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아래 설 너에게 01.
이름 모를 별들 마저 말끔히 지워질 만큼, 소란스런 야경이 두 눈에 아로새겨졌다. 리아는 다리의 난간 위에 올라서서 검은 강물과 밤 하늘을 둘로 나누는 빛의 곡선을 바라보았다. 새벽 3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불 켜진 건물이 적지 않아 보였다. 삶의 동력으로 밝혀진 불빛들은 밤 하늘의 빛 마저 지워버릴 만큼 거셌다. 리아는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빛 아래의 자리가 허락되지 않았던 무수히 많은 이유들을.
어려서 부모를 잃어, 기댈 어른이 없다는 것.
가진 것이라곤 젊은 몸 하나 뿐인데,
그마저도 신병으로 인해 허리의 통증이 심한 것.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간신히 졸업한 대학의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배우 오디션에 번번히 낙방하고 있다는 것.
생각 말미 리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새벽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리아는 길게 숨을 토해내며, 몸의 균형을 잡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쉽지 않았다. 삶의 균형이란 왜 이다지도 ···.
통장의 잔고는 채 몇 백원이 되지 않았다. 리아는 지끈거리는 허리의 통증을 참으며 숨을 골랐다.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내림굿을 받으려 해도, 굿할 돈이 없었다. 밝은 빛 아래에 서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비참한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빚 아래 서기.
리아는 눈가가 젖어듦을 느꼈다. 축축해지는 마음을 따라 강 건너, 빛 무더기도 일렁였다.
갚을 능력이 전혀 없는데 사채를 쓰는 건,
볏짚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짓이야.
그렇다면 그냥 곧바로 강물에 뛰어드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녀는 몸을 앞으로 천천히 숙였다. 머리카락이 앞으로 쏠리며 정신없이 흩날렸다.
무서워.
리아를 향해 거대한 검정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괴물 앞에 선 그녀는 흘러가는 검은 강에 눈물 한 방울을 더했다.
살려줘.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좀 살려줘.
리아는 뜨거운 불덩어리가 목 중간에서 왈칵 걸려,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서러움, 그리고 비참함, 마지막으로 괴로움. 하나로 덩어리진 그 모든 것이 리아를, 리아의 영혼을 불태우고 있었다. 잿더미가 되어가는 삶의 의지. 맥 없이 바스라져 흩어져버리는 ···.
한 줌의 영혼이 강물 위로 떨어지려는 찰나,
다급한 손이 순식간에 그녀의 바짓단을 잡아챘다.
리아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난간의 앞이 아닌, 뒤로 넘어져 시멘트 바닥을 뒹굴렀다. 버둥거릴수록 여린 살갗이 쓸려 생채기가 났다. 다급했던 손은 리아를 결박하듯 억누르기 바빴다.
“진정해요! 진정하라고요!”
리아는 낯선 목소리에 버둥거리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소리의 근원으로 고개를 향했다. 반듯한 이목구비의 젊은 남성이 자신을 짓이기듯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
남자는 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고함을 질러댔다.
“이런 말, 진부하기 짝이 없겠지만 ···!”
남자의 눈이 리아의 달싹이는 입에 붙박혀 있었다. 리아는 너무 놀라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반면 남자는 어금니를 깨물고 이야기 하듯 잇샌 소리를 냈다.
“죽을 용기로 살으란 말입니다!”
리아는 그제서야 가슴에 맺혀있던 뜨거운 불덩어리가 울컥 쏟아져나왔다. 눈물을 쏟아내며 그녀는 입을 뗐다.
“···어, 어려워요.”
눈물에 절은 단어들이 반듯하진 않았지만, 또 설움에 깎여나간 마음의 형태가 온전하진 못했지만 남자는 더듬대는 리아의 말을, 일렁이는 감정의 궤적을 매끄럽게 따라갔다.
“사는 게, 살아가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누구나 어려워요. 쉬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그렇지만···. 허리도 너무 아프고, 일도 되는 것이 하나 없고. 부모님도 보고 싶···.”
리아는 아이처럼 입을 벌리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빠가 너무 보고 싶, 보고싶어요···!”
남자는 힘으로 찍어누르던 리아의 어깨를 조심스레 놔주었다. 팔이 자유로워진 그녀는 두 손으로 눈을 부비며 서럽게 울어댔다. 아무리 문질러 닦아내도 눈물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다. 남자는 리아의 몸을 일으켜, 앉은 자세로 바꿔주었다. 리아는 기운이 없는 듯 몸이 앞, 뒤로 휘청이며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는 리아에게 팔을 뻗었다. 껴안아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에 리아는 남자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지만 ···.
“집이 어디입니까, 데려다 줄게요.”
“집은 없어요···.”
“왜 집이 없어요.”
“돈이 없어서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요즘 기초수급으로 주거복지도 있다고 들었는데···.”
“근로 능력이 있다고 나와서요.”
남자는 리아의 눈가를 문질러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닿는 손길이 싫지 않았는지 울음소리가 조금 옅어졌다.
“근로 능력이 있다면 몸 건강한데, 왜 허리가 아파요.”
“무당들이 신병이 있다고 했어요.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
“일상 생활이 안 될 수준이에요?”
“종종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요. 쇠말뚝으로 허리를 꽝꽝 끊어내듯.”
남자는 리아를 안고있던 팔을 풀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나봐요.”
“못 하겠···.”
“아까 전에 난간 위에는 어떻게 올라갔어요?”
남자의 엄한 꾸짖음에 리아는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지끈거리는 지, 얼굴을 마구 찌푸렸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일어설 수 있네.”
“···.”
“여기에 두고 가면 또 뛰어내릴려고 할 것 같은데 ···.”
“자신이 없어요.”
“어떤 자신.”
“앞으로 살아나갈.”
남자는 리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동자 너머,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한 눈길. 리아는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듯 따라 그를 바라보았다.
짙은 색 청바지에 검은 색 티셔츠를 입은.
손목에는 알이 굵지 않은 단주가 두 세개 정도.
얼굴은···.
“집이 없다면, 날 따라 우리 집에 갈래요?”
남자의 말에 리아의 눈이 커졌다.
“그래도 돼요?”
“아, 조심성이 없네···.”
리아는 놀림을 당하는 것만 같은 기분에 힘이 빠져서 난간에 기대섰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남자는 리아의 어깨를 부축하며 말을 이었다.
“사람을 쉽게 믿을 만큼, 험한 일들을 겪은 건 아닌 것 같아서.”
절룩이며 제대로 걷지 못하는 리아를, 남자는 등에 업었다. 차가운 강바람이 아닌 따뜻한 사람의 온기에 감싸이자 리아는 마음이 녹듯, 눈앞이 서서히 아득해졌다. 한참을 소리내어 울었던 탓에 너무 많은 힘을 써버린 것 같기도 하고, 평소라면 지금쯤 깊게 잠을 잘 시간이다 보니···.
“이름이 뭐예요.”
리아는 남자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두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점차 더뎌졌다.
“이름이 뭐냐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고 느끼며, 리아는 눈을 감았다. 몸의 힘이 일순간 풀어지고, 그만큼 마음이 가벼워졌다. 꿈에서는 그리운 얼굴들이 가득했다.
얼마나 잤던 걸까, 얼굴에 쏟아지는 햇살에 몸과 마음의 물 얼룩이 말끔히 지워졌다. 한결 보송해진 기분으로 리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생경한 풍경에 꿈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탱화가 그려져 있었고, 많은 책들이 책장이 아닌 바닥에 꺼내져, 탑처럼 쌓아 올려져 있었다. 먼지가 나폴대며 날아다니는 게 보일 정도로 밝은 빛이 비추는 방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무서울 것도 같은.
“일어났어요?”
“어제 다리에서 날 넘어뜨린 사람···.”
“구해준 사람.”
리아의 말을 정정한 남자는, 약 상자로 보이는 작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서, 침대 한 켠에 앉았다. 그리고 리아의 손바닥과 몸 곳곳에 난 생채기에 연고를 짜서 발라주었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반창고까지 제대로 붙여주고나서야 남자는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도록 해요.”
리아는 손바닥에 붙여진 반창고의 캐릭터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문양을 살펴보고 있었다. 남자는 중지와 엄지 손가락을 맞부딪쳐 소리를 내, 리아의 눈길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이름이 뭐예요. 뭐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르겠네.”
“리아···.”
“리아. 허리가 아픈 리아.”
남자는 리아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자고 일어나서 부스스하긴 했지만, 길게 풀은 머리카락은 햇살에 닿아 반짝거렸고, 하얀 피부에는 작은 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울적한 건지, 눈꼬리가 조금 처져 있어서, 풀 죽은 강아지가 연상돼 인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당신은 이름이 뭐예요.”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붉은 색이 감도는 입술로, 리아가 오물거렸다. 푹 잠을 잔 탓에, 생기가 돌아오는 건지 눈에도 조금씩 활력의 빛이 돌아왔다.
“한울.”
“한울···.”
한울의 이름을 중얼거린 리아는 몸에 감겨있는 이불을 거둬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약간 휘청휘청하다가 바르게 몸을 가눴다.
“어디 가려는 게 아니면, 그냥 앉아있어요.”
“한울씨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데 ···.”
“무슨 인사.”
리아는 한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앉았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어제 살려주셔서, 그리고 집에서 재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처를 치료해주신 것도요.”
“앞으로 또 그럴거에요?”
“자신 없지만 ···.”
리아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서워서 못 죽겠어요.”
“어제 많이 울었으니까, 더는 울지 말고.”
한울이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리아를 일으켰다.
“여기서 지내요. 집을 구할 수 있을 때까지만···.”
“그래도 돼요?”
“나도 누구랑 동거 해 본 적은 없지만, 사람을 주워왔으니 책임을 져야할 것 같아서.”
“가, 감사합, 감사합니다.”
한울은 볼을 긁적이며 손을 내저었다.
“나중에 잘 되어서 다 갚아야 해요.”
“알겠어요. 꼭 갚을 거에요.”
“나랑 지금 약속한 거에요, 앞으로 힘들다고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잘 될 때까지 계속 노력하기로 ···.”
눈꼬리에 눈물방울을 매달고, 리아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한울은, 아이구, 울보네. 울보야. 중얼거리더니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방 밖으로 나갔다. 리아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를 따라 방 밖으로 나가보았다. 엉덩이에 꼬리가 있다면 기분좋아 정신없이 흔들렸을 것 같다, 생각하며.
거실에 들어선 리아는 입을 벌렸다. 나무로 된 불상이 한 켠에 놓여있고, 벽에는 알 수 없는 한자가 잔뜩 적혀있었던 것이다. 향을 피운 건지, 절에서 나는 것 같은 향기가 감돌았다. 한울은 맞은 편의 방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한울씨?”
“어어, 나 여기 있어요.”
맞은 편 방에서 한울이 목장갑을 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뭐해요?”
“같은 방을 쓸 수는 없잖아요.”
한울은 먼지에 콜록거리며, 쌓여있는 책 더미를 한쪽으로 옮겨 자리를 넓게 만들었다.
“리아씨가 잔 곳은 내 방이고, 앞으로 이 방이··· .”
“제 방이에요?”
“본래 창고로 써 와서, 지금은 지저분하지만 깨끗이 치우면, 그래도 꽤나 ···.”
리아는 방에 잔뜩 쌓여있는 알 수 없는 부적들과 장 검, 그리고 오래된 책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울씨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집에 이렇게 큰 칼이 있어요?”
“아, 나는 ···.”
한울은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말을 이었다.
“나는 퇴마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