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추석까지 버티던 열대야가 한바탕 비가 쏟아지더니 물러났습니다. 골목 위에 걸쳐진 하늘은 구름을 떼로 몰고 다니며 가을, 가을하고 있습니다. 날이 좋아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러 올라갔다 옆집 옥상에 자라고 있는 닭의장풀을 보았습니다. 한때 부지런한 손길이 있을 때는 자리 잡을 엄두를 못 내던 식물들이 요즘은 옥상의 화단이나 버려진 화분에서 무리를 이루어 자라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망초, 개망초, 개비름, 털별꽃아재비 같은 종들이며 닭의장풀도 그중 하나입니다. 어릴 때 닭의장풀은 소꿉놀이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길가의 풀섶이나 공터 등 어느 곳에서고 쉽게 볼 수 있었던 닭의장풀의 잎으로는 반찬을 만들고, 줄기로 나물도 무치고, 열매는 콩밥을 지었습니다. 여기에 파란 꽃으로 장식을 하면 그럴듯한 밥상이 마련되었습니다. 요즘 아이들도 소꿉놀이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풀꽃보다 훨씬 강하게 눈과 손을 잡아당기는 게임들 덕에 한눈팔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달개비라 불리던 풀은 이제 생장을 방해하는 사람의 손길마저 줄고 있으니 제세상을 만난 듯 담장을 넘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닭의장풀, 망초 같은 식물들이 골목이나 옥상에 늘어가는 만큼 사람들도 사라져 갑니다. 또 개인이 간직한 추억들도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 옥상도 저 식물들이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에 나에게서 우울함이 피어오르는 것 같아 바삐 옥상을 내려왔습니다.
닭의장풀을 보면 쉽게 닭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닭의장풀의 꽃은 3장의 꽃잎에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2장의 꽃잎은 짙은 푸른빛이 돌거나 연한 보랏빛을 띠고, 아래쪽에 꽃받침처럼 생긴 꽃잎 한 장은 희거나 투명한 빛을 띠고 있습니다. 6개의 수술은 위쪽의 3개와 중간의 1개는 수정을 해줄 곤충을 유도하는 헛수술이고 아래쪽 암술 옆의 두 개가 꽃가루가 있는 수술입니다. 예쁜 모습과 독특한 꽃의 구조 때문에 식물해설을 하는 분들이 우선적으로 찾아보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요즘엔 이식물의 약성과 나물로서 먹었을 때의 맛을 소개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최근엔 닭의장풀로 와인을 담그는 동영상을 보기도 했습니다.
닭의장풀의 학명은 Commelina communis L.입니다. 학명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식물의 공식명칭을 말합니다. 닭의장풀에 학명을 붙인 이는 이명법의 창시자인 린네입니다. 이명법은 라틴어를 사용해 식물의 속명 + 종명 + 명명자의 순으로 이름을 적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Commelina는 식물의 속명, communis는 식물의 종명, L. 은 닭의장풀에 학명을 붙인 린네를 말합니다. 린네(1707-1778)는 18세기에 활동한 의학자이자 생물학자입니다. 그는 식물을 공부하던 17세기말에 네덜란드에서 발행된 호티 메디치 암스텔로다멘시스 (Horti Medici Amstelodamensis, 1697-1701년 발행)라는 책을 많이 참고했다고 합니다. 이 책을 만든 사람은 코멜린(Commelin) 가의 사람인 얀 코멜린(Jan Commelin, 1629–1692)과 캐스퍼 코멜린(Caspar Commelin (1667–1731))입니다. 얀은 역사학자이면서 식물학을 연구했던 아이작 코멜린의 아들입니다. 그는 동인도와 서인도에서 많은 식물들을 들여오던 시기 그 식물들을 배치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습니다. 얀은 후이데코퍼 반 마르세빈과 함께 호투스 메디쿠스의 감독자 역할을 했는데, 호투스 메디쿠스는 나중에 식물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의 조카인 캐스퍼는 암스테르담 식물원의 원장이었으며, 얀이 시작한 일을 완성하고, 책을 발간했습니다. 린네는 얀의 업적을 기려 Commelina 속을 이름 붙일 때 그의 성을 붙였습니다. 닭의장풀은 꽃잎 두장은 푸르고 아름다운 데 반해 한 장은 희고 조그마한데, 이를 두고 코멜린가의 세 사람 중 아이작은 얀과 캐스퍼에 비해 식물학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비유해 이름 붙인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닭의장풀 이야기가 네덜란드 식물학자로까지 발전했습니다.그냥 지나칠 수 있는 저 작은 풀 하나에서 많은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사라져 버릴 우리의 삶이지만 오늘 주어진 나의 시간을 나의 색깔대로 보낸다면 훗날 누군가는 나의 삶을 기억해주지 않을까요? 내가 닭의장풀의 학명에서 마주한 아이작 코멜린의 삶이 궁금해져 그의 이야기를 좀 더 찾아보려는 것처럼 누군가는 당신의 따스한 모습을 떠올리는 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