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향기가 날리고

시드니의 아파트 청소부

by 윤혜경

쇼핑카트(사진출처: Google)


쇼핑카트(shopping cart )는 1937년 미국 오클라호마 슈퍼마켓 책임자였던 실번 골드먼(Sylvan Goldman)에 의해 고안되었다. 일반 가정에 자동차와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고객들이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하도록 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쇼핑카트는 고객들이 대형마트에서 살 물건을 담아 계산 후 주차장에 주차된 차로 옮기는 데 사용되는 고객용 손수레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 영국이나 호주에서는 트롤리(trolley)라고 한다(출처: 나무위키, 2023 04 15).




요즘은 국내의 크지 않은 슈퍼에서도 쇼핑 카트가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시드니에 거주했던 1989년 경에는 여기저기 시장이 늘어선 서울과 달리 차가 없으면 장보기가 불편했다. 주 1회 남편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어린 두 아이도 함께 온 가족이 1주일치의 장보기를 하곤 했다.


식료품 쇼핑에 이어 부근의 5층짜리 백화점도 살짝살짝(사실은 꽤 길게)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나고 보니 철없는 엄마로 인해 아이들이 참 고단했겠다.


주 1회 정도는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줄 식빵과 우유 1팩, 과일 몇 알 정도를 사서 아이의 유모차에 대롱대롱 상태로 아이를 태워오기도 했다.


"이봐요, 아파트 입구에 트롤리(trolley, 쇼핑카트)를 아무렇게나 놓아두고 들어가면 안 돼!!!"


아파트 입구 한쪽에 세워둔 트롤리에서 과일, 우유, 식빵들이 담긴 비닐봉지들을 빼서 품에 안고, 두 아이를 앞에 세운 나는 지친 상태였다. 1층의 아파트 출입구 현관문 열쇠를 막 돌리던 나는 난데없는 큰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백인인 키 큰 중년여성이 청소하던 손걸레를 든 채 30대 중반을 향하는 키 작은 내게로 걸어왔다. 그리고 아시아계 황인인 내 앞에서 시드니언들의 흔하디 흔한 '인사말'도 없이 화가 난 표정인 채 트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홀로 아파트인, 내가 거주 중 아파트의 청소를 담당한 청소부 부부이다. 건장한 체형의 그녀 남편은 커다란 쓰레기 하치장이 있는 1층의 Garage와 화단을 정리 정돈하고, 그 남자만큼 체격이 좋은 그녀는 아파트 건물 실내를 청소하고 정돈한다. 카펫이 깔린 복도에서는 청소기를 돌리고 엘리베이터 옆 벽에 붙어있는 거울을 닦는다.


당시에 시드니의 대표적인 쇼핑센터 근처 주택가에 위치한 우리 아파트에선 2~300 미터쯤 떨어져 있는 백화점 주차장들이 보인다. Grace Bros 백화점과 David Jones 백화점 외에도 대형 슈퍼마켓 여럿이 이어져 있는 쇼핑몰이다. 우리 집에서 Chatswood 쇼핑센터로 향하는 막힌 도로 끝 왼쪽에 우체국이 있고, 오른쪽에는 Grace Bros 백화점이 있다. 그리고 우체국에서부터 차가 없는 거리가 이어진다. 100여 미터를 더 걸으면 동네 구립도서관과 큰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속한 가톨릭 스쿨이 있다.


그리고 다시 차들이 다니는 거리로 이어지며 유명 백화점 2개가 각각 입점한 복합쇼핑몰이 공중에 통로로 이어져서 다 돌아보노라면 두 다리가 소풍날 밤처럼 아프지만 여간 편리하다. 번화한 거리에 늘어선 쇼윈도에 자주 눈길을 주며, 큰아이의 작은 손을 쥔 채 유모차의 한쪽 끝을 잡고 다른 손으로 다른 한쪽을 잡아 작은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면서 아침에 큰아이를 학교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후 3시가 되면 데려왔다.


유치원생인 큰아이의 다리가 고단할 때쯤 학교옆 맥도널드(Mac) 매장이 나타난다. 주중 학교 건너편에 위치한 Chatswood Chase(C.C) 쇼핑센터에서 간단한 쇼핑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는 Mac에서 오렌지 주스를 한 잔 사서 나누어 먹이곤 했다.


"엄마는? "

"응, 엄마는 주스 싫어해."


그리고 가끔은 마지막 남은 오렌지 주스 1 티스푼쯤으로 목을 축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미니 물병을 들고 다닐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시절에.


그날은 작은 아이를 걸리다가 업다가를 교대하며 느린 도보로 20분 거리의 학교유치원으로 가서 3시에 큰 아이를 픽업하였다. 오는 길에 무게가 제법 있는 사과, 자두, 우유, 식빵 등을 사서 담은 트롤리에 두 아이를 태워 고르지 않은 인도 위로 집까지 힘들게 밀고 온 터여서 엄마지만 목도 심하게 말랐다.


트롤리에 앉은 채 졸다가 아파트 앞에 도착해서 깨어난 두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집에 다 왔어. 내리자."


쪼그린 채 앉혀졌던 두 아이의 현실감 없는 표정을 보며 트롤리에서 안아 올려 땅바닥에 세웠다.

트롤리는 원래 주차장까지 물건을 나르는 용도이지만 도보로 쇼핑 나온 이웃주민들의 경우에는 쇼핑센터 주변의 주택가까지도 쇼핑거리들을 실어 나르는데 이용하곤 했다. 일부 주거지에서는 편리하게 사용했던 트롤리에서 물건만 꺼내가고 길거리에 놓아둔 사람도 가끔 있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옆 공터 무료주차장 한쪽에 쇼핑트롤리 거치대가 있었다. 사용자가 조금만 수고해서 거치대에 나란히 한 줄로 밀어 넣어 세워 두면 늦은 밤이나 새벽에 트롤리 수집차가 한꺼번에 트롤리운반용 미니트럭 위로 밀어 올려서 수거해 간다. 물론 주택가를 순회하며 고가의 나 홀로 트롤리들도 빠짐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의 쇼핑 트롤리 거치대에 트롤리를 가져다 놓으려면 울퉁불퉁 거리는 인도 위로 트롤리를 밀고 제법 불편하게 걸어야 다. 그동안 어린 두 아이를 아파트 지상 주차장 근처에 세워두기에는 아파트 지하와 지상 주차장의 차량 통행이 있어서 위험하다. 트롤리를 나무들이 있는 화단 쪽에 세워두고 두 아이와 간단한 식료품이 든 비닐백들을 먼저 집에 올려다 놓고 내가 다시 내려와서 갖다 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가끔 그랬듯이.


더러 사소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추가업무가 생기곤 했을 청소부 부부는 아마도 트롤리를 밀고 오는 나를 지켜보며 오해를 했었나 보다.


'저 까만 머리 아시아 여자는 틀림없이 트롤리를 여기다 팽개친 채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릴 거야. '


해외에서는 외교관 자격증이 없어도 걸어 다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외교관 역할을 한다. 나의 움직임이 한국인에 더해 아시아인 전체의 이미지가 되기 쉽다. 나를 분류하는 그들에게 나는 <그 한국여자>보단 <그 까만 머리 아시아 여자>였으므로. 그래서 난 모난 돌이 되지 않도록 그쪽의 문화를 빠르게 배우고 적응하고자 좌충우돌 노력했었다.


두 아이도 나도 그녀의 호주인답지 않은 커다란 목소리 훈육에 당황스러웠지만 (보통은 은행이건 우체국이건 대면서비스 시에 해당되는 당사자만 들릴만큼 작은 소리로 조용히 말한다) 그녀의 말 또한 일리가 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 가져다 놓을 거예요. 아이들이 자다 깬 상태라서 지금은 쇼핑거리랑 아이들을 먼저 올려두고 내려올게요. 손대지 말고 놓아두세요."


시드니 거주기간이 일 년이 넘어가며 이 정도의 의사표현이 가능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첫해 같았으면 키가 큰 그녀의 걸레를 움켜쥔 손과 성이 난듯한 파란 눈빛만 마음에 박힌 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어린 자식들 앞에서 못난 얼음이 되었을 텐데...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호주식의 웃는 얼굴로 돌아서서 두 아이와 짐들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나만 다시 내려와서 쇼핑카트를 옆 주차장 카트정리대에 정열하고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 큰 아이를 픽업해서 돌아오니 우리 집 문 밖에 오렌지들이 담긴 작은 바구니가 놓여있다. 바구니 한쪽에는 동물그림의 메모지가 꽂아져 있었다.


'우리 집 뜰에 있는 오렌지 나무에서 땄어요. '

from Anne with love


어린 두 아이와 함께 귀가 중인 내게 트롤리 놓아두는 장소 문제로 (무례하게) 소리쳤던 청소부라는 부연설명까지. 다음 주 같은 요일 아이들의 하굣길에 수제 비스킷을 사서 포장 후 그 바구니에 담았다. 고맙다는 메모지와 함께 현관 밖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주 후 부활절이 되었다. 그녀는 색색의 종이로 포장된 달걀모양의 초콜릿 알들이 담긴 작은 바구니를 편지와 함께 우리 집 문 앞에 놓아주었다. 호주의 부활절에는 지인들끼리 달걀모습으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축복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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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 2017. 04. 13.)


(출처: 11번가)




오렌지 바구니의 연유를 설명해 준 이후부터 우리 아이들은 하교 후 아파트 입구에서 그 부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곤 했다. 두 아이는 목소리가 큰 그녀의 오렌지와 초콜릿 달걀 바구니를 생각하며, 만나면 반가운 사이가 되었으므로. 그녀의 말수가 적은 무뚝뚝한 남편도 화단을 정리하다가 하굣길의 내 두 아이와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렇게 오렌지 향기를 날린 그녀는 호주이고 우리 가족은 한국이었다. 남의 나라에서 본의 아니게 걸어 다니는 한국, 아마도 아시아 대표가 되었을게다. 우리 집이 근처의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한 후에도 그녀와 우리는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이를 유지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호텔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귀국예정임을 알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의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그녀가 내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없음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때는 K-Pop이나 삼성전자의 Big Name은 고사하고, Korea의 유명세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 관련 뉴스에는 뉴스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1970~80년대 초반 사진으로 보이는, 명동성당 주변에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앉아 데모하는 사연 깊은 단체 사람들이나, 공장에서 삼각 머릿수건을 쓰고 미싱을 돌리는 어린 여공들의 작업모습이 찍힌 흑백화면이 단골로 등장했다.


또, 최루탄을 쏘며 군경과 대학생들이 대치하던 어두운 시대의 자욱한 최루탄 연기와 화염병의 불꽃, 전투경찰이 다쳐서 발을 끌며 걷는 사진이 뉴스내용과 무관하게 배경화면으로 나타나곤 하던 시대였다. 관련도 없는 오래된 사진들을 성의 없이 TV 한국뉴스 배경화면으로 쓰곤 했을 만큼 뉴스맨들이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으로 올라선 Korea의 매력에 무관심했던 시대.


그래서 내게 1990년대 초 시드니 아파트 시절은 어두운 흑백사진 배경의 한국뉴스와 오렌지 향기를 건네준 청소부 부부 모습이 교차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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