 있었다. (상품 언제 오나 여성시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내 글이 올라와 있어서 너무 당황하기도 했고 이런 경우도 있나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 뭐라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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