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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냉이 Sep 30. 2024

나를  알아  봐줄 이 따로  있습니다

나를 알아  봐줄 이 따로 있습니다


안양천에서 시작해  목감천을 걸었습니다. 파란  하늘, 운동을  나온  시민들은  익어  가는  가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과거  걷기  조차  어려웠던  하천은  이제 자전거 도로와  인도가 구분된  포장도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한창  꽃을  피운 수크령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기분  좋은  하루입니다.


요즘은  하천의  경관을 꾸미기  위해  지자체의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화단이나  대규모  꽃식재지를  조성하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봄이면  유채를  심고 여름이면  메밀을  볼  수 있습니다.  해바라기나 핑크뮬리, 백일홍, 코스모스 등 종류도  다양해지고  면적도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예전에는  제주도에  가야  넓은 유채꽃밭을  지금은  서울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서 유채꽃  때문에  제주에  가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수변을  점령한  환삼덩굴

그렇다고  하천의  모든 곳에  꽃식물들을  심은  것은  아닙니다.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환삼덩굴이나  가시박, 둥근잎나팔꽃 같은  덩굴식물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덩굴식물들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곳은  강아지풀, 바랭이, 단풍잎돼지풀 같은 식물들이  대장이 됩니다. 이렇게  몆 가지  식물들이  우점하게 되면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하천의  식물세계를 이루는 식물의  종수가  너무  단순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물종다양성이  감소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종다양성이  감소하게 되면  생물들의  생존 가능성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식재한 노랑코스모스와  바랭이와 강아지풀이  섞여  자라는 둔치

금강아지풀  무리  속에  하얀  꽃을  피운  식물이  있습니다. 가을에  꽃을  많이  피우는  국화과  식물은  아니었습니다. 풀섶을  헤치고  들어가  확인해 보니  그것은  부추꽃이었습니다. 식탁 위에서  김치나  전의  모습으로  보던  부추입니다. 기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방에 지신보다  큰  풀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꽃까지  피워 냈으니까요. 사진을  찍으려 몸을  숙이니  거기에는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꿀과  즙을  찾아서  부전나비와  노린재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식물이지만  꽃을  피우니  다른식물들을 밀쳐내며  찾아온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하며  좌절에  빠질  때  부추꽃과  부전나비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오늘  부지런히  뿌리는  씨앗은  곧  싹이  나고  자라서  고운  꽃을  피울 것입니다. 당신의  수고와  노력을  폄하하지  마세요. 당신과  당신의  하는 일들은  소중한  것이고  많은 이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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