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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Mar 07. 2023

엄마 주방에서 발견한 것들

귀여운 울 엄마

지난번 친정에 갔을 때 엄마의 주방에서 놀라운 것을 두 개 발견했다.

믹스커피인 줄 알았던 다시다와 냉동실에서 발견한 돈뭉치.


엄마가 이렇게 변했구나 생각하니 나는 왜 그렇게 웃음이 났던지.

아마도 살림이라는 것을 하면서부터 충분히 공감이 되어서일 것이다.


엄마는 우리를 키울 때, 내가 내 아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렇게 키웠다.

조미료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육식보다는 채식으로, 고기의 영양소는 콩고기로, 라면 같은 건 꿈도 못 꾸게.

그랬던 엄마의 주방에서 다시다를 발견하다니.


"엄마, 이거 다시다야? 와~요샌 다시다가 이렇게 나오네?"

"응, 다시다야"

"어머 웬일이래? 엄마가 다시다를 다 사놓고?"

"아니 가끔 필요할 때가 있더라고."


나는 정말 적응이 안 됐다.

무나물을 하는 도중이었는데 나보고 간을 보라고 하더니 

"다시다 안 넣어도 되겠지?" 하신다.

"무슨 말이야~~ 다시다 없어도 이렇게나 맛있구먼"

"나이가 드니 간을 잘 못 보겠다. 그래서 다시다를 샀지."


나는 적응은 안 됐어도 이해할 수는 있다. 배달음식엔 죄다 조미료일 텐데, 외식도 물론이고.

맛있잖아~ 나도 벌써 조미료에 이렇게 유해졌는데 엄마는 오죽할까 싶었다.


언젠가 동서집에 갔을 때 동서가 감자볶음을 했다.

내가 한 것보다 백배는 맛있었지.

동서는 나보다 10살이나 어리고, 요리는 아예 젬병이다.

그 나이엔 나도 요리를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나는 그 나이에 요리를 안 했어도 됐지만, 동서는 그 나이에 엄마라서 못하는 요리라도 해야만 했다.

"와~~ 너 언제 요리를 이렇게 잘하게 된 거야?"

"맛있지?"

"응, 정말 맛있는데? 내가 한 것보다 훨씬 맛있다야"

"다시다 넣음 돼 언니"

푸하하하. 그럼 그렇지 하면서 웃었다.

그리곤 훈계 아닌 훈계와 레시피를 알려주면서 다시다를 쓰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다시다를 쓴다니 ㅋㅋㅋㅋㅋ

나는 계속 웃음이 났다.

그렇다면 나도 다시다를 사?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육수 재료를 찾아 냉동실을 뒤졌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문을 연김에 까만 봉지에 둘둘 말린 것들을 죄다 꺼내 정리를 했다.

예전엔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했을 말들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냉동실 서랍을 열었어. 거기에도 물론 정리가 필요한 지경이었다.

서랍 깊숙이 또 검은 봉지에 둘둘 말린 뭔가가 있다.

벽돌처럼 생겼다. 이건 또 뭐래~~~ 하면서 꺼내보니 검정 봉지 안에 비닐 팩에 쌓인 돈뭉치가 세 개나 있다.

그걸 보는 순간 또 피식 웃음이 났다.

분명 깜박 한 건 아닐 것이다. 깜박했다면 그렇게 정돈됐을 리가 없다.

이걸 왜 여기 안에 두었지? 하는 궁금증도 생기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었나 보다 하고 고이 제자리에 두었다.


언젠가 시어머니가 남편과 하는 얘기를 들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의 에피소드였는데, 시아버님은 그렇게 비상금을 변기 물 받는 그 뚜껑 속에 두었다고 한다.

이사를 하면서 알았다고 하셨다. 꽤 큰돈이었다고.

부모님들은 통장의 잔액보다 봉지에 돌돌 말아 감춰두는 현금이 더 좋은가보다.

울 엄마도 그런 건가보다.

얼마인가 세어볼 생각도 안 들었다. 액수가 꽤 돼보였다.

그걸로 무얼 하시려나....

집에 오니 문득 생각이 나면서, 물어라도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아니야 그냥 거기 둔 거야라고 혼자 생각을 마루리 지었다.


엄마의 냉동실 속 돈뭉치도, 주방 서랍 속 다시다도 변해가는 엄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엄마가 조금 더 유연한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하니, 나는 참 고마웠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굳이 까칠하게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가끔은 다시다도 쓰면서 융통성을 발휘하자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편견을 좀 버리며 살아야겠다.

덜 오만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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