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릴 수 있는 나이

‘잊어버릴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 있을까?

by 가오리다
넌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가끔은 너에게 미련이 생기다가도 네가 나를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는 나이에 나와 헤어져서 다해이라는 생각이 들어.
상처가 나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살아온 모든 시간을 망각 속에 던져버릴 수 있는 나이에 너는 나를 떠나보냈구나.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잊어버릴 수 있는 나이’라는 게 있을까?


물론, 가볍게 스치고 평범했던 순간에만 함께했던 사람이라면 ‘잊어버릴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의 소설자 ‘나’와 소설자가 생각하는 ‘너’ (조카)는 감히 단순하게 잊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그에 복종하는 어머니와 살며 알게 모르게 불안이 생겼을 테고, ‘나’를 유독 반기고, ‘나’와 노는 것을 즐거워하고, 어떠한 일이 있을 땐 눈치를 봤던 것은. ‘나’가 그 작디작은 아이의 하나뿐인 숨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어린아이를 볼 때에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 애기니까. 어리니까 잊어버릴 거야.‘ 물론 기억이 더 많이 보관되는 어른들과 달리 어린아이들은 하루하루 커 가며 잊어버리는 기억이 더 많은 것은 확실하다.

새로운 것들이 넘쳐날 테니까. 세상 사는 것을 하나, 둘 씩 배우며 커다란 세상 속을 헤엄치기 바쁠 테니까.


그러나 그 작은 아이들도 잊지 못하고,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때의 어린 날. 어린 시절의 작은 감정과 숨통. 작은 습관들과 그 시절의 분위기까지.

깊게 하나하나 기억하진 못 해도 그 시절의 무언가는 마음속에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평생 가져갈 본인의 성격, 기본 감정 베이스 등을 좌우지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글 속의 말처럼 ’ 상처가 나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회복능력일 것이다. 마음엔 품지만 겉과 함께 성장하는 그 속에서는 금방 회복할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을 배우면서도 나를 떠난 이들을 기억한다면 그 누군가들처럼 원망, 이해, 체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떠나간 것을 기억하지 않고 어린 모습 그대로 해맑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어리든 어리지 않든 감정으로 얽힌 기억과 상황은 누구에게나 하나의 무언가로 남기 마련이다. ‘완전히’란 없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ch.4 답신)’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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