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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15. 그 겨울 냥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 아침에 나갔다. 어제의 폭설과 한파로 길에 눈이 그대로다. 여기저기 얼어붙은 곳도 많다. 조심조심 도로를 건넜다. 일부러 도서관 주변으로 걸었다. 그쪽 경사가 다른 곳보다 완만하다. 오늘은 특히 비탈길을 피해야 한다. 옷을 이것저것 껴입어 추운 건 괜찮았다. 문제는 무거운 등산화. 걷는 게 힘들었다. 신발에 눈이 달라붙어 무게감이 장난 아니었다. 먼저 아롱이 쪽으로 갔다. 박물관 쪽은 여기저기 눈을 치워 걷기가 괜찮았다. 자작나무 길은 눈을 전혀 치우지 않아 말 그대로 발이 푹푹 들어갔다. 발이 빠져 질질 끌어야 했다. 힘들지만 걸어서 무사히 아롱이 밥을 두는 계단으로 가며 계속 불렀다. 아롱이가 나오지 않았다. 어제 귀요미 자리에서 물을 먹던 모습이 떠올랐다. 할 수없이 건 사료와 물만 두고 다시 박물관 뒷길로 나왔다. 귀요미 자리에 가니 조릿대가 푹 가라앉아 지난밤 폭설과 바람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눈의 무게 때문에 나무들까지 여기저기 난리였다. 귀요미는 다행히 은토끼님이 만들어준 집에서 눈을 털고 나왔다. 그 집에도 눈이 들이쳐 입구에도 쌓여 있었다. 캔을 줬으나 잘 먹지 않았다.

 아로와 아미가 있는 자리에 갔다. 부르니 뛰어나왔다. 가져간 스치로폼과 상자를 깔고 밥을 줬다. 애들이 좋아하는 걸 먹였다. 다롱이는 나중에 나왔는데 밥을 안 먹었다. 눈 무게에 눌려 집들이 많이 가라앉아 있는 걸살피다 오늘도 집 하나가 없어진 걸 알았다. 화가 났다. 쌍욕이 나왔다. 어떤 인간인지 정말 못됐다. 오늘 같이 추운 날 그런 일을 벌이다니….

 분수 주변 화장실과 연구소 미술관 주변 쓰레기통을 살피고 다녔으나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기. 아롱이도 못 찾았다. 토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토성 둘레길 눈은 많이 치워져 있었다. 누군가의 수고가 오늘은 고맙다 못해 미안하다. 천천히 돌았다. 날은 화창하고 하늘은 시리게 파랗다. 눈을 인 소나무들이 가끔 지나가는 바람에 눈발을 날렸다. 나름 아름다웠다. 다 돌고 돌아와 아롱이를 찾았다. 역시 없었다. 

                                                                                              - 21년 1월 어느 날의 일기 중에서


  여기까지는 인간의 사정이다. 인간도 이렇게 힘든 데 냥이들은 과연 어떻게 그 긴 겨울을 났을까? 자연 현상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가진 것 없는 고양이들 집마저 가져다 버리는 사람은 도대체 뭔가? 그 고약한 심사가 정말 미웠다. 눈밭에서 발견한 발자국은 제법 큰 남자의 것이었다. 사람 출입이 뜸한 이른 새벽 나와서 하는 짓이 힘없고 말도 못하는 고양이를 괴롭히고 집이나 가져다 버리는 일이라니! 알량한 그 집마저 가져다 버리며 죄책감이나 연민은 없는 걸까? 고양이들을 추위에 떨게 만드는 사람의 심리를 나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곳은 고양이 보호 협회 관리구역이고 공원측과 협의해서 설치한 집이니 가져다 버리지 말라고 경고문을 테이프로 붙이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공원 안에서 한겨울에 동사하는 고양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만큼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을에 태어난 새끼들은 거의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고양이 보호 회원들은 거의 다 안다.  

 나는 눈이 내리면 비가 내리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불안하다. 게다가 겨울이 깊어갈수록 나와 은토끼님의 걱정도 더해지고 있었다. 냥이들 집이 없어지는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만 날이 좋으면 아로가 어딘가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면서 부쩍 아로가 자주 자리를 비웠다. 그때만 해도 어떤 녀석이 아로를 꼬여냈는지 잘 몰랐다.

멀찍이 앉아 밥을 청하는 녀석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다.  봄 이후 '꼬짤' 대신 주변을 장악한 수컷으로 아롱이 두 번째 남편으로 추정된다.

 은토끼님은 매력적인 수컷 냥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에게 알려주셨다. 얼굴이 넙데데한 녀석이 대세라고. 중성화를 시키면 어렸을 적의 작고 조막만한 얼굴을 그대로 가지지만 중성화를 시키지 않으면 넙적한 얼굴로 변한단다. 그런 얼굴을 암컷들이 선호한다나? 그래서 우리가 아빠라고 불렀던 턱시도 냥이도 그렇게 넙데데한 얼굴이었나 보다.

 2월이면 구청의 중성화 사업이 재개된다고 했으니 그때는 무조건 중성화를 시키자고 은토끼님이 이야기하셨다. 나도 찬성했다. 아무리 봐도 공원은 새끼를 낳아 기를 곳으로 적당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로와 아미의 서식지는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노출되어 있어 위험을 느낄 정도였다. 사람과 짐승에게 어떤 해꼬지를 당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집도 가져다 버리면서 애들은 얼마나 학대할까 싶으니 마음은 늘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 무슨 수를 내긴 해야겠는데 뭘 어쩌지도 못하는 사이 겨울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미는 겁이 많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람들을 너무 잘 따라 우리를 걱정시켰다.


아로. 아롱이 새끼 네 마리 중 제일 예쁘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러나 1월부터 어딘가로  사라져 우리를 자주 애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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