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책을 습관처럼 읽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부모가 많다. 스마트 폰 대신 책을 들고 있는 내 아이의 모습을 본다면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질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언제나 책 대신 스마트 폰이 아이 손에 들려져 있고, 썩은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오랫동안 책 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알게 된 사실.
책 읽기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자를 읽을 수 있다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책 '해리포터'는 한국판으로 총 23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너무 재밌어서 위험하다는 해리포터. 이 어마어마하게 긴 시리즈를 모든 아이들이 읽을 수 있을까? 책 읽기 훈련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영화를 보고 말지 책을 읽지는 못한다. 안 읽는 게 아니라 읽을 힘이 없어 못 읽는 것이다. 이 시리즈를 읽어내려면 읽는 힘, 즉 力이 필요하다.
그래서 난 책 읽기를 수영에 비유하곤 한다. 이 수영장은 아이 마음이고, 채워야 할 물은 다름 아닌 책이라 상상하자. 수영장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려고 보니 수영장에 물이 없다. 어쩌나?
수영 자체를 할 수 없으니. 일단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와 함께 일단 수영장 물을 채워야 한다. 커다란 수영장에 물은 잘 채워지지 않는다. 좀 찼나 싶어 들여다보면 아직 발목 정도 적실만큼 차 있을 것이다. 다시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영장 물이 찰 때를 기다린다. 그래도 아이는 발목에 오는 물에 들어가서 무엇을 하든 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놀이도구로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또 한참을 기다리다 보면 무릎까지 차 올라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수영을 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이쯤 물이 차면 아이는 땅을 짚고 수영을 하는 시늉을 내며 즐거워한다. 이제 물에 온몸을 흠뻑 적시며 까르르 웃는다. 오히려 처음부터 깊은 물이 아니라 안심하며 물에 적응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면 어느새 허리까지 물이 찬다. 이때부터는 수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물놀이와 수영은 엄연히 다르다. 이 정도 높이면 땅을 짚고 헤어칠 수도 없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수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키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고, 숨 쉬는 법을 배우고, 팔 젓는 법을 배우고 이 모든 동작을 동시에 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배운다.
물만 차면 금방이라고 물을 헤엄칠 것 같지만 잘 못하면 허우적대다 물만 잔뜩 먹고 코에서 물을 뿜으며 괴로워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물은 가슴께까지 차오르고, 비로소 아이는 스스로 물 위에서 수영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수영을 배우는 과정처럼 책 읽기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책 읽기 시작은 '수영장 물 채우기' 즉, 절대적 양을 채워야 한다. 이때는 그냥 닥치는 대로 아이가 현재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을 가급적 많이 읽는 게 중요하다.
아예 책 읽기의 경험이 없는 아이라면 옛이야기나 그림책부터 읽는 것을 추천한다.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그 정도의 책이 딱 맞는 난이도이며, 학년이 높은 아이들이 읽어도 그 이야기들은 새롭게 읽힐 것이다. 무엇보다 읽는 부담이 없으니 앉은자리에서 10권은 뚝딱 읽을 것이다. 그렇게 10권이 30권이 되고 50권이 되고 어느새 100권이 된다.
그러면 아이는 저절로 좀 더 복잡한 서사를 가진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한다. 100권 정도 그림책을 읽다 보면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지루하다. 그럼 그다음에 그림이 적고 글이 많은 얇은 책들로 옮겨 간다. 이때 절대 100쪽을 넘어서면 안 된다. 아직 수영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아이들은 100쪽을 넘기면 겁부터 먹는다. 그렇게 100쪽이 넘지 않은 책들을 또 10권 20권 30권 차차 늘려간다.
아이는 차차 책 읽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고 성취감도 느끼면서 책을 읽는다. 자신이 읽은 책을 따로 모아두고 눈으로 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굳이 독서록을 기록하게 하는 과욕은 부리지 말자. 그냥 아이가 책에 재미를 붙이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자. 그것이면 초등시절 내내 충분하다.
그렇게 아이는 수영하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는 않아도 물에서 노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생각보다 재밌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아이는 다음 단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좀 더 복잡한 서사 구조가 재밌고, 그런 책들은 두껍다는 것을 알게 되니 도전할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혼자 200쪽 정도 되는 책을 읽기엔 여전히 망설여진다.
이때 엄마는 아이의 키판이 되어주면 된다. 이야기의 시작을 같이 읽어주는 것이다. 200쪽짜리 책이면 50쪽 정도까지 키판의 역할을 해주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사건이 이제 막 시작되고 아이가 이야기에 충분히 젖어들었을 때니까. 키판을 슬쩍 빼고 아이는 발차기만으로도 수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아직 팔 젓기와 호흡을 배우지 않아서 금세 숨이 차서 집중이 끊어진다. 그러면 쉬었다 다시 읽으면 된다. 접었다 내일 다시 펼쳐 읽으면 된다.
그렇게 아이는 차차 읽기 양을 늘려간다. 1년쯤 시간이 지나면 이제는 능숙하게 책을 읽는다. 재미만 있다면야 책 두께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재밌는 책을 찾는 게 문제다. 수영을 잘하면 물의 깊이 깊이가 문제가 아니듯 아이는 수영장 아닌 어느 풍경 좋은 야외에서 수영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일단 읽기 쉽고 만만한 책들을 중심으로 많은 양을 채우는 게 중요하다. 양을 채워야 그것을 밑바탕으로 책을 깊이 있는 것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깊이 있기를 강조하다면 자기 조절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금세 포기하고 만다. 정독을 요구하는 책들은 대략 글이 많고, 어른의 설명이 필요한 책일 가능성이 높다. 그건 수업이지 스스로 가능한 독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1년 정도는 '양 채우기'에 집중한다. 얇은 책부터 차근차근 읽어가면서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성취감을 서서히 느껴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책 읽는 즐거움이 꽤 괜찮다고 느껴지고 그림이 줄고 글이 느는 책을 감당할 자신이 생긴다. 거기에 엄마와 아빠가 자신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며 기분 좋은 반응을 해주면 아이는 그때부터 더욱 탄력을 받는다. '책을 읽으니 엄마 아빠가 기뻐하고 사랑을 더 해주는구나'를 학습하는 것이다.
많은 양의 책을 읽다 보면 차차 나의 취향을 알아간다. 어떤 종류의 책들이 특히 재밌는지 어떤 작가의 책은 유독 마음에 드는지를 아이 스스로 알게 된다. 그걸 잘 습득한 아이들은 다음 책을 권하기 전에 도서관에 달려가서 지금 읽고 있는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시리즈를 읽고 있다면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못 견디고 다음 순서의 시리즈를 먼저 읽어버리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책은 깊이 읽는 것이 중요하므로 정독해야 한다. 하지만 정독은 습관이기에 가르쳐야 한다. 정독은 별개 아니다. 모든 글자를 천천히 전부 읽는 것이다. 아이들은 양을 채우기 독서를 하면 저절로 이해력이 좋아진 상태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해 못 할 내용이 거의 없다. 아이들 위한 책들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 그냥 모든 글자를 다 읽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은 생각보다 '모든 글자를 다 읽기'를 힘들어한다. 그러니 정독은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책을 해석해 주고 설명해 주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문자를 다 읽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럼 이해는 저절로 따라오며 독해력은 차근차근 쌓이게 된다.
그렇게 수영장을 물을 가득 채우고, 수영하는 법을 가르치면 아이는 차차 수영하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어느새 팔과 다리, 호흡을 신경 쓰지 않으며 수영을 하게 되고 몸에서 뿜어내는 도파민으로 기분 좋은 숨차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는 건강한 근육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체계적인 책 읽기 훈련 없이 성인이 되면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더구나 공부는 그저 문제집 푸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란 한국의 많은 성인들은 읽고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1년에 1권의 책도 읽지 않는 성인이 무려 53%. 그리고 그 실상은 안 읽는 것이 아닌 '읽지 못하는 상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