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 현관에 가만히 앉은 고양이와 나

산티아고순례길 16일차

by 이종보

성당을 개조해 만든 시설, 순례자들의 도네이션(기부)으로 운영되는 곳.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촛불을 밝혀 자원봉사자들이 섬기는 곳. 자원봉사자들이 순례자들의 발을 씻겨 주고, 발에 입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고, 산티아고까지 잘 도착하도록 기도를 해 준 후, 촛불 아래 소박한 저녁식사를 하는 곳. 이런 알베르게가 까미노에는 몇 개가 있다고 하는데, 나도 꼭 한 번은 묵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가 내 옆에 와서 앉습니다. 내게 할 말이 있는지, 나는 아무것도 줄 건 없는데. 나는 개나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볼까 싶네요. 해지는 알베르게 현관에 가만히 앉은 고양이와 나.



티셔츠 하나를 분실했습니다. 빨랫줄에 두고 온 모양입니다. 반팔티 하나, 긴팔 티 하나로 일단 지내보려 합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빨래는 네 시간 정도면 말라요. 여러 가지를 잃어버립니다. 없어도 견딜 만은 해서, 일일이 마음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그렇거니 합니다.


마음이 어수선합니다. 몇 문장 적지 못했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래도 적었으니 다행입니다. 걷다 보면 마음이 이런 날도 있는가 봅니다. 이것도 까미노의 일부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부스럭부스럭 사람들이 길 떠날 준비를 합니다. 오늘 하루 걸을 우리들의 길이,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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