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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Oct 10. 2024

세상은 트라우마라는 지뢰밭

유년기의 트라우마는 뇌를 바꾼다

어느 토요일 오전이었다. 허리가 좋지 못해서 한의원을 가서 1시간 동안 이런저런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그런데 남편과 아이들이 먼저 밥을 먹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그 상황이 너무도 서러웠다. 그래서 왜 내가 돌아오지 않는데 먼저 밥을 먹느냐고 물었다. 이어 내가 안보이면 전화를 해서 어디냐, 언제오냐 물어야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남편은 밥 먹고 있으면 곧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눈물을 쏟으면서 나는 대뜸 물었다.


만약에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만약에 아파서 어디서 쓰러져 있었다면?


남편과 아이들은 죄인이 된 것 마냥 날 멍뚱이 쳐다보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나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내가 몇주째 몸 상태가 좋지 못했는지, 내가 요즘 얼마나 힘든지를.....그런데도 아무도 내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며 서러움을 쏟아냈다. 나 같으면 가족들 중 누가 식사 시간인데 보이지 않았다면 찾았을 것이고, 눈에 안보이면 전화를 해서 확인했을 것이고, 언제 오냐고 묻고 큰 차이가 아니라면 기다렸다 같이 먹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도 내가 어디갔는지 궁금해하지도 찾지도 않냐고 화를 냈다. 말할 수록 더욱 화가 났다. 더 나아가 내가 사라져도 죽어도 아무도 모를거라고 했다. 급기야 꺼내기 싫었던 서러움의 마지막 외침을 하고 말았다.


나는 대체 너희들에게 무엇이냐!


누가 보기에는 아주 사소한 일이다. 평소 나의 생활패턴은 아주 단순하다. 그래서 나의 일상은 가족들이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뤄진다. 난 정말 식사 시간에 맞춰 돌아왔으니까. 먹다보면 돌아올거라는 남편의 예상은 맞았던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같으면 별일 아닌 듯 배고프다며 같이 먹자고 식탁에 앉아 평범한 식사를 했을 것이고, 또 누구라면 조금만 기다려주지 그랬냐며 짧은 타박을 할지언정 나처럼 난리를 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그토록 사소한 일에 화를 낼까?


깊은 자책과 부끄러움의 시간은 오로지 내 몫이다. 나는 그 뒤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지 못하고 난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사실 난 남들과 다른 포인트에서 늘 예민하거나 같은 포인트여도 강도 높게 예민하게 군다. 그래서 스스로 나의 성격이 예민함이 지나쳐 모나고 별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냉동 만두를 찔때 찜기에 가지런히 놓지 않고  그냥 쏟아 부어 만두끼리 붙어버리게 찌는 남편의 행동에 과할 정도로 비난을 한다. 나와 약속이 있는 날 또 다른 약속을 잡는 친구에게 몹시 서운해 한다. 가르치는 학생의 부모가 자신의 욕심으로 아이를 망치는 행동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 속이 너무도 답답해 잠이 오질 않는다. 때때로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거나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학부모들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떨린다. 고등학생이 되서 쉬는 날없이 공부하는 딸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 교육부 정책자들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치솟고,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맡은 일에 게으른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게 괴롭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살면서 마주치는 어떤 상황들과 사람들에게 수시로 부지불식간에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그런 후 나는 왜 이토록 예민한 사람인가하는 검열과 자책을 했던 수 많은 시간들...그로인해 나는 더욱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내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타박하기 일쑤였다. 나를 가장 많이 비난하던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의 머리 속에는 24시간 '자책 라디오'가 켜져 있다. 그런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는것도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알게 되었고 그 자책 라이오를 부수자고 결심하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트라우마는 전두엽 기능을 손상시키고 편도체 기능을 활성화 시킨다.

슬픔과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들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슬픔과 고통을 웃으면서 얘기할 날이 올 것이며,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이 삶의 '에피소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것이다. 적어도 믿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믿음을 갖는 것이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어느 정도는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슬픔과 고통이 정말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써 '상품'이 되고도 남지 않았을까? 세상에서 경험하는 슬픔과 고통은 강도가  수록 삶을 휘청이게 만들고 비틀어 놓는다. 대부분의 경험들은 절대 되돌릴 수 없으며 기억에서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로인해 생긴 심각한 상처를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지지 않는다. 그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기를 누구보다 갈망하지만 그럴 수록 더욱 강박적으로 그 고통의 기억은 오히려 또렷해질 뿐이다. 그건 유난히 나약해서도 아니고, 엄살을 부리는 것이 아님에도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내몰린다.


더구나 유년의 트라우마는 결단코 에피소드가 될 수 없다. 세계적인 트라우마 권위자인 베셀 반 데어 콜크 박사는 [몸은 기억한다]라는 책을 통해 트라우마를 겪는 환자들에 대해 섬세하고 따뜻하게 서술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큰 재난이나 대형 사고로 인해 겪는 성인기의 트라우마보다 가족 내에서 어린 시절 지속적으로 겪는 여러 학대와 방임과 유기들이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임상경험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다음과 같은 통찰을 하고 있다.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삶에 통합시키지 못하고 그 상황에 갇혀 버려 그때부터 성장이 멈춰 버린다. 그 트라우마가 바뀌지 않고 바뀔 수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삶의 구조가 형성되며, 새로운 만남이나 경험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 오염되고 만다."- [몸은 기억한다] 106쪽 일부 발췌


날 버린 생모

무책임한 아버지

무관심한 어머니

무시하는 친인척들

무지한 세상사람들의 시선

이것들이 남긴 유년의 트라우마는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내게 세상과 사람들은 안전하지 않다.


내가 느끼는 트라우마는 '마치 세상 곳곳에 깔려 있는 지뢰' 같아서 수시로 예기치 않게 밟게 되어 상처를 입히는 꼴이다.  만두를 들러붙게 찌는 남편의 행동과 교육 정책자들에게서는 무책임이란 지뢰, 내가 아픈지도 모르는 가족들에게서는 무관심이란 지뢰,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학부모들에게는 무시라는 지뢰와 사랑인줄 알고 아이를 망치는 부모들에게서는 무지라는 지뢰들을 밟는다. 세상에서 목격되는 무책임.무관심.무시와 무지의 상황들과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때면 분노와 슬픔의 폭풍을 몰고 온다. 그렇게 상대의 의도와 무관하게 혼자 상처를 입고 상처 받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상처받았다고 아프다고 말해봤자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을거라 믿기에 그냥 화를 낸다.


그래서 내가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찾지도 않고 밥을 먹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무관심, 무시와 무지 그리고 무책임을 순식간에 읽어버리고는 분노했던 것이다. 과거의 트라우마는 사는 내내 이렇게 가까운 관계를 오염시킨다. 순간 순간 나는 다시 버림받은 아이가 되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 세상과 사람들은 '위험함'으로 깊게 학습되어 있다. 수시로 위험을 알리는 경계경보가 켜진 상태로 살아가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일이 내게는 큰일이 되고, 다른 사람들은 흘려 듣는 이야기를 나는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마치 눈이 미세한 현미경같아서 손바닥의 세균이 우글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완벽한 관계를 꿈꾸지만 그런건 없으니 늘 괴롭고 또한 외롭다.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으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늘 과한 엔진을 돌리다 번아웃이 되고 만다.


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고, 존중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니 도움을 청하거나 아프다고 말하는 대신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센척해서 내가 상처받은 것을 숨기고 타인을 비난하며 강한 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오히려 강하고 사나운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더욱 세상과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더 멀어져 혼자가 되곤한다. 혼자면 아무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안전하다고 느낀다.




만 3년 동안 월1-2회씩 상담을 받으면서 이제는 무의식적 반응에서 의식적인 반응으로 바뀌어 빨리 알아채고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때처럼 화가나면 왜 화가나는 지 재빨리 생각을 전환해서 그 정체가 서운함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분노와 눈물을 쏟아내는 대신에, 말로 나의 감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나오더라도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내가 지금 이러니 도와달라고 말했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대응방식이다. 여전히 감정을 빨리 인식하고 컨트롤하는 일은 어렵다. 무의식을 컨트롤 할 수 없기에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이 과연 있기는 할까 회의적인 생각에 빠지기 일쑤다.


" 수많은 아동학대 피해자들은 생명력과 살아가려는 의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소유하겠다는 의지와 트라우마를 완전히 없애려는 힘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트라우마 치료가 효과를 나타낼 수 엇는 유일한 길은, 환자가 살아남기 위해 몰두했던 노력을 경외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그 노력이 환자들로 하여금 학대의 기억으로부터 견디게 해주고 회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영혼까지 고통받는 그 숱한 밤들을 견디게 한다." 246쪽


많은 정신과의사들은 각자의 진단에 따라 환자의 상처 받은 마음을 둘째치고 약을 처방해버린다. 하지만 몇몇의 책임감 있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결국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공감>이라고. 그말이 정말 맞다. 공감이 되어야 트라우마를 비롯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살기 위해 도달해야하는 그 지점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수용이다.


" 압도적이고, 믿을 수 없고, 견딜 수도 없다는 점이 트라우마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모든 환자들이 우리에게 무엇이 정상인가에 관한 생각을 접고 이중의 현실을 수용하라고 회고한다. 즉 비교적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현재와 그 바로 곁에서 붕괴된 채 현재로 남아 있는 과거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343쪽


그런 과거를 가진 나, 그 과거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나를 고스란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꼭 필요하다. 전쟁이 일어난 적 없다고 부정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눈에 버젓이 보이는 폐허를 뭐라고 변명할텐다. 전쟁의 폐허를 복구하는 일은 얼마 부숴지고 얼마나 처첨한가를 똑똑히 보고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면하는건 어렵다. 차라리 회피가 편하다.

왜 하필...어떻게 이런일이....

수없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야 만다.다시 과거 속에서 가해자를 찾아봤자 폐허의 복구만 늦어질 뿐이다. 그래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복구해야 할 그 모든 것들이 막막하고 자신이 없다. 차라리 다시 과거 속으로 도망가 존재하지도 않는 가해자를 능지처참하는 것이 빠르고 쉬운 해결책인 것 처럼 느껴진다. 아주 찰라의 시간엔 속이 시원하니까. 하지만 현실의 나는...지금의 나는...여전히 울고 서 있다. 망연자실한 그 아홉살 소녀가 되어...여전히 세상은 지뢰밭이고 사람들은 지뢰다. 사람들과 편하게 지낼 수 없고, 그래서 평생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 속 지금의 나는 그 소녀를 안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다. 아무도 이제 날 버릴 수 없다. 이제는 아무도 나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


어른이 된 나는 그 소녀를 밤마다 안아준다. 같이 운다.그렇게 울다 잠이 들면 다시 아침이 되곤한다.

조금씩 소녀는 어른이 되어 간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과거 속에서 벗어나 현재를..지금을..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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