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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늘 Nov 07. 2023

아이를 왜 낳아?  고양이나 키울 거야.

“누나? 나야. 지금 바빠? ”

“아니, 무슨 일인데?”

“음, 우리 쌍둥이 아이들 영어 수행평가 준비하는 데 좀 도움이 필요해서….”

“수행평가? 벌써 시험을 봐? 중 1 아니야? 시험 없지 않아?”

“아니야, 고등학교 갈 때 성적에 반영은 안 되지만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는 시험을 봐. 기 말 고사 한 번. 아이들이 첫 시험이라 그런지 많이 긴장하는 것 같아.”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밥벌이를 했던 내가 학교를 떠난 지 몇 년 되었다. 가르쳤던 과목이 영어인지라 동생은 영어 수행평가 관련해서 이것저것 물어볼 겸 전화를 해왔다.

“그 동네 영어학원 많을 텐데, 거기 선생님들에게 도움받으면 훨씬 낫지 않아? 내가 오래돼서 감도 떨어지고 뭐 알겠냐?”

하면서도 나는 동생이 보내준 조카들의 영어 작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쌍둥이 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동생네는 말 그대로 헉헉대며 육아를 하고 있다. 유아기,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기의 자식을 키우는 단계까지 왔는데도 모든 게 난생처음 해보는 일인지라 매 단계 매 순간 힘들어했다. 대한민국 대부분 아이가 접하는 사교육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며 나름 소신을 가지고 홈스쿨링 비슷한 것을 하고 있던 동생은 내심 불안한 듯했다.      


새로운 교육과정의 도입과 함께 등장한 수행평가, 사실 잘 운영되기만 한다면 수행평가는 좋은 제도이다. 아이들의 학습 과정 그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기에.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지필 고사에 방점이 주어지면서 수행평가는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부담스러운 시험의 한 종류로 인식되고 있는 점도 없지 않다.      

어쨌든 쌍둥이 조카들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학교에서의 수행평가 앞에서 은근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조카들의 영어 수행평가 과제는 주어진 글감에 대하여 글을 쓰고 그 대본을 암기하여 발표하는 형식의 쓰기 및 말하기 평가가 핵심이었다. 주어진 글감은 '자신의 롤 모델'이었다.

비중도 1회의 지필고사와 맞먹었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학교에서의 시험이었고 성적 여부를 떠나 의미 있는 경험으로 기억된다면 좋겠다 싶은 생각 들었다.


동생이 보내준 아이들 작문 내용을 보면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글로 표현된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접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큰아이의 롤 모델은 오드리 헵번이었다.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타파니에서의 아침을’ 등의 영화 제목을 열거하며, 배우로서 성공했지만 화려한 배우의 삶보다 은퇴 이후 암 투병을 하면서도 유니세프 대사로 인권운동과 자선사업 활동을 한 그녀의 삶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아이는 오드리 헵번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배우가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는 게 신기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나 보았다.


둘째 아이의 롤 모델은 우리나라 천재 물리학자였던 이휘소였다. 살아있었더라면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 거라고 주장하며 그의 삶의 태도와 노력을 본받고 싶다고 썼다.


이런 종류의 주제로 글을 쓰라면 대부분 아이들의 글은 비슷한 색깔을 띤다. 도식적이고 일률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도 그러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던 인생의 어느 한 시절,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남다른 성취를 이루어 낸 소수의 사람 만나며 우리는 우의 ‘꿈’ 같은 것을 살며시 꺼내어  하늘 높이 매달아 보곤 했었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나는 조카들의 글을 보는 내내 즐거웠다.

    

나는 교사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평가 기준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그 항목들에 맞추어 하나하나 체크해 나갔다. 단어의 수, 문법의 활용, 문장의 수, 주제 표현의 명확성 등, 나름 정량적 평가 기준부터 확인하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늘 하던 일이었다.  

    

“어? 한 문장에 단어 수가 10개 이상이면 이 문장은 한 단어가 모자라네?”

“교사는 먼저 단어의 개수 충족이라는 정량적 평가 기준 만족 여부부터 확인할 거야. 글의 내용 이전에. 어쩔 수 없어.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여러 기준을 세분화해야 하니까.”

“와, 어렵네. 그뿐이 아니야. 배운 문법을 반드시 활용한 문장을 만들어야 한대.”

“그렇지, 배운 문법 지식을 활용할 줄 아느냐 하는 것도 평가의 기본적인 척도가 되지.”

“그러고 나서 인상적인, 차별화된 내용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어떤 어휘를 사용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하고.”
 “헐, 뭐 이렇게 어려워? 중학교 1학년인데.”

“중요한 거는 네가 문장을 만들어주는 건 좋지 않아. 일단 자유롭게 쓰게 하고 검토 과정에서 가볍게 도와주면 돼. 그것도 정답 제시 말고 가능하면 질문의 형태로.”


나는 간 만에 엄청나게 선생 노릇을 했다.     


밤늦은 시각인데도 동생은 계속해서 이것저것 물어왔다- 전반적인 10대의 심리상태, 교우관계, 사춘기 등-. 이미 육아가 끝난 누나의 경험담이 필요하다는 듯.

그런데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는데도 동생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있는 게 아니라 관심과 애정, 열정, 즐거움 같은 게 가득했다.     

“음, 그런데, 너 퇴근하고 이 시각까지 아이들하고 씨름하는 거, 힘들지 않아?”

“아니, 재미있어. 사실 그냥 같이 평소에 밥 먹고 놀고 할 땐 몰랐는데 아이들의 글을 접하고 보니 아이들 생각도 알게 되고 궁금한 것도 생기고, 힘은 들지만 재미있어.

요즘은 난생처음 해보는 아이들 수행평가 들여다보느라 친구들과의 저녁 술 약속도 안 잡는다니까. 하하.”

“애, 과도한 관심과 개입은 금물인 거 알지?”

“음, 알지. 그런데 그냥 신기하고 대견해.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게. 기어 다니고 서고 걷고 새로운 말을 한마디씩 하고, 세발자전거에서 두 발자전거로 옮겨 타고, 이제 교복을 입고 중학교 가고….

손이 참 많이 가긴 하지만 저 아이들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몰라.    

  

결혼 이후 7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그 힘든 시험관 시술을 몇 번 도전한 끝에 얻은 아이들이었다. 시험관 시술로 자리한 아이들은 쌍둥이였고 임신 10달 동안 유산 징후가 계속 있어서 거의 10개월을 입원해 보내야 했던 아이 엄마.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후에도 쌍둥이 육아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도의 일이었다.

같이 울고 같이 깨고 같이 먹고 같이 씻고, 심지어 같이 아프고….

아이 엄마인 나의 올케는 육아 기간 중 심한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서 린이 집에 다니던  어느 날,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동생네 부부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쌌다고 했다. 알록달록 모양을 내고 김밥, 주먹밥, 과일과 과자 등을 챙기고 하트 뽕뽕 메모지도 써넣고.

그깟 아이들 소풍 도시락 하나 싸면서 새벽부터 웬 호들갑이냐고 웃을 수도 있지만 부부의 모습은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게 처음 해보는 일들이지 않았을까? 처음 해보는 일은 어렵다. 그리고 신기하기도 하잖은가 말이다.   


동생네 부부는 도시락을 다 싸고 소파에 드러누우며 말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커서 우리가 이렇게 새벽부터 저들 도시락 싸느라고 고생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할까?”

“에이, 뭘 그런 걸 알아줘야 해? 난 그냥 아이들이 커서 우리가 저들 키우며 고생하고 맘 졸였던 거 하나도 안 알아줘도 괜찮아. 그냥 저들 키우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이들은 모를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난 아이들이 오히려 고맙지.”     


가끔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생네 부부의 사진을 볼 때면 그 자체로 세상에 더 이상의 기쁨과 환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향해 두 팔 가득 벌려 다가가는 부모의 얼굴을 그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조카들이 성장 과정에서 보여준 너무도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난 여전히 기억한다. 기억도 잘 안 나는 다 커버린 내 아이들 대신 가끔은 어린 조카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소환해서 보곤 한다.

사람이,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인간은 확실히 신의 창조 영역이구나…. 하며 혼자 기분 좋은 감상에 빠지곤 한다.


 밤에 잠을 잘못 자서 찌뿌둥한 컨디션으로 아파트 주변 공원을 걸어가는데 근처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바깥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보였다. 열두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공원 여기저기 둘러앉아 땅바닥에서 무언가 살피며 꼬물거리고 있었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생명들. 아장아장, 뒤뚱뒤뚱 걸어가는 작은 아이들. 숨이 멎을 만큼 예뻤다. 한참 바라보다 보니 아침의 찌뿌둥한 기운이 싹 가셨다.

아, 자연, 생명, 사람,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는 대체 불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태아 전문 전종관 서울의대 교수는

“부모가 됐다는 사실, 자식의 존재 자체가 주는 기쁨과 환희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 직장 생활은 전투잖아요. 각박한 생활을 하다가 집에서 아이들이랑 놀고 산책하면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있을 땐 꾸밀 필요도 없고 계산적일 필요도 없잖아요. 제가 충전됩니다."

라고 한 직장인 아빠는 말했다.


한국의 저 출 현상은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10년 동안 1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도 나아지지 않는 출생률.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은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라는 말과 동의어 같기도 하다. 슬프다.


아이를 낳아 기르지 못하게 하는 한국사회의 너무도 많은 구조적인 문제는 그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것 없이 아이를 낳아 길러라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러나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임신과 출산, 육아 등의 험난한 미션을 수행하면서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은 소중하니까.’라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난 결혼 안 할 거야. 설령 결혼해도 아이는 안 낳아. 우! 그 힘든 일을 왜 해? 몸도 힘들어, 돈도 많이 들어, 저 ‘금쪽같은 내 새끼’ 봐봐. 저렇게 말도 안 되게 성질부리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 난 그냥 고양이나 키울 거야.”라고 말하는 20-30대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고 어느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멋진 선물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미리 걷어차버릴까 봐 걱정된다. 안타깝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고통과 수고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거기엔 분명히 상상도 못 할 기쁨이 있다. 매 순간 새로운 생명이 주는, 그 생명이 성장 과정에서 선사하는 수많은 선물들은, 놓치기엔 너무 아깝지 않을까?

쌍둥이 조카들이 친구들 앞에서 작은 가슴 두근거리며 발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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