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쿠도 서점 1층과 2층에서 다양한 문구류를 구경한 후, 본 목적이었던 그림책이 있는 3층에 도착하였다.
그림책 코너라기보다는 아동서적 코너에 그림책이 속해있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부분은 확실히 마루젠 서점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부분. 3층 좌측 편에서 아동서적 코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잘 정돈된, 도서관 같은 서점
그림책이 점점 보일 무렵, 내가 마치 도서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는 번잡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각을 잡고 정돈된 느낌이 강했다고나 할까. 작가의 매대나 특별한 판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책으로만 승부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간 그림책 매대가 이 정도. 나머지 그림책은 주로 꽂혀있었다.)
엄청나게 길쭉한 책꽂이 사이에서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그림책들. 확실히 그림책을 밀어주는 마루젠 서점과는 다른 스타일임이 틀림없었다. 준쿠도 서점 1층 입구 쪽에 EHONS를 보긴 했지만, 3층에서는 따로 찾을 수 없었다. 넓은 공간이 장점이라면 장점. 지금까지 갔던 서점들 중에 심리적으로 가장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준쿠도 서점이었다.
신간뿐만 아니라 각 책꽂이별로 아기를 위한 그림책, 탈 것 그림책, 출판사별 그림책, 작가별 그림책 등 구분이 잘 되어있다는 점을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범주별로 그림책이 묶여 있으니 한 범주 내에서 그림책이 어떻게 다양하게 구현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손이 닿기 쉬운 쪽에는 그림책을 펼쳐서 진열한 것이 눈에 띄었다.)
유명한 특정 작가의 그림책이 잘 보이게 전시된 것은 타 서점과 비슷했으나, 내가 자주 언급했던 구도 노리코라던가 시바타 케이코 등 한 작가에게 너무 쏠리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서점마다 진열되어 있는 그림책의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처음 보는 그림책을 통해 그림에 대한 통찰력이 넓어질 수 있었다.
아동서적 코너임에도 책꽂이의 높이가 높았던 편이라, 아이들이 막 편하게 그림책을 고르기에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아기나 어린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은 책꽂이의 높이가 더 낮았다). 내가 선호하는 만화 같은 그림책보다는 정석적인 그림 스타일의 그림책 위주의 세팅이랄까.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이와 부모라면 큰 신경은 안 쓰겠지만 내 그림 취향에 있어서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었다.
뭔가 여유로운 분위기이면서도 그림책이 메인이 아니다 보니, 팥이 없는 붕어빵 같은 느낌도 들었으나 이곳에서도 보물처럼 새로운 그림책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책의 경계란 무엇일까
그림책을 처음 접한 어린 시절부터 그림책은 올드하고 옛날이야기인 데다가, 교훈을 주는 책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림책작가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그 틀은 산산이 조각났다. 왜냐하면 시대가 변할수록 그림책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견한 후쿠자와 유미코의 여름 그림책 <ぎょうれつのできるアイスクリームかきごおりやさん>. 구도 노리코의 그림책은 단순하면서 장난스러운 캐릭터의 모습이 매력이라면, 후쿠자와 유미코의 그림책은 장난기보다는 마음이 포근해지고 귀여운 그림체가 매력이다. 이런 그림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림책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책이라는 것은 동화책, 만화책과 구분지울 수 있는 것일까? 그래픽 노블 또한 그림책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현대 사회는 유튜브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워낙 다양한 정보, 이슈를 접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많은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 속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림책이라는 분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림책 또한 수많은 변화를 거치고 있으며 이를 바라보는 주 독자층, 작가의 시선도 높아졌을 것이다. 매 순간 새로운 그림책들이 쏟아지는 이 세상 속에서 '그림책이란 이래야 해'라는 틀을 가지는 것이 정답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경계, 틀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내가 좋아하는 구도 노리코의 <노라네코군단>만 봐도 크기가 커진 만화책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옛날에는 이런 그림책이 존재한다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틀을 비틀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그림책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여러 번 수상한 것을 보니 순간적으로 구매 충동이 느껴졌다.)
평소에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내용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한 이유가 있다. 준쿠도 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된 타나카 타츠야의 <おすしが ふくを かいにきた>. 번역하면 <초밥이 옷을 사러 왔다>. 초밥이 옷을 산다고? 무슨 말이지? 등에 회를 붙이고 다니는 선글라스를 낀 초밥이라니. 건물을 접시로 표현하다니. 표지부터 이 책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충격을 받은 장면. 그 이후의 장면 역시 충격적이었다.)
평소 미니어처에도 관심이 있던 나에게 이 그림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등에 있던 횟감이 옷이었다. 이것을 옷이라고 생각하고 표현한 장면이구나! 기발함과 신선함, 그리고 상식 내에서 허용가능한 스토리였기에 이 모든 것들이 아우러져 멋진 그림책이 된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존재했던 그림책의 경계가 또 한 번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미니어처를 소재로 그림책을 만들 수도 있다니. 우리나라에서도 <알사탕>이나 <건전지 아빠>같이 그림이 아님에도 이런 식으로 멋진 작품이 존재한다. 무조건적으로 독창적인 것이 좋은 게 아니라, 대중에게 공감받을 수 있으면서 기존의 틀을 깬 작품은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서점 밖을 나오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한국에 가서 그림책 작품을 구상할 때 이 문장을 잊지 말자. 상대에 대한 이해, 공감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문구류 구경도 좋았지만 새로운 분위기의 서점에서 느낀 새로운 감정. 준쿠도 서점에서 보낸 시간은 짧았으나 얻은 경험은 다른 서점에서의 시간못지않게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