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라 전기(鍮達 傳奇) #6 최후의 보루

by 회안림

밀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자,

현옥은 숨을 고르며 조용히 안으로 발을 들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덜컥,

자동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익숙한 소리였다.

도유사의 밀실은 늘 외부 기척에 민감하면서도 마치 예를 차리듯 차분히 닫히곤 했다.

하지만 그날, 공기는 이상할 정도로 낯설었다.

방 안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등잔불은 켜져 있었지만,

그 빛은 공기를 뚫지 못한 채,

젖은 종이에 먹이 번지듯 눅눅하게 스며들 뿐이었다.

익숙하게 피어오르던 향내—

도유사가 아꼈던 녹향의 냄새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 향과 뒤섞여 흐르던 붓 냄새조차 감쪽같이 없었다.

현옥은 무의식적으로 스승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정갈했다.

필방은 정위에 놓여 있었고,

붓걸이와 옥잔 또한 흐트러진 자국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단정하고 조용했다.

그러나 그 정돈된 질서가 오히려 불안했다.

무언가 감춰진 듯한 정적.

아니, 공간 자체가 스스로 기억을 숨기고 있는 듯한 침묵이었다.

그때,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도유사의 등 뒤, 늘 단단히 봉인되어 있던 벽장이 활짝 열려 있었다.

자물쇠는 풀려 있었고, 안은 어둠뿐이었다.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짐작되지 않았다.

칼이었을까, 문서였을까.

그 부재 자체가 곧 사건의 증거였다.

“스승님,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현옥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손끝은 떨렸지만,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가 할 일은 하나였다.

선천부필의 기예를 통해 시공의 잔상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불러오는 것.

그녀는 천천히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심자의 결… 무의 필… 선천의 선으로… 나는 본래의 흐름을 따라간다.”

붓끝이 바닥에 닿자마자, 빛이 파문처럼 일렁였다.

마치 얇은 수면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바닥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퍼져 나갔다.

그녀의 정신은 육신을 떠나 투명한 실처럼 가늘게 늘어진 채 시공의 경계를 넘었다.

그 너머에는 빛도 소리도 바람도 닿지 않는 무의 공간,

무형의 심연 속에 도유사의 정신체가 있었다.

그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옷자락은 천계의 비단처럼 흩날렸고,

손끝에서는 선천결계의 빛이 맴돌았다.

그는 거대한 어둠과 싸우고 있었다.

형체 없는 존재, 이름조차 부여되지 못한 비존재—허무였다.

그러나 도유사의 붓끝에서 뻗은 결에 의해 그 정체는 순간적으로 형상을 얻었다.

허무의 공간은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던 세계에 처음으로 불이 들어오는 듯,

붓의 결이 허무의 심장을 꿰뚫었다.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그 뒤를 이은 폭발적 반동.

허무는 고통을 느끼는 듯 형태를 뒤틀었으나,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의 결이 흔들렸다.

형상 없는 진동이 정신의 살을 찢고 영혼의 결을 흔들었다.

도유사는 입가에 붉은 피거품을 맺은 채, 끝까지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의 공력은 이미 한계에 달했으나,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예악의 붓—세계의 틈을 막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 붓이 꺾이면 세계의 틈이 열리고 허무가 넘실댈 것이었다.

전투 속에서도 그는 현옥의 기척을 느꼈다.

몸을 돌릴 수 없었지만, 정신으로 그녀를 향해 명령을 전했다.

그 목소리는 말이 아닌 결이었다.

영혼의 떨림으로 전해지는 명령이었다.

“현옥, 듣거라… 보현자를 죽여라.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 순간, 허무의 검은 파장이 도유사의 어깨를 스쳤다.

결계가 찰나 간 깨지고, 정신체의 일부분이 찢겨 나갔다.

그의 정신체는 다시 전심전력으로 허무를 향하였다.

필획은 허무의 물결 속에서 예악의 채찍이 되었다.

허무는 반격하지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자체로 세계를 압도하는 무형의 폭력.

침묵이라는 이름의 압살.

그것이 허무의 본질이었다.

도유사는 마지막 공력을 모아 허무의 파동을 묶었다.

그것은 영혼의 밧줄이었고, 세계를 지키는 마지막 결계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결계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 결계가 사라지기 전에,

현옥이 반드시 보현자를 죽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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