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니?
행복은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프란츠 카프카
50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큼 행복했을까?
수많은 날들 중에 내가 행복했던 날의 총량은 얼마나 될까?
가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마치 정산하듯 행복의 순간들이 얼마만큼이나 되는지를 떠올리곤 한다.
대체로 어린 시절의 기억에 불행은 없고, 성인이 되면서부터 행복이란 주어지기보다 만들어내야만 했다.
물론 때마다 행복의 기준과 조건은 달랐지만 대체로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바라는 대로 착착 일이 진행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을 때, 그리고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떤 때 행복하다고 느낄까 궁금해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보다야 한창 어렸을 때였으니 친구들의 행복 조건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 생겼을 때 대개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몇 달 동안 월급을 모아 여름휴가를 해외 휴양지로 떠날 수 있었을 때, 일시불은 감당이 안되어 할부로 갖고 싶은 어떤 것이든 샀을 때, 앞으로 매달 빠져나가야 할 돈이 생겼다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당장 손에 쥔 것만 생각하며 행복하다고 느꼈던 철없던 시절에, 그때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을 참거나 견디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젊음이 아닐까도 싶고.
요즘 MZ세대가 그런다던데 그러고 보면 굳이 MZ라고 세대를 구분 짓는 네이밍을 하지 않아도 어느 세대나 젊음이란 MZ가 아니었을까. 어떤 청춘에게든 욜로는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X세대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세대.
문화 예술이 증폭되던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새로운 음악 장르를 들고 나왔고 농구장에 오빠부대가 생겨나던 세대. 베이비붐 세대였던 부모님들 눈에는 문제아였던 세대말이다.
머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였고, 바닥 쓸고 다니며 청소한다는 힙합바지가 유행이었던 때, 나이트클럽에서 양주를 마시기 시작한 고급지고 허세가득했던 세대.
삐삐로 구호처럼 '486'을 치며 사랑을 고백하던 세대.
압구정동의 오렌지족과 야타족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던, 역대 가장 화려하고 쎈 세대가 X세대다.
오히려 지금의 MZ들이 더 철들지 않았나 싶게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하던데, 우리 때는 자기 계발이 뭔지도 몰랐다.
그 누구보다 사랑과 낭만을 갈망하고 어떻게 하면 지금 당장 행복할까를 고민했지만, 사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사회적으로도 경제발전이 평탄하게 이루어지던 때였고, 부족함은 모르고 살았던 세대가 '라떼'였다.
그 어느 세대보다 화려했지만 그 어느 세대보다도 외로웠던 청춘들.
그랬던 우리라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를 보며 열광했었다.
가뜩이나 공부에 취미 없던 X세대들은 더욱더 문화와 예술에 빠졌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은 명언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행복했을까?
내 기억에 가장 예뻤던 때 우리는 모두가 허망함을 안고 살았다.
인생이란 뭘까? 왜 인생이 재미가 없지?
나이트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봐야 그때뿐이었고, 뭔가 채워지지 않는 그 허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 늘 배회했다.
친구들을 만나 술 마시고 노는 것도 점점 재미가 없어졌고, 그렇다고 결혼이라는 도피처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결혼으로 도망친 들 행복할까 싶었던 것이다.
밤문화와 예술과 스포츠에 온 젊음을 바치듯 했던 신인류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끓어오르는 태양 같던 그 열기가 한순간에 후하고 불어 꺼트린 촛불 같았다.
천천히 식는 열기가 아니라 갑자기 훅 말이다.
IMF가 터지고 X세대는 강제적으로 철이 들어야만 했다.
한 번 직장은 평생직장이라는 (지금으로선 정말 옛날이야기 같지만) 인식 속에서 우리는 각자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머리의 노란 물을 빼야 했고 기성세대의 사회생활에 적응해야만 했다.
끼와 흥을 억누르며 살기 시작한 우리가 행복했을 리가 없다.
쳇바퀴 돌듯 사는 그런 허무한 삶에서 우리는 원인을 찾지도 해결하지도 못한 채 하나 둘 나이를 먹어갔다.
때가 되었구나 싶게 친구들은 결혼이라는 정해진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더 이상 나랑 놀아줄 친구도 없다.
일만 하고 돈만 벌며 살기 시작하니 사는 건 더더욱 재미가 없었고, 간간이 한 연애사는 하나같이 시시하기만 했다.
친구도, 사랑도 아닌 뭔가가 해결되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허무하고 사는 게 재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수순을 밟듯 나의 직장은 대학에서부터 정해졌다.
원하지 않았고, 해보니 맞지 않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을 뿐, 사명감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의 염창희는 20년 전 나였다.
3억을 투자해 10억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는데 부모님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염창희에게는 3억이 없다. 너무도 아깝지만 결국 놓친다. 이런 청춘들이 행복할 리 없다.
나도 그랬다.
이미 행복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그 길에 들어선 수많은 청춘들이 있다.
이 길로 가면 행복을 찾을지도 몰라하는 희망과 설렘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방향을 틀지 못한다.
마치 텔레스크린이 감시라도 하듯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렇게 흘러 흘러 시간만 죽치다가 결혼을 하면 인생에서 반짝 이벤트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벤트는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하던 마음이 점점 또 허무해지고 무료해진다.
어른들 말마따나 그때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보고 또 살아진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결혼보다는 길게 가지만,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다.
내게 행복을 주는 아이 때문에 몸도 마음도 병들어가는 때도 생기기 마련이다.
지난 삶을 영화처럼 돌려보니 모든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 헤맸다.
지금 생각하면 행복했던 것도 그 당시엔 행복인 줄 모른 채 지나쳤던 날들도 무수히 많다.
그러니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옆에 있는데도 있는 줄 모르고 엉뚱한 데서 찾는 것.
수없이 많은 날들을 행복을 찾아 떠나본 사람으로서 이제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을,
"행복은 네 마음속에 있다"라는 말을 격하게 인정한다.
옆에 있는데도 못 찾는 사람들에게 팁을 하나 주자면 그것은 바로 감사함이다
감사함을 의식적으로 느끼는 것, 감사하는 말을 능동적으로 하는 습관.
이것이 바로 내 눈앞에서 뿌옇던 행복의 안개를 거둬내는 팁이다.
세월을 맞다 보면 행복의 조건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그렇게 큰 것이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찾아다니는 일, 이것이야말로 행복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소확행은 분명 감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너는 지금 행복하냐고?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매일매일 행복하다.
내가 사랑하는 일들을 하고 있으며, 마음에서 허세를 내려놓았더니 모든 것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매일 눈뜨면 오늘은 무엇으로부터 행복을 느껴볼까 하며 마치 쇼핑하듯 내 주위를 둘러본다.
누구나 가능하다.
마음만 바꾸면 되는 일이다.
오늘 당신은 어떤 행복을 쇼핑할건가요?
결제는 감사로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