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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울 Nov 21. 2023

피로한 가을, 필요한 시간

D-29

때는 바야흐로 작년 가을.

연애 경력 5년차였던 우리에게도 위기가 왔다.




남자친구가 일병이라 군 생활도 힘든데, 나와의 관계도 지친다고 했다.

아니, 나 때문에 지친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우리는 분명 하루에 1시간 이상은 통화하면서 행복한 연애를 해왔는걸?

비록 네가 군대에 갔지만, 요즘 내 연애 만족도는 그 언제보다 높았다고!

결국 우리는 일주일 정도 연락을 쉬고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참고로 우리에게 시간 갖기는 남들이 생각하는 이별 전 단계는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각자 생각할 시간, 마음의 여유를 다시 되찾을 시간을 갖는 시기이다.




<그 여자의 마음>

3월에 입대해서 8개월 동안 우리는 거의 매일 전화를 했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잘 지낸 건, 전화를 많이 해서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와 연락을 정말 오래, 많이 했다.

그래서 난 우리의 잦은 연락은 우리가 아직도 잘 만나는, 군대 생활을 버티는 비결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피곤한 날도 있었지만 너와 이야기를 하고나면 피곤이 가시는 날도 많았고, 피곤해도 너를 위해 꾹 참았다.

너는 분명 나와 전화를 하는 게 좋을 테니까.




<그 남자의 마음>

군대 내의 인간관계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너와 전화를 하는 게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

마음 놓고 편하게 전화할 공간이 없다보니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이나 창고 같은 곳에서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의자는 플라스틱으로 된 작고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였고, 몇 시간을 그 불편한 의자에 앉아 전화를 했다.

전화를 쉬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피곤하다고 전화를 일찍 끊자고 하면 너는 서운해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은 못했다.




우리는 서로 배려랍시고 피곤해도 참고 연락했다. 그리고 그게 마냥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커플들은 연락을 많이 한다고 하니까, 연락을 적게 하면 오해가 생겨 싸우고 헤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도 그렇게 연락을 많이 하는 커플은 아니었고, 연락이 덜 된다고 크게 서운해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피곤하거나 연락을 쉬거나 미루고 싶으면 상대방에게 미리 이야기를 하기로, 연락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위기의 순간은 항상 가을이었다.

한 해가 슬슬 끝나가는 지점이기도 하고, 날이 추워지는 시기이기도 한 가을.


그때만 되면 내 몸은 뭔가 더 피로해지고 기운도 없어지고 감기도 잘 걸린다.

더군다나 그런 가을에 너와 싸우거나 시간을 가져야 하면 마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해롱거린다.


우리의 작년 가을도 예년보다는 제법 쌀쌀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추워지면 이불과 난방이 필요하듯, 우리의 관계에 가을이 오면 우리 나름대로 두꺼운 옷을 꺼내 입으면 되니까.

그리고 그러다보면 우리에게 딱 맞는 적정 온도를 찾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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