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곧대로 듣지 말라고?

말 꽈배기는 거절합니다

by 임경미


“좀 곧이곧대로 듣지 마!”


통화 내용을 전하던 그가,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에게 목소리를 높이며 이렇게 말했다.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고? 그 말의 뜻이 뭔지 알고 쓰는 거야? 사전 검색해봐. 뜻이 뭔지.”


방금 전까지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고 말했던 그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며 휴대전화를 들어 ‘곧이곧대로’의 뜻을 검색한 뒤, 그 뜻을 내게 줄줄 읽었다.


곧이곧대로.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있는 그대로.


“그래. 그런데 네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니? 그럼 어떻게 네 말을 들어야 하는 거야?”

따져 묻는 내게 그는, 자신이 제3자의 말을 정확히 전달하기 힘드니 그 이면의 의미를 파악해달라고 요청했다.




말이라는 것이, 글이라는 것이 참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30년 넘게 써온 언어임에도 들은 그대로 전달하기 힘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기 힘들다니.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말하는 것과 의미를 해석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독자 한 명이 남긴 서평을 읽었다. 그리고 그 서평에서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된 짧은 글을 발견했다.


독자가 남긴 글의 의미를 알아차리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좋은 뜻일 거라고 안도했다가,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다며 의기소침하기를 몇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해석의 사이클 사이를 반복하다, 모호함으로 인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상황이 우스워 휴대전화 화면을 툭, 꺼버렸다.


-


나는 한때 수많은 말의 꽈배기를 만들어내던 사람이었다. 누가 A라고 말하면 A’ 혹은 B로 해석하는 능력을 기가 막히게 발휘했다.


내가 만들어낸 말의 꽈배기는 먹는 꽈배기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어느샌가 오해를 불러왔고, 오해가 이해로 바뀌지 않았을 땐 마음에 얼룩을 남겼다.

그렇게 말의 꽈배기가 만들어낸 얼룩에 말의 순수함과 상쾌함이 더럽혀졌을 때, 더는 꽈배기를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쁜 머리로 이해하려다 오해한 것을 들켜서 제 마음대로 해석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보다 표면 그대로의 말을 받아들이고 나중에 뒤통수 맞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면 나중에 할 말이라도 있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을 명확히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에둘러 말해요?


에둘러 하는 말에는 어떤 마음이 담겼을까.

말로 내가 상처받거나 네가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배려? 그래, 그래서 나도 가끔은 몇 마디면 충분한 말의 길이를 늘이고 또 늘이곤 했었지.

그리고 또, 어쩌면 들킬 듯 말듯 숨겨놓은 의도를 알아차려 주길 바라는 의도? 그래, 그럼 조금 더 점잖아 보였을 테니까.


그렇게 저마다의 이유로 수많은 말의 꽈배기들이 만들어졌을 때, 말 이면의 뜻을 해석하고 들어주는 것이 사회성이 좋은 그럴싸한 능력이고, 때로는 친절한 사람이고,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나는 수많은 꽈배기를 반대로 풀며 그 속에 담겨 있는 뜻을 풀어헤쳤는지도 모르겠다.


그 피로한 일을 기꺼이 감내한 가장 큰 이유는 잘 보이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언젠가 그런 수고로움은 거부하기로 했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 의도를 숨기는 그 행동의 마음이 더 가벼웠으니까.


결국 곧이곧대로 말하는 데 재능이 없다며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고 말하는 그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났다는 말로 그와의 마찰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독자가 남긴 애매모호 한 리뷰를 분석하는 것도 멈추기로 했다.

말의 꽈배기를 푸는 것은, 더는 내 역할이 아니니까. 설령 그 역할을 무사히 수행했어도 옳을지 그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니 내게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곧이곧대로 말하고, 곧이곧대로 듣는 게 더 편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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