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못했다
"언니, 소식 들었어?"
친한 동생이 전화 와서 대뜸 하는 말이다.
"무슨 소식?"
"sj가 잘못됐나 봐... 방금 남편이 전화 와서.. 그러네"
"......."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
'아.......' 깊은 한숨만 나온다. 뭐 생각을 할 수도 없고, 어떤 말도 나오지가 않는다.
그냥 길가다가 뒤통수를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예쁜 손, 예쁜 발... 그 하얗고 곱던 손과 발. 언제나 네일과 패디가 요란스럽지도 않으면서 우아했던 손과 발.' 제일 먼저 나는 그녀의 손과 발이 생각났을 뿐.
6년 전 우리는 남편들의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sj의 남편은 내 남편의 친한 동생이었다. 전화가 온 동생의 남편은 내 남편의 친구였다. 그렇게 남편들 모임 덕에 와이프들끼리 친해진 사람이 5명 정도였다. 우리는 자주 만나서 밥을 먹고, 그중에서도 내 나이가 제일 많았지만 가장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모두들 육아 선배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sj는 아이가 없었다. 와이프들 중에서 나이가 막내였고, 그렇다고 결혼생활도 막내는 아니었다. 긴긴 시간 동안 아이가 생기질 않아서 만날 때마다 그 심정을 토로하곤 했었다.
"언니, 언니는 아이 어떻게 생겼어? 한약이라도 먹어야 할까?"
이런 질문을 자주 했었다. 나 또한 어렵게 생긴 아이라 내 생각으로 효과를 봤던 용인의 한 한약방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언제 아이가 생기는지 용한 점집을 같이 찾아다니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sj에게 예쁜 아기천사가 와주길 한마음으로 소망했었다.
sj는 키가 167 정도 되었고, 뱃살이 하나도 없었으며 날씬했다.
눈은 외커플이었고 연예인 최여진의 눈을 닮아 매력 있었다. 옷차림은 정갈했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우아함을 지녔다. 6년 전 그녀의 나이는 36이었다. 성격은 늘 차분했으며, 그 나이에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았고, 우리 중에 막내여서 였을까.. 언니들에게 극진했다. 한마디로 통통 튀는 매력은 없었지만 정말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동생이었다.
우린 부부동반 골프를 자주 치러 다녔다. 나보다 골프도 잘 쳤고, 긍정적이었으며, 잘난 체를 하지 않았다.
동생이지만 그런 면에서는 참 배우고 싶은 성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골프를 재미있게 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sj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우리끼리 볼 치러 다니는 거 다른 언니들한테는 말하지 말아 줘."
"왜? 이게 무슨 비밀이어야 해?"
나는 단박에 그 말이 기분이 나빴다. 무슨 죄를 지으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남들 몰래 가져야 하는 만남이라는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
남편들 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자기 남편이 부탁을 했다고 했다.
남편끼리도 보면 지 남편이 젤 막낸데 왜 우리 남편이랑 더 친하면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은 생각에 남편에게도 전화를 해서 무슨 일이냐고 성질을 냈다.
6년 전만 해도 나는 그렇게 참지를 못하고 불같은 성격이 더 컸다.
그 후로 우리는 점점 멀어졌고 난 늘 생각했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닌데, 나도 참.... 하며 후회를 했다.
그러다가 남편을 통해 sj에게 아기천사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축하해주지 못했을까....
그녀가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또 소식을 들었다. 유방암 3기라고.
남편은 왜 자꾸 그녀의 소식을 나에게 전하는 건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알게 되었다.
유방암 3기... 아이 돌잔치에서도 가발을 썼다고, 너무 말랐더라고 남편은 또 나에게 비둘기가 되었다.
마음이 자꾸 쓰였다. 그러나 뭐라고 먼저 연락을 해야 할지 몰랐다. 차라리 임신소식을 들었을 때 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유방암이라며..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뻔히 자기 남편과 우리 남편이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 텐데, 유방암에 걸린걸 내가 모르는 듯이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게 또 놓쳤다.
그게 2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친한 동생에게서 그녀의 부고를 들었다.
친한 동생은 자꾸만 " 애기 이제 2살인데 어찌까... 어찌까... 언니 애기 불쌍해서 어찌까...."만 반복했다.
나는 애기보다 sj가 불쌍해서 어쩌냐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갖고 싶어 했던 아가인데... 그 아이를 두고 떠나야 할 때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그녀는 얼마나 울었을까. 그 아이를 계속 안고 싶어서 얼마나 참았을까.. 그 아이를 두고 눈을 감기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생각을 하니 견디기가 힘들다.
남편이 서울 출장 중에 있었다. 이틀 예정인 출장인데 부고를 듣고 바로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나도 어서 빨리 오라고 했다. 도착한 남편이 전화를 했다.
"자기도 갈래?"
".... 못 보겠어. 여비 많이 넣어주고 와... 00 씨 옆에 오래 있어주다가 와."
문상을 갈 마음으로 남편에게 빨리 오라고 했지만, 결국 나는 가지 못했다.
영정사진 속의 그녀를 볼 자신이 없었다. 나를 많이 의지했는데... 그깟 일 때문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내가 너무 싫었다. 삶이 허망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저 자꾸만 내가 매몰차게 그녀와의 관계를 끊은 것만 생각났다. 이해되지 않는 그때의 나에게 진저리가 쳐졌다.
나는 아직 내 가까운 주변에 상을 당한 일이 없다. sj가 처음이다.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슬픈 것 같기도 한데 눈물이 떨어질 만큼은 안 나고, 미안함도 있는데 그건 나만 아는 감정일 수도 있겠다 싶고, 어쩌면 그녀는 나를 아예 잊었을지도 모르니까. 그저 아이와 헤어져야 하는 그녀의 마음이 자꾸만 아른거리는데 그건 그녀를 걱정하는 건지, 내가 내 아이와의 이별을 걱정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자꾸만 그녀의 눈웃음과 예쁜 손과 발이 눈앞에 생생할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마음.
그렇게 그녀는 42년의 생을 마감했다. 남겨진 이들이 걱정이 되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녀의 마지막이 걱정되었다.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하면서 자꾸만 자꾸만 그녀의 마음이 걱정이 되었다.
하늘길을 갈 수나 있을는지, 발이 안 떨어져서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 발도 못 떼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네가 너무 걱정이 된다. 잘 가라는 말도 못 하겠고, 어쩌면 좋니... 어떡하니... 만 연발하고 있다.
아무 걱정 말고 그곳에선 아프지 마라는 식상한 소리도 안 하고 싶다.
어떻게 걱정이 안 돼. 어떻게 그곳에서 잘 지낼 수 있겠어. 심장 같은 어린 딸을 두고 왔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죽음에 익숙해지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정말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다. 전화를 하면 당장이라도 그녀가 받을 것 같아서. 카톡 프로필 사진만 계속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