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읽기, 글쓰기를 가르치는 게 직업인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칠 재료를 구하러 서점을 정기적으로 둘러본다. 새책을 살때는 주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고, 중고책을 구매할때는 오프라인 중고서점을 간다. 그리고 가끔 전집을 사러 전집 매장도 간다. 전집 매장에 가면 거의 새책이나 다름 없는 책들이 많이 나와있다. 그것들을 아주 싼값에 살 수 있고, 때론 생각지 못한 책들을 발견해서 보물을 찾은 마음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 전집들을 어떤 이야기 책을 읽을때 연계하여 읽히면 좋을 지 연구한다. 이야기를 더 잘 읽으려면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때문이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1,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책들. 그리고 과학적 상식을 읽어야 이해가 잘 되는 이야기 책들이 있다. 또 어떤 이야기 책은 사회의 기본 개념들을 잘 연계해서 읽으면 이야기 책을 훨씬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이야기 책을 읽을때 한두권씩 학습 독서를 함께 한다. 당연히 설명은 필수다. 얇은 그림책이어도 전집은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포괄하고 압축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혼자 읽기 쉽지 않다.
전집은 특정 주제에 맞추어 다수의 저작물을 모아 한꺼번에 여러 권으로 간행한 출판물을 말한다. 전집은 보통 30권 내외로 구성된 것들에서 70종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한다. 대상은 주로 유아와 초등이 주 고객이며, 전집의 주제는 문학전집뿐 아니라 언어, 수리, 사회, 과학 탐구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것들의 공통된 성격은 교과 학습 또는 학업 성취도나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가 그 주요 목적이다.
우리나라 출판사 영업 이익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전집시장이다. 2020년 출판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2020년 2년간 출판사 영업이익이 교육출판 부문 2045억, 단행본 부문 223억, 만화와 웹툰과 웹소설 926억으로 나타났다. 교육 출판의 상당부분은 학교 시험과 수능과 관련된 문제집과 참고서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전집이 상당한 이익을 보장한다. 단행본 시장 이익의 10배가 넘는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학습과 실용적 목적으로 책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판사는 그런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잘 팔리는 문제집과 참고서 그리고 전집을 만들기 위해 무척이나 애쓴다.
그래서 실제로 서점에 나가면 정말 다양한 문제집들이 빼곡하다. 그래서 무엇을 골라야할지 모를 정도다. 전집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반짝반짝한 하드커버는 기본에 화려하게 인쇄된 그림들과 사진들. 그리고 다채로운 편집 디자인으로 책 자체가 참 멋지다.
이렇게 출판사가 전집을 워낙 구매하고 싶게 만들기도 하거니와, 책을 그때 그때 하나하나 고르는 게 어려운 부모 입장에서 전집은 진짜 유혹적이다. 그리고 주로 학습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있기때문에 더욱 끌린다. 저 책을 다 읽기만 한다면 그래서 저 책의 내용을 알기만 한다면? 이런 기대를 품고 덜컥 고가의 전집을 지르고 만다. 그리고 몇년을 거실이나 아이방 인테리어 장식용으로 쓰다가 나이만 먹고 고스란히 중고시장에 나오게 된다.
내가 아는 아이들은 전집을 그닥 좋아하지도 않고, 잘 읽지 않는다. 당연히 학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재미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아무리 끌리게 만들어도 아이들은 금방 안다. 별로 재미가 없다는 걸. 늘 강조하듯이 아이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재미'때문이다. 그래서 게중에 재밌게 잘 읽고 여러번 읽는 전래동화나 세계 명작동화 전집은 사는 걸 추천한다. 또는 단행본을 묶어서 파는 이야기 전집이 있는데 그것 역시 괜찮다.
하지만 학습에 방점을 둔 전집은 사지 않는걸 권한다. 부모 마음대로 고가의 전집을 사두고 읽지 않는다고 아이만 타박하기 일쑤다. 아니면 판매원의 권유에, 책의 퀄리티에 반해 사버린 자신을 탓하던가.
그래서 전집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책이다. 빼곡히 꽂힌 전집들로 가득한 책꽂이를 한번 보자. 그 중에 아이가 한번이라고 읽은 책을 뽑아보자. 그리고 그 중에 아이가 굉장히 좋아해서 닳도록 읽은 책을 찾아보자. 30-60권짜리 전집 중에 아이가 닳도록 읽은 책이 10권이 넘을까? 전집을 사지 말아야할 가장 큰 이유다. 책 꽂이를 차지하고 인테리어 기능을 하는 전집을 굳이 살 필요가 없다. 동네마다 도서관이 너무도 잘 되어 있는 게 우리나라다. 거기가면 아무도 손대지 않는 전집들이 간택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꽂혀있다.
사지 말고 빌리자. 그게 진짜 전집의 필요다.
전집은 일반 가정 집에 있을 책이 아니다. 나처럼 독서를 업으로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수업을 목적으로 하거나, 부모가 열의를 가지고 읽어줄 목적으로 사지 않는다면 전집은 도서관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의 필요에 따라 골라 빌려 읽는것으로 충분하다.
혹시 오래 꽂아두면 읽을까? 설사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다. 꽂아두면 먼지만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