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냉이 Sep 28. 2024

당신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당신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기분  좋은  날입니다.  파란 하늘은  높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지켜주는  공간에서  바랭이들은  충분히 만족할 만큼  풍요롭습니다. 하늘엔  구름이 많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강한 비가  내려도 물 빠짐이  좋은 흙에서  바랭이  종자들은  잘  익어갈  것입니다.

내 몸과 가족이 건강하고, 하는 일들이 잘 풀려갈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좋은 직장이 있고, 은행의 계좌도 넉넉하면 혹시 모를 앞날을 위해 보험을 들어 놓고, 꾸준히 운동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견고하게 쌓아 놓은 우리의 삶이 하루아침에 거품처럼 사라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단단하고 보기 좋았던 바랭이군락의 평화가 한순간에 깨져버렸습니다. 바랭이들에게 그늘을 드리워 주던 느티나무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바랭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만행이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존재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원의 관리인들이 무성하게 자란 바랭이의 숲을 없애 버렸습니다. 예초기로 줄기만 쳐버렸다면 다음 기회를 노려 볼만했지만 바랭이의 생장 특성을 잘 알고 있던 관리인들은 바랭이를 뿌리 채 뽑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바랭이군락처럼 당신이 쌓아 놓은 부, 당신의 명예, 당신의 건강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면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대부분 좌절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바랭이들을 뽑아 쌓아 놓은 무더기 옆 벤치에 앉았습니다.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아 바랭이들은 갈색으로 말라버렸습니다. "아, 산다는 게 결국 이런 걸까. 어느 아침 정리의 인사도 없이 떠날 수도 있는 것일까." 며칠 전 가끔씩 연락을 하던 후배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던 그는 갑작스럽게 확인된 암으로 홀연히 세상을 등진 것이었습니다. 상주인 그의 형제들이 조용히 장례를 치렀기에 뒤늦은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는 것이 참 순간이다 싶었습니다. 

바랭이들은 다 뽑혀 버렸지만 우리는 내년에 또 바랭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수의 씨앗들이 땅 위에 떨어졌고, 또 씨를 맺기 전에 바랭이를 뽑았다 해도 과거에 떨어진 씨앗들이 토양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계절의 변화와 적당한 햇빛과 비가 필요할 뿐입니다. 

나는 지금 바랭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 삶의 한 면을 비교해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습니다. 올해 뽑힌 바랭이는 내년의 바랭이와 같은 바랭이가 아닙니다. 같은 종일뿐인 것이죠. 어쩌면 좀 더 넓은 시야로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랭이는 한해살이 풀이고 우리는 그에 비하면 매우 오래 사는 생물입니다. 우리가 살며 겪는 위기를 바랭이의 한해살이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해에 걸쳐 쌓아 놓은 우리의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다 해도, 바랭이들처럼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에겐 경험과 추억 등 소중한 씨앗들이 있으니까요. 

9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나 둘일 년의 열매들이 익는 계절입니다. 나의 열매들을 헤아려 많고 적음에 연연해할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내가 뿌려온 씨앗들의 가능성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전 07화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