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미정 Oct 19. 2023

그네 위의 오후

창 밖에 놀이터가 배달되었다 

      

아이들이 빛난다는 건 아직 밤이 멀리 있다는 것

권태를 뭉칠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

굳어버린 우리의 권태가 보인다 

바람은 아이들이 기르는 놀이터


나를 잠시 빈 쉼터로 몰고 가는 오후

반나절 쉬고 있던 그네에 발을 얹으면

구부렸던 하루의 관절이 시원해진다 

    

오후가 슬프지 않는 건 우리의 줄은 아직 젊기 때문 

어떤 바람도 나의 오후를 끊어 내지 못한다

온기를 품은 매듭은 나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

이젠 아무리 흔들려도 멈추지 않는다 

     

나의 미래가 약해지고 있다

흔들림도 아주 가끔 환영처럼 부서진다

멈춘다는 것은 부서진 나의 표정을 바라보는 것일까? 

바닥에 버려진 휴지는 언젠가 내가 버린 결심일지도 모른다  

무릎이 약해지면 결심도 약해진다 

    

누군가를 끌어와 태우기 위해 태어나서 

오래된 기둥을 밀어낸 고통은 얼마나 향기로울까?

고독과 변심에서 끌어온 시간들이 흔들리다 익고 있다

그네는 그렇게, 또 그렇게 나에게서 숙성되어 간다          

이전 06화 수요일의 봉숭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