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모이면 꽃대가 나오지 않을까?

희망을 기원하는 생각 모종들

by 윤혜경

*1년 넘게 시들 거리다가 건강을 회복한 <만천홍>의 '아기 꽃대'가 머리를 내미는 모습 2022 02 19


*2022. 03. 01 쑥쑥 자라는 만천홍 꽃대


수술 후 누나의 회복과정이 방향을 반대로 틀었을 때 누나 엄마는 점점 불안해졌다. 그리고 큰누나에 대한 안쓰러움에 누나를 향한 '정성 모종'을 한 송이씩 심으며 자신의 몸을 지치게 하는 걸로 보호자의 역할을 이수했다.


첫 번째 모종은 추운 겨울 아파트 뜰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갈색 은행 줍기'이다. 눈에 덮인 갈색 은행은 가을날의 살구빛 은행과 같은 악취는 뿜지 않는다. 겨우내 나뭇가지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수분이 증발되면서 악취도 함께 날아가나 보다.


어마는 원래 은행을 좋아하진 않았다. 하이힐 차림의 엄마는 늦은 여름 삼청동 레스토랑 앞에 노랗게 악취를 뿜어내는 은행들을 요리저리 피해 걷던 여자였다. 누나가 아픈 뒤 신장에 은행이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한겨울에 납작한 슬립온을 신고 아픈 누나를 대동하고 눈밭에 용케 남겨진 갈색 은행을 찾기 위해 발끝이 시리도록 아파트 주변을 걸어 다닌다. 누나가 눈앞에 안 보이면 엄마의 가슴은 기차소리를 내므로 언제 어디서나 누나를 대동하고.




2005년부터 함께 한 '카틀레아 '


두 번째 모종은 '화분 가꾸기'이다. 누나네는 원래 만천홍 중 ' redlips'라 불리는, 하얀 잎에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빨간 입술이 달린 흰 만천홍 화분을 식탁 위에 놓아두곤 했었다. 색색의 아프리칸 바이올렛은 꺾어 심어주면 느리게 크지만, 다음 해에는 일가를 구성한다. 엄마 집의 식탁 한쪽에는 보랏빛부터 핑크, 노랑, 파란색에 이르기까지 색색의 아프리칸 바이올렛도 제법 자리를 차지하곤 했었다. 엄마의 심리치료 상대들로 엄마는 화분의 꽃들과 이야기를 한다.


"아이고 미안해. 목이 많이 말랐구나."

"너는 어쩌면 이리도 예쁘니?"


세 번째 모종은 큰누나의 팔을 붙잡고 '햇살 아래 30분 걷기'이다. 막상 햇살을 찾아 나서니, 아파트에선 건물에 가려 온전히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장소 찾기가 쉽지 않았다. 쉴 틈 없이 차가 드낙거리는 지상 주차장 이외에는 햇살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웃에 자리한 학교 운동장은 오후 5시 이후에 주민들에게 개방된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를 돌며 뉘어지는 부드러운 햇살을 양팔과 종아리로 받았다. 약을 잘 섭취하다가 문득 고칼슘혈증과 저칼슘혈증이 반복되는 날엔 누나의 체력이 휘청거려서 하루 10분도 어려워했다.


예전 같으면 간과하거나 발견하기 쉽지 않은 크기라는 3mm의 결절을 과감하게 전절제로 떼어내고 처음에는 감사와 함께 안도했다.


그런데 정작 큰누나는 갈수록 힘을 쓰지 못한다. 신은 몸의 모든 기관들이 각각 필요한 기능을 지니게 만드신 모양이다. 제거하기 전에 두 번 세 번 더 생각해볼걸... 갑상샘과 함께 제거된 4개 부갑상샘의 역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때였다.


그렇다 해도 일반인이 무슨 판단능력이 있었겠는가? '대학원 졸업논문 발표 후로 미루자'는 환자의 의견에 담당의사는 의심 결절이 혈관에 가까이 있어서 2달 후의 변화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수술을 몇 개월 뒤로 미루었다가 암이 혈관을 타고 다른 기관들로 전이될 수도 있다고 했던가? 환자 측이 결정할 일이지만, 위험이 내재된 지연이라서 전문의사조차도 어떤 예측도 어렵다고 했던가?


2015년 즈음엔 온통 갑상샘 암 수술 환자들이 유행처럼 많았다. 수술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대부분 영위하고 있었으므로 갑상샘 암 수술 정도는 마치 편도선 제거 수술처럼 환자와 보호자들이 가볍게 받아들이던 분위기였다.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다른 일을 내려놓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부분절제는 혹여 전이되어 나중에 새삼스레 다시 수술하는 부담을 줄이자는 의도로 전절제를 권했고 그렇게 나비모양이라는 목 양쪽 갑상샘 두 개를 전절제로 제거하면 갑상샘 호르몬 샘이 제거되어 갑상선 저하증이 되므로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더러 칼슘제나 마그네슘이 함께 처방되어 복용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부갑상샘의 역할이 회복되어서 호르몬제 외에는 칼슘이나 마그네슘 복용은 사라지게 된다. 큰누나와 같은 고약한 경우를 제외하고...


뭐든지 먹어주면 몸이 알아서 칼슘과 요오드와 나트륨, 마그네슘, 인, 칼륨, 철분, 비타민 A.B.C.D.E. 오메가 three, six로 구별되어 적재적소에서 활동해주는 건강한 사람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 로또인지를 엄마는 절감 중이다. 엄마는 어느 날 쯤엔 엄마의 갑상선과 부갑상샘 절반을 누나에게 이식해주는 날을 꿈 꾼다. 엄마의 소망에 의사들은 간 등 극히 일부 장기를 제외하고는 생체이식이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답했다.


네 번째 모종은 4월 초순부터 10월 말까지 두어 평의 '텃밭 가꾸기'이다. 구청에서 운 좋게 분양된 해에는 3평이 채 안되게 구획된 밭에 상추와 고수, 깻잎, 비트,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모종과 씨앗을 같이 심어주니 모종이 성장하여 초록 이파리를 따서 신선한 야채를 먹게 하고, 이 어린 모종들이 잘 자란 후 늙어지면 뽑아내고 미리 옆줄에 심어둔 씨앗에서 튼 싹이 무럭무럭 자라며 대신 채워주었다.


그렇게 텃밭은 큰누나랑 반려견 말티스 '수리'가 함께 주변을 걸을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주었다. 연속해서 3년 동안 큰누나를 위한 상추와 깻잎 고수를 키워낸 텃밭 덕분에 누나네는 자주 밖에서 햇살을 쬘 수 있었다.


다섯 번째 모종은 행복하고 행복한 공감의 시간인 '드라마 시청'이다. 누나 아빠가 서재에서 책을 보는 동안 큰누나와 엄마는 안방 침대에 누워 벽에 높이 걸린 TV로 주 3회 드라마를 시청하며 간접 사회생활 경험을 즐겼다. 엄마랑 누나는 눈물을 흘리다가 소리 내어 웃다가를 반복하며 드라마가 끝나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어쩜 우리나라 탤런트들은 아역도 연기를 잘해요."

" 그치이? 곱고 늠름하고 연기도 잘해. 신통방통하다."


드라마는 국내에서의 학창 시절이 짧은 큰누나에게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도 엄마와 누나가 상황을 공감하고 추론하는 시간이어서 일단 아주 평화롭다.


여섯 번째 모종은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하는 누나 아빠의 '티타임'이다. 아빠는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히 여성호르몬이 많아진 모양이다. 아빠는 오전 11시가 되면 취향대로 엄마와 큰누나의 음료수를 주문받고, 커다란 접시에 과일과 비스킷 등을 마치 호텔 간식코너처럼 예쁘게 세팅하고


*남자의 정성이므로 예쁘게 읽어주기 (딸을 위해서 요오드와 비타민과 여성호르몬까지 배려한 과일과 해조류)




"Tea Time~" 을 소리친다. 티타임에는 나, 수리에게도 간식으로 작은 비스킷과 신선한 당근, 오이, 사과의 얇은 조각이 제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누나의 감정의 기복은 나날이 심해지고, 엄마와 누나의 가면 우울 증세가 깊어져 갔다. 그리고 서른의 큰누나는 사춘기에도 한 적이 없는 말대꾸를 시작했다.


누나의 건강도 정성이 모이면 꽃대가 나오지 않을까?

keyword
이전 03화라일락 향기 같은 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