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아직 11월인데 볼에 닿는 공기가 겨울처럼 부쩍 차가워졌다. 낮 동안에도 쌀쌀한 것을 보니, 올 해는 눈이 조금 일찍 내리지 않을까 싶다.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한 작업실에서 글쓰기 수업이 있다. 평소에 정말 애정 하던 작가였기 때문에 글쓰기 수업이 있는 수요일은 어느덧 나에게 특별한 날이 됐다. 일교차가 큰 가을에서 겨울로 향하는 문턱, 사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낮 동안에는 꽤 포근함이 감돌았었다. 낮에 찾아오는 봄 날씨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낮에만 따뜻함이 유지된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날씨에 민감한 이유, 그것은 글쓰기 수업은 서울에서 진행되는데 나는 전주에서 향한다는 것이다. 기온 변화가 심한 환절기이다 보니 나는 무엇보다 옷차림이 가장 고민이었다. 움츠러드는 아침에 집을 나서서 나른한 오후의 시간까지, 그 긴 시간 동안 겨울 외투를 들고 다닌다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런 이유로 몸이 힘들었기에, 이번 주에 날이 부쩍 추워진 건 나에게 걱정거리가 하나는 줄은 희소식이다.
글쓰기 수업은 시작에 앞서 각자 한 주동안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하게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한 친구는 오랜 친구를 만났던 이야기를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카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게 됐다면서 전 남자 친구와 같은 건물이라 혹여나 마주치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덧 글쓰기 수업의 주최자인 작가님 차례가 왔다. 자연스럽게 작가님이 말을 할 때면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지난 한 주 사이, 날을 잡고 캠핑을 다녀왔다고 했다. 산을 오른 캠핑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흔히 말하는 매너 타임을 갖지 않을 수 있었고 늦은 시간까지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온 세상 낭만이 그 캠핑장에 있었구나. 캠핑을 가봤던 경험이 없어서일까. 작가님이 전해준 이야기는 나의 설렘을 자극했다. 산과 캠핑, 음악까지 누군가 사랑할 삼박자가 고루 갖춰졌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충분하게 '낭만' 그 자체다. 그런데도 작가님의 하루는 이걸로 부족했었나 보다. 차가운 바람소리와 부드러운 노랫말이 맴돌던 그 밤에는 첫눈까지 찾아와서 함께 했다. 아, 과연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 있을까. 비록 금세 비가 되어 쏟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낭만이다. 나는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늘 첫눈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는데, 나의 생각이 또 한차례 바뀌던 순간이다. 첫눈을 내가 직접 맞이하러 떠날 수도 있겠구나. ‘처음’과 ‘눈’. 언제 들어도 설레는 단어이자 기가 막힌 조합이다.
누구나 겨울철이면 자연스럽게 기다려지는 게 첫눈이다. 겨울의 가장 큰 행사인 크리스마스도 다들 화이트 크리스마스이길 바라지 않는가. 눈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을 간지럽힌다. 나는 보통 아무리 늦은 시간에 찾아오는 첫눈일지라도 나의 창문을 두드려주기만 한다면 기꺼이 나가서 맞이해준다. 첫눈이 함박눈처럼 펑펑 내리던, 진눈깨비처럼 흩날리던 눈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눈이면 된다. 과연 왜 좋은 걸까 생각해봤는데, 사계절 내내 내리는 비와는 달리 겨울에만 볼 수 있다는 시간적 제한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혹은 누군가의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일지도. 첫눈이 오는 날은 유독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