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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Oct 01. 2022

웹소설 작가는 아무나 하나  

조회수가 0 입니다요

1회 21

2회 16

3회 5

...

17회 2

18회 0     

이것은 무료로 올린 내 웹소설의 조회수 되시겠다.     

처음에는 올리자마자 조회수가 막 올라가길레 이것봐라? 입꼬리도 위로 스멀스멀 올라갔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빠르게 조회수가 내려가더니 마지막 화는 아무도 읽지 않았다.

뭐야 이거? 왜이래?

하루에도 수십 개의,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무료 웹소설이 올라오는 현실을 제대로 몰랐던 나는, 내가 쓴 로맨스 소설이 사람들을 확 끌어당기며 엄청난 조회수를 자랑할 줄 알았다.     

‘이러다가 막 드라마 하자고 하는 거 아냐?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되면 하루에 얼마를 벌 수 있을까’     

 유명한 웹소설 작가가 되어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그런데 조회수가 0이란다 나는 처참한 조회수에 당황스러웠고 불쾌했다.

아 정말 이 소설은 갈수록 재미가 있고 더 흥미진진한데.. 요새 애들은 진짜 성격 급하네 끝까지 좀 읽어 보라고!!!

내 글이 문제가 아니라 진득하지 못 한 젊은 독자들이 문제였다 ...... 고 생각했다.  

    

"불면증같은 소리 하고 있네 "  

  

조회수 0을 기록하던 내 웹소설 도전기의 시작은 불면증 때문이었다.

머리만 댈 곳이 있으면 아무대서나 쉽게 잤고,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한숨 자고 나면 개운해졌던, 그래서 ‘잠보’라는 별명을 가진 내가  50이 넘으면서 이유모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12시가 넘어 까무룩 잠이 들면 몸에 무슨 벌레가 스스스 기어다니는 거 같아 소스라쳐 깨면 새벽 2시였다. 온몸을 구석구석 훑어 벌레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잠을 청하면 불쾌하게 깨 버린 뇌가 더 이상 잠을 데리고 가지 못했다.

그러고 나면 캄캄했던 하늘이 흐끄무레하게 밝아지는 걸 꼼짝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잠을 자지 못한 머리는  낮에도 맑지 않아 편두통에 시달렸고, 좀비처럼 흐느적거렸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이상증세였다.(나중에서야 이 불면증도 갱년기의 일종이라는 걸 알았다)

꼬박 2주일을 2시간 이상 자지 못 했다.

잠을 자지 못 한 지 2주 쯤이 되자 한계치에 다다랐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지겨웠고, 묵중한 머리에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이 뻑뻑해서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고 뱀이 온몸을 스멀스멀 기어가는 느낌에 손톱으로 긁어 댄 다리가 울긋불긋했다.

완경(폐경은 안 좋은 말이라고 완경이라고 하라더라) 이 되고나서 비로소 여자라는 성이 아닌 인간으로 온전히 살아가는 게 너무 기뻐서 신 나했는데  완경 후 호르몬 변화로 불면증에 시달릴 줄이야....     

그날도 거실을 서성이다 베란다 의자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봤다. 숨막히는 고층아파트 건물이 내 시야를 가렸고 간간히 새어나오는 집들의 불빛과 가로등이 몇 안 되는 별빛조차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무기력이 배꼽부터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우울증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배꼽에 힘을 꽉 줬다. 어금니를 꾹 다물고 인상을 썼다. 손을 쥐었다 폈다했다.     

우울증같은 소리하고 있네 잠 몇 주 못 잤다고 죽냐? 갱년기? 불면증? 웃기지 마

   

50에 갱년기 우울증으로 병원에 몇 달을 입원해서 가족들을 피폐하게 했던  엄마가 떠올랐다. 그 후로 엄마는 빠르게 시들어 갔고 80이 된 지금까지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사는 게 지겹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우울증도 유전이 된다는데 ...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물기 묻은 손으로 거울을  쓱 한 번 닦고 눈에 꽉 힘을 주었다.

‘불면증같은 소리 하고 있네 '

 14시간 분만으로 눈 핏줄이 터졌고, 비명으로 목이 다 쉬었어 .. 하혈로 죽을 뻔했고 ..애를 그렇게 두 명이나 낳은 나야! 충만한 도라이 끼가 올라오고 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앉아 미친 듯이  써 댔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이야기였지만 내 얄팍한 글재주가 드러나 부끄러울까봐 사는 게 바쁘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미뤄뒀던  로맨스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1회씩, 매회  5000자가 넘는 소설을 밤새도록 썼다. 물 한잔 마시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을 썼다.

 눈은 뻑뻑하고 어깨는 잔뜩 성이 났지만 머리는 되맑고 개운했다.

그렇게 15일 동안 18회를 썼다. 인쇄를 해 보니 거의 책 한 권 분량이었다.

이제 올리면 대박이 날 일만 남았다.     

뭐야 뭐가 이렇게 복잡해

배경사진을 설정하라고? 필명은 뭐로 하지? 영어씩으로 아님 그냥 촌스럽게 갈까

아 제목 ... 제목 생각을 못 했네 7080로맨스? 오.. 멋있는데 (제목부터 구리다는 걸 몰랐다. 이래서 무식이 용감하고 참담한거다)

드디어 올린다 아 심장 떨려 Enter!

한꺼번에 18회까지 다 올려버렸다. 폰을 옆에 끼고 계속 흘낏거렸다. 조회수가 올라갈 때마다 심장박동수도 올라가고 있었다. 두근 두근....두.......근......두.......근

어? 조회수가 왜 이래?     

“야 막내야 엄마 조회수가 왜 자꾸 내려가냐? 점점 올라가야 하는 거 아냐?”

“에휴, 내가 그랬잖아. 엄마꺼 재미없다고.. 내가 어려서 그런거라며? 와 그런데 이런걸 20명이나 읽었어? 대단하네”

이놈이.....

“있어봐 내가 도와줄게.”

그러고는 폰을 가져 가더니 뭐를 마구마구 누르고 있었다.

“너 뭐하냐?”

“뭐 어차피 엄마 글은 아무도 안 읽을테니까 다른 사람들 글을 깎아내려야지. 내가 별점 다 1줬어.”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별점테러하고 있다는 얘긴 것이냐 별점을 받지 못하는 이 엄마를 위해서?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고 너는 별점테러로 나를 건지는 것이냐

와.. 얘가 나를 두 번 죽이네

“야 당장 다 지워 미쳤어? 쪼꼬만게 어디서 이상한 것만 배워서....원래대로 다시 해 놔!”

투덜거리며 별점 테러를 중단한 막내는 한 번만 더 진지하게 읽어달라는 엄마의 비굴한 간절함을 무시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자존심이 팍 상했다. 돈 내고 보라는 것도 아니고 무료로 보라는 건데 그것도 안 보냐 괜히 씩씩거렸다. 도대체 실시간 1순위 베스트 소설은 어떤 걸까

일부러 비슷한 클리세가 될까봐 보지 않았던 베스트 웹소설들을 읽어 내려갔다.

이래서 내가 망했구나 나혼자 들떠 너무 맛있다고 꾸역꾸역 먹여준 내 글들이 토사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나는  재활용도 되지 못 할 쓰레기를 쓰고 있었다.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그 소설 이후로 더 이상 글을 올리는 걸 중단했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깔끔한 포기였다. 유료로 결재한 웹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 웹소설이 문학의 어느 범주에 들어가기는 좀 가볍고 천박한 문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린 글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경박하게 덤벼 든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내 조악한 글을 20명이나 읽어줬다니 그분들께 감사했다. 마지막 조회수가 0이라 전지적 독자시점을 쓸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쓰는 나’가 아닌 ‘읽는 사람’의 시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다시 쥐고 새로운 마음으로 쓰고 있다.

몇 번은, 아니 몇 십 번은  더 깨지고 부서지고 나를 갉아 먹다가 그것도 안 되면 인생은 공평하다는데 외모도 재력도 내려주지 않았다면 재능이라도 주셔야 하지 않느냐고 하늘에 누군가에게 삿대질하고 욕하겠지만 조회수가 100이 될 때까지 꾸준히 써 볼 작정이다.

18회를 올리고 거짓말처럼 나아버린 불면증에 내가 이겼듯, 이번에는 조회수와 거 하게 한 판 붙어야겠다      

오늘도 열심히 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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