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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치지 않으려면,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소인'과 '군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by 김병훈

策問2, 나라를 망치지 않으려면,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546년, 명종 1년 증광문과에서 이러한 책문이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모든 군주가 정치를 잘해서 나라가 편안하기를 바라지만, 언제나 위태로워지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군주의 입장에서는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를 묻는 내용입니다.

이 책문에 대해서 노진(1518~1578)은 ‘진리를 탐구하고, 소인을 가려내야 합니다’라는 내용으로 <대책>을 제출하였습니다. 그는 1537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6년 증광문과에 을과에 급제했습니다. 부모를 봉양하려고 지방관을 자청했는가 하면, 청백리로도 이름이 났습니다.


① 사화(士禍)의 흔적.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갑자사화, 그리고 중종 때 이어난 기묘사화로 많은 선비들이 희생된 뒤, 문정왕후의 오라비 윤원형이 주도한 을사사화로 사림은 다시 한번 크게 좌절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혼란한 시기에 치란(治亂)과 안위의 원인이, 군자와 소인을 가려서 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책문은 시의적절하면서도 당시의 상황을 깊이 통찰한 것입니다.


중종에서 명종 초에 이르는 시기 왕위 계승을 둘러싼 공신과 척신 간의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이 권력다툼이 사화로 발전하면서, 국가의 정기를 뒤흔들어 놓았던 시기였습니다.

중종에게는 세 왕후가 있었는데, 연산군 때 대신이었던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 신씨, 인종의 모후인 장경왕후 윤씨,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 윤씨입니다. 중종은 반정 후에 부인 신씨를 왕후로 책봉했습니다.

그러나 장인인 신수근이 임사홍과 함께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역적의 딸이라 하여 폐위하고, 즉위 2년에 윤여필의 딸을 왕후로 맞이했으며, 인종이 될 원자를 낳고 중종 1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 폐비 신씨의 복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나중에 신씨가 아들을 낳을 경우 권력투쟁의 빌미가 된다며, 반대하여 무산되었습니다. 중종 12년에 윤지임의 딸을 다시 왕비로 삼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문정왕후입니다.


한편, 중종 13년에는 조광조가 발탁되어 요직에 앉으면서, 마침내 도학적 개혁 정치가 실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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