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벌금, 비용.
고등학생 때, 반에서 지각비를 걷은 적이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도 크지 않은 금액이었기에,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그 규칙을 수용했다. 그런데 지각비 제도를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계획을 털어놨다. 당일 새벽에 해외 축구 경기를 하는데, 본인은 그것을 꼭 보고 싶다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팀을 응원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지만, 새벽까지 축구 경기를 보고 자면 지각할 게 뻔했다. 그 친구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를 들은 다른 친구가 어차피 지각해봐야 지각비도 얼마 안 되는데, 그냥 내면 되지 않냐는 식으로 말했다. 축구 경기를 보고 싶어 했던 친구 역시 그럴 심산이었다고 했다.
당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각비는 말할 것도 없이 벌금이다. (이유 없는) 지각이라는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암묵적인 전제 하에, 서로의 탈선을 바로잡기 위해 설정해놓은 페널티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지각비를 해당 금액을 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각을 해도 되는 비용 처리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각비를 낼 테니, 나에게 지각에 따른 도덕적인 비판을 가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대 사회의 죗값이라는 말도 그런 식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 건 당신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권장할만한 것이 아니며, 심지어 계속 고치지 않을 시엔 공동체로부터 배제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시사한다. 즉, 처벌이나 형벌은 행위자에게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는 교정의 역할을 수행하고,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어 반성도, 교정도 없이 마치 물건에 매겨진 금액처럼, 나는 나의 죄에 매겨진 값을 정해진 방식으로 지불했으니 더 이상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벌금이 비용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깟 벌금, 내면 되지"라는 식으로 자신의 편의를 위해 도로교통법 등을 어기는 사람들, "어차피 코로나 걸려도 내가 아픈 거 아니야?" 라며 다양한 규제와 권고 사항을 비웃는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경제 논리와 개인의 자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일수록, 벌금을 비용으로 여기는 성향이 강해진다. 본인들의 손익계산에 따라 자유를 실현하는 데 있어 타인에게 다소간의 피해를 주게 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면 상관없다는 식의 합리화가 만연하는 것이다.
벌금이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행위 규범을 어겼을 때, 당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공동체에 해악을 초래한다고 판단될 시 부여되는 형벌이다. 이 형벌은 당신에게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촉구하며,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반성하길 요구한다. 이것은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할 때, 한 번 더 곱씹어 보는 신중한 자세를 가지길 권한다. 벌금은 당신의 잘못을 퉁치려고 공동체에서 부과하는 경제적 면죄부가 아니다. 단지 그것은 인간의 죄, 잘못이라는 추상적 성격의 문제에 대해 공동체 성원들 사이에서 분별하기 쉽게 가시화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임의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이 말인즉슨, 죄와 벌금 사이의 대응은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죄는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벌금 이상의 부덕함을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대한민국에서 폭행죄에 부과하는 처벌은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부조리한 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대개 평생 그 아픔과 기억을 가지고 간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는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고 9000원을 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비용이란 무엇인가? 비용은 말하자면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고 지불하는 값이다. 그것은 당신이 누린 서비스와 소비한 재화에 대해 치르게 되는 가격의 일종이다. 당신이 정해진 '비용'을 지불한다면, 당신은 그에 상응하는 '권리', '자격'을 갖추게 된다.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 재화를 소비할 권리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벌금을 상술한 내용의 비용처럼 여기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단적으로 보면, 몰지각한 사람들 사이에서 '매값'이라는 개념이 통용된다. 돈을 지불하고 사람을 폭행할 권리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 규제, 공동체의 규칙들은 값을 지불하면 살 수 있는 물건처럼 돈만 내면 어길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서비스 패키지의 일종으로 변모한다. 규범에서 도덕이 유리되는 순간, 그곳엔 기계적 응보의 논리와 경제적 관점에서의 손익계산표만 남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적 자립을 이뤄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지적 분별력을 갖추는 것이다. 지적 분별력은 개념과 개념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이것과 저것이 어떻게 다르고 왜 달라야 하는지, 같지 않은 것을 같은 것으로 보는 세태가 얼마나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시간이 흐르는 과정 속에서 옳고 그름이 어떻게 발전하거나 왜곡되는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대상에 대한 값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보면, 비용과 벌금은 동일한 개념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 속에 담긴 역사나 의미, 내용을 곰곰이 따져보면 전혀 다른 종류의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에 무심코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마치 라켓을 휘두르는 운동이라고 배드민턴과 테니스를 동일한 종목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저마다의 삶의 내용에 따라 테니스와 배드민턴 사이의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벌금과 비용의 차이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중요해야 하는 문제이다.
덧붙이자면, 지각비는 지각하지 말라고 설정해놓은 규제지, 지각하고 싶으면 돈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