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인전 No! 인물이야기 OK!

by 책선생

아이들이 대체로 좋아하는 책들은 판타지물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생각이나 상상의 범위를 넘는 책들이다. 그런 책들을 읽고 난 후 아이들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상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이렇게 묻곤 한다.


"선생님 이거 진짜 있었던 이야기예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왜 자꾸 이런 질문을 하는지 잘 몰랐다. 그리고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도 있지만, 순수 작가 창작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있는 그대로 말해주면 되는데도 망설여지는 이유가 아이들의 저 질문의 의도는 '너무 사실적이고 재밌는데 이게 현실이야기라면 완전 대박~!' 이런 뜻이 담겨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보통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이나 고통을 이겨내고 끝내 승리한다. 아이들은 그런 지점에서 주인공과 기쁨을 함께한다. 그런데 현실이었으면 하는 바람과 달리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이내 실망한다.


"어쩐지... 현실에서 이럴 리가 없지"


그래서 한동안 저 질문을 받는 걸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설프게 "네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싶으면 진짜야"라고 미지근하고 애매한 대답을 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아이들이 저 질문을 하기에 아이들이 수긍하면서도 실망하지 않을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꽤 오래 고민을 했더랬다. 그리고 드디어 꽤 괜찮은 답을 찾았고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답을 해주고 있다. 역시 아이들은 실망하지 않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선생님 이 이야기 진짜 있었던 거예요?"

"음... 세상에 100% 상상은 있을 수가 없어. 작가는 현실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경험 안에서 상상이라는 집을 짓을 수밖에 없어. 그리고 역사도 100% 사실만 기록할 것 같지만 기록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기록하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거든. 그러니 이야기란 것은 대략 30% 사실과 70% 상상이라고 생각하면 돼. 어떤 이야기는 현실이 이보다 더 많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상상이 훨씬 더 많을 수 있지. 그러니 네가 방금 읽은 책 속의 그 인물도 작가가 실제로 만난 어떤 사람 중 한명일 수 있고, 사건일 수 있지."




그렇다면 실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위인전'은 어떨까. 우선 난 위인전이라는 표현을 지양한다. 습관적으로 위인전이라고 나오는 말을 일부러 '인물 이야기'로 정정해서 말하곤 한다. 위인전에 담긴 이야기들이 상당히 기획의도에 따라 각색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그 인물은 실제 위인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너도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위인전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롤모델'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난 그 위인들이 정말 훌륭했을까? 하는 의심을 품는 사람이다. 물론 특정분야에서 성공했고, 또는 인류의 삶에 의미 있는 공헌을 했고, 또는 살신성인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 정도면 위인이라고 불릴법하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성취는 보통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감탄을 하게 할 뿐 '롤모델'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보통의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오히려 책 속의 그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기 쉽다. 너무도 대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라 정도는 구하고,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고, 진리를 발견하고, 그렇게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감동받을 것 같지만 실제론 크게 감동받지 못한다.


"난 저렇게 훌륭할 자신이 없는데?"


소위 위인전의 인물들은 대체로 과거의 인물들이고 죽은 인물이 대부분이다. 그들에 대한 사실의 기록을 바탕으로 쓴 것이겠지만 굉장히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들의 모자라고 서툰 모습들은 감춰져 있다. 실패를 기록하지만 그 실패는 어김없이 성공으로만 이어진다. 그들의 실패는 부각되지 않는다. 성공에만 하이라이트가 칠해져 있다.


그래서 나는 위인전을 인물이야기라고 고쳐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위대해지기 위해 삶을 산 게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부를뿐이다. 실제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 '꼭 했어야 했던 일'에 삶을 던진 사람들이다. 한 분야에, 한 가지 목표에 인생을 걸고, 투혼을 발휘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하다. 그래서 위대한 업적을 이뤘을 것이다.


그들도 인간이었을 텐데... 인간은 모든 면에서 다 훌륭할 수 없다. 그런데 위인전이 풍기는 뉘앙스는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고 끝내 승리하는 모든 면에서 훌륭한 인물로 그린다.

이 업적으로 아이들은 그 인물이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마치 모든면에서 완벽한 인간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아이들은 현실 속에서 살다 간 또는 현재 살아 있는 그 인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소설 속 인물을 읽듯 거리를 둔다. 상상 속의 인물임에도 이야기를 읽다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인물을 만나서 '선생님 이 이야기 진짜예요?'라는 질문을 하는 것과 너무도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현실은 비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은 오히려 현실적인 아이러니.


그래서 난 위인전을 인물이야기로 고쳐 말하면서 아이들에게 기죽지 말라고 당부한다. 인류역사의 어떤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한 사람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그들이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고, 왜 그것에 몰두하며 살았는지를 궁금해하면서 읽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그것을 누리고 사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간혹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롤모델로 삼아도 좋다고.


인물 이야기를 읽을 때 아이들은 가끔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선생님이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예요?"

"음... 과거 이 전쟁 많은 나라에 살면서 죽창 들고 싸우다 죽었던 그 수많은 이름 모르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그리고 또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같은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을 존경해."


특별히 훌륭해질 필요까지 있나.

그날그날 내 할 일 열심히 하면서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진짜 위인일지도.

쓰고 나니 닭살이다. 광고카피 같다.... 하지만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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