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생활이 시작된 1990년대 초반의 호주 시드니에서 아이들과 동물원에 간 토요일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출입금지>나 <출입 엄금> 표지판이 서 있곤 하던 서울의 잔디밭과 달리 호주에선 잔디 위를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어린 두 아이들도 잔디 위를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위태로이 달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시드니로 가기 전, 그이의 와이셔츠와 넥타이 세트들을 구입한 소공동 백화점 입구의 분수대 주변에서도 직원은 앉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었다. 긴 쇼핑으로 아픈 다리는 어쩌누? 요즘 고객들을 위해 층층이 도처에 잘 준비된 국내 백화점의 커피숍과 쉼터를 보면 격세지감이다.
그 당시 시드니의 연초록 잔디 위를 어린 아기들이 앙징맞게 달리는 달력 사진에서처럼 3.5세, 5.5세의 두 아이가 달리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이국이라 긴장해 있던 내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카메라를 꺼내고 가죽 케이스의 똑 단추를 잠가 카메라 줄에 매달았다. 유모차를 빌리고 아이들이 동물에게 줄 작은 팝콘 봉투 크기의 사료를 사느라 빨간 반지갑을 꺼냈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을 위한 음료를 사고, 동물 먹이도 사느라 자주 지출이 필요했다. 지폐가 든 반지갑을 카메라 가죽케이스에 담아 목에 건 카메라 손잡이 줄에 매달았다.
그리고 30분쯤 후 여우 우리 앞에 이르러서야 내 옷 위에 크로스백처럼 맨 카메라줄 끝에 가죽케이스가 없어진 걸 깨달았다. 내 지갑헉!
"서울이 아빠, 카메라케이스가 없어졌어."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남편은 나를 바라보았다.
".............."
"카메라케이스 안에 반지갑을 넣어두었는데..."
내게 벌어진 상황을 이해한 그이는 사색이 되었을 내 앞에서 나의 잘못부터 짚었다.
"카메라케이스가 무슨 힘이 있다고 거기에 지갑을 넣어?"
이번엔 내가 벙어리가 될 차례이다.
"........."
그이의 궁금함은 이렇게 표현되었다.
"현금이 얼마나 있는데?"
"250불"
1990년의 호주의 큰 쇼핑센터에선 이미 신용카드가 현금과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현금 사용이 많았다. 그러나 현금지급기 앞에 서서 호주 사람들은 10달러 20달러와 같은 소액 지폐를 주로 찾는 편이고 아시아인들은 더 큰 액수의 현금을 찾는 경향이 있다고들 했다.
아시아인인 나도 길게 늘어선 줄에서 기다리다가 모처럼 내 차례가 되면 당시 신용카드가 없던 나는 기다린 보람이 있도록 적어도 100달러 정도를 현금으로 찾곤 했다. 한 번에 일주일 식품을 사는데 드는 비용이 70~80 달러정도였으므로.
그래서 이주한 사회에 새로이 적응 중인 동양인 지갑이나 집을 털면 현금을 듬뿍 훔칠 수 있다고 소문이 나서 도둑들에겐 특히 현금보유를 선호하는 한국인, 중국인이 표적이 된다고들 했다. 나도 그 대상에 속하는 한국인이다.
"무슨 현금을 그렇게 많이 갖고 왔어?"
"요즘 좀도둑이 아파트를 털어간다기에 걱정되어서 비상금을 모두 들고 나오느라..."
".........."
도둑들 가능성에 대비해서 몽땅 들고 나와 동물원의 잔디밭에 돈을 통째 떨어뜨려 잃어버리는 아둔한 아내에 불만을 가득 품은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더운 햇살아래를 열심히 걸어서 동물원 관리소에 들렀다.
그곳의 방문객 담당자는 '아마도 누군가가 그걸 주웠다면(handed in) 분실물센터( lost property)에 맡겼을 수 있다.'라고 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서둘러 분실물센터( lost property)에 갔다. 내 상황을 들은 직원은 내가 잃어버린 그 카메라 케이스를 꺼내왔다. 그 안에 빨간 지갑도 들어있었다.
현금이 들어있는 지갑을 그대로 돌려주다니... 호주 사람들의 착하기 그지없는 심성에 감격한 내게 이후 동물원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천사처럼 보였다.
분실물을 돌려받은 후 우리 가족의 동물원 나들이 발걸음은 마치 풍선이 달린 양 경쾌해졌다. 사실은 지갑을 통째 분실하여 죄인이 되었던 내 발걸음이 지갑을 찾는 순간 경쾌해진 거고, 잃어버릴 뻔한 돈을 되찾아 선심이 늘어난 엄마가 무더위에 시원한 음료수를 잘 사주니 아이들은 행복했을 테고, 목소리에 힘을 주던 남의 편은 발걸음은 경쾌해졌지만 좀 머쓱해진 걸 거다.
나는 그날밤 동물원 나들이 뒤처리를 모두 끝낸 후, 아이 둘을 재우고 나서 옆지기에게 기어이 한마디 짚었다.
"왜 내가 가장 힘들 때마다 앞장서서 남의 편이 되는 거예요? 그럼 힘들 때 나는 누구와 의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