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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냉이 Oct 26. 2024

이제야 조금 나누어 드릴 것이 생겼네요

이제야  조금  나누어  드릴  것이 생겼네요.


오랜만에 하늘이 맑고 높습니다. 긴 골목을 걸어 나가다 마주하는 낡은 집 대문 지붕 위에는 벌써 여러 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까마중이 있습니다. 한해살이 풀인 까마중이 매년 같은 자리에서 자라는 것이 신기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흙도 거의 없고 돌처럼 단단한 시멘트 지붕 위에서 해를 거르지 않고 같은 모습으로 자라는 까마중은 올해도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성실하게 자랐습니다. 이 집의  주인아주머니는 이 풀을 예쁘게 보셨는지 까마중을 뽑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올여름은 정말 길고, 지루할 정도로 더웠습니다. 어떤 날은 쉽게 물이 마르는 시멘트 바닥 위에서 모자란 수분으로 잎이 시들어 버린 까마중을 보는 날도 있었습니다. 올해는 종자를 맺기는 어렵겠구나 싶었는데 오늘 보니 까만 열매를 달고 있었습니다.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훈장처럼 열매를 달고 뿌듯한 얼굴로 서 있는 까마중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이제는 내 열매를 따가도 된다고 검은 종피에 번지르한 햇빛을 바르고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적지만 땀 흘려 키운 소중한 열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대문이 높아 열매를 따먹을 수도 없지만 그동안 까마중이 생장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선물이 됩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 발치의 작은 식물들을 살펴보시라고 권합니다. 이제 겨울이 오면 그들은 자취를 감추겠지만 치열하게 한해를 살아온 풀들의 모습에서 작은 위로와 격려를 찾아내셨으면 합니다. 같은 집에 사는 형제가 죽어도 며칠을 모르고 지나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바라 봐 주지 않는다면 상대도 당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난 한 해를 정말 열심히 살았고 이제 크고, 작고를 떠나서 소중한 결실들을 거두어 드릴 때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존재 만으로도 훌륭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 열매 속에 살아온 당신의 흔적들이 반짝이고 있다는 걸, 그것이 아주 소중한 것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당신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삶의 열매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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