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향기 같은 촉으로

내 엄마니까

by 윤혜경

보랏빛 라일락 (5월 30일 탄생화, 꽃말: 사랑의 싹이 트다)(출처: Daum)


4월 27일에 입원하고 다음 날 새벽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퇴원 직후 다음날인 일요일에 이미 손과 발의 구부러짐을 경험하여 옮겨진 응급실에서 칼슘 팩 주사를 맞으며 저칼슘혈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수술후 퇴원시 간호사는 갑상샘이 제거된 환자는 갑상샘 호르몬제를 복용해야한다고 했었다, 수술 중 갑상샘의 바로 뒤 얇은 막 뒤에 위치한 4개의 부갑상샘이 근육에 이식되었다고도 했다, 부갑상샘이 근육에 제대로 세팅되는 동안 환자는 칼슘보충제를 복용해야 하며, 처음엔 4시간마다 4알씩 복용하는 칼슘 알약의 개수를 며칠 또는 주간격으로 느낌을 보아가며 줄여간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부갑상샘이 활성화되면 이미 제거된 갑상선 역할을 할 호르몬제 1알만 평생 복용하게 되는거라고. 그동안 약 조절 중 저칼슘혈증이 발생할 수는 있다고. 그럴땐 환자가 손발이나 얼굴 저림 을 느끼게 되니 1일 16알에서 복용약 갯수를 점차 줄여가던 칼슘과 비타민 D복합제인 디카맥스 1알을 추가로 더 복용하라고 했다.


아, 수술 전날 밤 10시쯤에 찾아온 흰 가운의 의료진은 수술 관련 주의사항과 부작용 발생의 경우들을 설명하였다. 예전엔 부갑상샘 소실 건들이 발생했지만 요즘은 의료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10만 명 중 1명꼴로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사실 거의 그럴 일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경우의 수를 들으며 눈이 커지고 이마에 근심이 막 내려앉으려는 엄마를 흰가운의 그녀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안심시켰다. 그렇지만 일단 만약의 경우에 수술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항목에 보호자와 본인이 사인을 해야 수술이 진행된다고 했다. 그리고 사인을 받은 서류를 들고나갔다.


퇴원 약처방은 디카맥스를 4시간마다 4정씩 하루 24정 복용으로 내려졌다. 칼슘제를 하루에 24정씩 복용하면 변비문제가 수반될텐데... 임신때 칼슘 한 알 복용도 변비가 따라오는데 이게 무슨 상황일까 잠시 엄마는 멍했다.


퇴원수속을 끝내고 약처방을 들고 온 간호사는 이런 약처방은 자신이 간호사가 된 이후 본적이 없다고 했다, 뭔가가 잘못된것 같다며 처방의사와 확인을 하겠다고 돌아갔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나서 돌아와 그대로 처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병원약국에서도 약사가 고개를 갸웃되며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 환자는 의사의 처방을 따르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더구나 아무리 귀여운 암이라도 어쨋건 암수술이므로.


퇴원 후 큰누나는 매일 칼슘과 비타민 D 복합제인 길쭉한 모양의 연두색 알약인 디카맥스를 4시간마다 4정씩 아주 귀여운 크기의 도자기 분마기에 갈아서 물과 함께 복용 중이나 지속적인 매스꺼움과 구토가 수반되어 자주 약 먹은 직후, 또는 잠시 후에 뿜어내기도 한다. 칼슘제제의 약들이 위에 도착했을지 아님 밖으로 뿜어져 나왔는지 판단하기 애매하게... 그리고 일단 매주~2주마다 병원에서 혈액 검사 후 갑상선 외과 외래를 들르는 일정이 세팅되어 전날 금식 검사하고 다음날 외래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최소한 주 2회 병원을 방문 중이다.


그리고 암 알갱이를 제거당한 환자의 마음이 안정되도록 누나의 아빠와 엄마는 마음속으로는 긴장하고, 얼굴은 될수록 평화롭게 관리하는 시간들이 지속되었다.


수술한 지 보름여가 지난 2015년 5월 16일 셋째 토요일 아침, 누나네 엄마는 아빠에게 누나 방에 누워있는 큰누나의 손발이 퇴원 직후에 그랬듯이 혹시 오그라드는지를 잘 지켜볼 것을 단단히 부탁하고 오랜만의 외출을 준비하였다. 누나가 수술을 받기까지 2개월여 동안 여러 검사와 병원 내원들이 이어지고, 수술과 입원기간 동안 병원에서 엄마는 큰누나와 일심동체처럼 함께했다. 준비된 보호자로 상쾌하게 환자와 병원생활을 잘했고, 이제부터 누나의 회복만 남은 터이니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그 병원에 근무하는 지인 의사의 언급처럼 칼슘 수치가 조금 꺼림칙하지만...


엄마의 친구 모임 중 하나는 늘 세 번째 토요일에 있다. 원래 금요일 만남인데, 국책연구소 연구원인 친구가 공공기관 이전으로 세종시로 내려간 뒤에는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 00분으로 바뀌었다. 세종시에서 일찍 출발하여 서울 고속터미널에 도착한 친구와 서울 사는 친구들이 함께 브런치를 즐긴 후 주로 서초동 '예술의 전당' 전시회를 방문하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모임이다. 가끔은 햇살을 맞으며 인사동의 화랑을 들르거나 고궁을 걷기도 한다.


누나 엄마는 화사한 햇살의 토요일 오전에 침대에 누워있는 큰누나에게는 미안하면서도, 그동안의 답답했던 일정에서 벗어나며 조금은 들떠서 이른 아침부터 몸놀림이 가벼웠다. 바람을 쐬고 오면 덕분에 신선해진 머리와 마음으로 간호를 잘할 수 있을 테니까.


옷에 맞춰 가방과 구두를 고르고, 스카프와 손수건을 선택하고 아주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그리고 아빠와 누나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식탁 옆 벽의 전신 거울로 매무새를 확인하고 구두를 신었다. 입구의 전신 거울앞에서 차림새를 또 비춰본다. 이 집을 고칠때 엄마는 옷장과 식탁 옆 벽, 현관 장식장에 길게 전신거울을 설치했다. 바쁠때 어디에서나 한번에 옷 매무새를 확인할 수 있도록 호주에서 살던 집을 본따서. 호주에서 세살던 집에서는 안방 옷장의 미닫이 문들이 온통 거울이어서 편리했던 기억으로.


"다녀올게요~"


다시 거실 쪽을 향해 외출 인사를 하고 등 뒤의 현관문을 막 닫는 순간, 집 깊숙한 안쪽에서 뭔가가 넘어지며 부서지는 '우당탕' 소리가 났다. 엄마의 머리와 등이 서늘해졌다. 닫으려던 현관문을 열어 당기고 들어선 엄마는 핸드백을 현관 바닥에 내던진 채 곧바로 거실을 지나 소리의 진원지인 큰누나의 방을 향해 달려갔다. 점점 커지는, 요란하게 넘어지며 부서지는 소리의 방향이 주는 불길함이라니...


큰 누나 방의 굳게 닫혀있는 여닫이 방문을 가까스로 밀어 열었을 때, 엄마의 눈앞에는 조금 전에 차를 마시고 들어간 큰누나가 문 뒤의 방바닥에 의식을 잃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누나 책상 아래에 위치하던 컴퓨터 본체와 의자가 함께 넘어지고, 직사각형의 스피커와 스테인리스 휴지통은 찌그러져 나동그라져 있다.


요란한 우당탕 소리는 큰누나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였나 보다. 엄마가 처음 본 누나의 모습은 생경했다. 엄마가 낳아 기른 30년 동안 큰누나가 의식을 상실하고 눈을 감은 채 반듯하게 쓰러져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으므로.


"이게 무슨 일이래요?"

"얘가 왜 이래요?"


현관에서부터 불길한 소리를 듣는 순간 소리 나는 방향을 향해 달려들어왔던 엄마는 아빠를 소리쳐 불렀다. 누나 방 입구에서 엄마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던 아빠는 그제야 왔다. 주방에서 커피를 준비하던 아빠는 커피포트가 끓는 소리에 묻혀서 주방 벽에 걸린 TV에서 나오는 음악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는 눈을 감은 채인 누나를 아빠와 함께 들어 침대 위에 눕혔다. 누나의 굳어진 손가락과 발가락을 조물조물 주물러 펴주며 엄마는 나지막하고 부드럽게 누나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른다. 누나의 호흡이 시작된 것을 확인한 후, 흔들리는 목소리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달려가서 누나를 안아 품을 동안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아빠에게 엄마는


"그토록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를 가까운 부엌에서 어떻게 못 들을 수가 있어요?"

했다.


그렇게 큰누나의 수술 후 스멀거리던 불안함이 현실이 되었다. 119에 실려 창백한 누나가 병원으로 가는 동안 동승한 엄마는 자신의 머리를 차갑게 하는 데에 집중했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누나의 수술 후 기대한 평화로운 일정에는 없었던 생경한, 몹시 생경한 상황이므로.


엄마가 현관문을 닫고 나간 직후였다면 아빠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누나를 언제쯤 발견하게 되었을까? 문이 닫힌 누나 방문을 열고, 엄마가 당부한 대로 엄마가 외출한 이후에 1시간마다 성인인 누나의 손발이 혹시 오그라지는지 확인하려고 아빠가 들어가 볼 수는 있었을까? 쓸데없는 가정법은 엄마를 자꾸만 오그라들게 만든다.


"내 엄마니까 딸에 대한 라일락 향기 같은 촉이 있었을 거야."


라일락을 제일 좋아하는 큰누나는 입원실에서 마음이 평온해진 뒤에 엄마에게 고마움을 그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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