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랑, 그 설렘 - 나의 사랑이 되어주세요
벌새와 나비들의 여름 하늘을 위한 시간이에요
사랑을 노래하는 부드러운 말을 위한 시간이죠
수선화를 바라보며 언덕을 오르는 시간이에요
창턱에 기대어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시간이죠
손을 맞잡은 시간
무지개 빛깔의 날씨를 위한 시간
우리가 꿈꿔온 것을 믿게 만드는 시간
시간이 흘러 흘러갈수록
버드나무가 구부러지고 나또한 그러할테죠
하지만 하늘이 어떠하든 나의 친구들은 상관없어요
봄의 시간을 아니까요
가을을 위한 시간도요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을 위한 시간을요
손을 맞잡은 시간
무지개 빛깔의 날씨를 위한 시간
우리가 꿈꿔온 것을 믿게 만드는 시간
시간이 흘러 흘러갈수록
버드나무가 구부러지고 나또한 그러하겠죠
하지만 하늘이 어떠하든 나의 친구들은 상관없죠
봄의 시간을 아니까요
가을을 위한 시간도요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을 위한 시간을요
'빌 에반스에게 영감을 받은, 빌 에반스 스타일'이라는 수식어를 낳을 만큼 이 시대 재즈 뮤지션부터 다양한 현대 예술가들에게까지 많은 영감과 영향을 준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 1968년 빌 에반스는 14분이 넘는 버전의 'Never Let Me Go'가 수록된 절제되고 투명한 연주의 솔로 앨범 <Bill Evans Alone>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는 이 앨범으로 세 번째 그래미 상을 수상하였다.
1950년대 말, 재즈의 마지막 거대한 혁신의 물결 속에 빌 에반스가 등장하면서 연주 방식과 그 풍경은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재즈에 대한 그의 감성과 접근법은 대담할 정도로 새로운 것이었고, 빌 에반스는 20세기의 마지막 혁신적인 재즈 뮤지션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단순한 것들, 본질, 그것은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우리의 표현 방식은 무척이나 복잡하다.
음악에서 기교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단순한 감정 - 사랑, 흥분, 슬픔 등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런데 종종 기교는 그것들을 방해한다.
기교란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줄 때
비로소 본질적으로 그 궁극에 와 있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사물의 심성에 정확히 다가간다.
난 늘 훌륭한 기교를 지녀 왔으나 그것이 날 근심하게 만든다.
그것이 날 방해해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 빌 에반스
1958년 11월
빌 에반스는 마침내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그룹을 떠난다. 리버사이드 레이블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인 오린 킵 뉴스(Orrin Keepnews)는 그의 녹음 시기를 앞 당기기 원했으나, 빌 에반스에게는 아마도 '새로운 이야기'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1950년대 후반 빌 에반스는 헤로인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에서 함께 연주하던 동료 음악가이자 드러머 필리 조 존스는 빌 에반스의 마약 복용에 있어 특히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전해진다.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을 떠난 빌 에반스는 심신의 안정을 위해 플로리다에 있는 그의 부모를 방문하였고, 그가 언제나 존경하고 따랐던 그의 친 형이 있는 루이지애나에 머물렀다. 자신의 연주에 대해 자신감을 찾는 동안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베이시스트 샘 존슨(Sam Jones), 드러머 필리 조 존스(Philly Joe Jones)와 함께 그의 리더로서 두 번째 앨범인 <Everybody Digs Bill Evans>를 녹음한다.
1959년 12월
빌 에반스는 그의 첫 번째 트리오를 결성한다. 베이시스트 스캇 라파로(Scott LaFaro)와 드러머 폴 모티안(Paul Motian)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1959년 리버사이드를 통해 발매된 <Portrait In Jazz>를 시작으로 총 네 장의 앨범을 녹음하였다. 빌 에반스는 즉흥 연주에서 솔로 주자와 반주자의 경계를 약하게 함으로써 베이스가 단순한 반주 악기를 넘어 피아노와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이끌었는데, 이는 트리오에 있어 새로운 콘셉트를 개척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진 녹음으로 빌 에반스 트리오는 역대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피아노 트리오 중 하나가 되었다.
1961년 6월 25일
1961년 6월 25일 일요일, 뉴욕의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에서 다섯 세트 동안 라이브로 녹음된 이날의 공연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즈 레코딩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기의 재즈 걸작을 탄생시킨 빌 에반스 트리오의 뱅가드 공연 10일 후, 스캇 라파로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자동차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빌 에반스를 황폐화시켰고, 실의에 빠진 그는 몇 달간 공식적으로 녹음하거나 공연하지 않은 채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그렇게 빌 에반스의 첫 트리오는 전설로 남겨지고 말았다.
만약 스캇 라파로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이들은 세상에 어떠한 음악을 남겨주었을까. 빌 에반스의 삶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들이 세상에 남겨준 단 네 장의 앨범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면, 꼭 한 번은 경험해보길 권한다. 이들 트리오가 왜 그토록 사랑을 받았는지.
1962년
빌 에반스는 스캇 라파로의 죽음 이후 그의 이상적인 트리오를 찾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깊은 슬픔에 잠식되어있던 그에게는 무엇보다 새로운 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심연의 바다로부터 그를 건져낸 것은 언제나처럼, 음악이었다.
섬세한 영혼의 교감으로 마치 한 사람이 연주하는 듯한 완벽에 가까운 하모니를 선사해주는 선물 같은 앨범, <Undercurrent>. 빌 에반스와 기타리스트 짐 홀(Jim Hall)이 만나 United Artist Jazz Records을 통해 탄생한 듀오 앨범으로 현재까지 널리 호평받는 명반이다.
빌 에반스와 짐 홀의 연주는 자아를 마주하는 영혼의 대화처럼 서로를 관통하는 듯하다. 두 거장의 음악을 대하는 진실함과 겸손함, 그리고 서로를 향한 존경과 신뢰로 점철된 소통의 예술은 또 하나의 명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청취자로 하여금 궁극의 편안함에 이르게 한다. 토니 프리셀의 인상적인 커버, 빌 에반스와 짐 홀의 독창적인 편곡과 천재적 창의성이 빚어낸 <Undercurrnet>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
1980년 8월 9일
빌 에반스의 약물 중독은 1950년대 후반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하는 무렵에 시작되었다. 그의 활동기간 대부분 그는 헤로인 중독 상태였고 1960년대에 가장 심각했으며 그로 인해 그의 건강과 경제사정 또한 좋지 않았다. 1960년대가 끝나면서 그는 헤로인 중독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나 1970년대 후반 코카인에 중독되면서 아주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 약물 과용과 간 손상, 그리고 평생 동안 싸워온 간염으로 인해 그는 매우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1979년 봄, 빌 에반스가 몇 주간의 투어를 시작했을 때 그는 정신 분열증 진단을 받은 그의 형 해리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은 그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의 감정 상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예정되어 있던 일부 콘서트는 취소되어야 했다. 두 형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웠고 그의 친구과 친척들은 빌 에반스가 형이 죽은 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여자 친구였던 Laurie Verchomin은 빌 에반스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빌 에반스는 만성 간염 치료를 자발적으로 중단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트리오의 마지막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마크 존슨에 의하면 빌 에반스는 형 해리가 죽은 후, 연주하고 일하려는 의지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한다. 실제로 빌 에반스를 똑바로 세워준 것은 음악 자체였다. 그는 자주 아팠고 병들어가고 있었지만 음악으로 삶을 지탱하는 힘을 얻었고, 그때가 그의 인생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1980년 8월 9일 토요일, 빌 에반스 트리오는 노르웨이 Molde Jazz Festival에서 연주했다. 그리고 이날의 공연은 빌 에반스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1980년 9월 15일
1980년 9월 15일 월요일, Fort Lee에 있는 자택에서 복통으로 며칠 동안 누워 있었던 빌 에반스는 조 라바베라와 Laurie Verchomin과 함께 뉴욕시의 Mount Sinai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출혈성 궤양, 간경변, 기관지 폐렴의 합병증으로 인한 식도 정맥류 출혈로 그날 오후, 51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음악 평론가이자 전기작가인 빌 에반스의 친구, Gene Lees는 그의 마약과의 투쟁을 "역사상 가장 긴 자살"이라고 표현하였다. 빌 에반스는 루이지애나 배턴루지에 있는 그의 형 해리 옆에 묻혔다.
그의 짧은 인생에서 빌 에반스는 종종 반복되는 건강 문제와 불안한 본성에 직면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심오하고 창의적인 예술가이자 진정 온유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 후에도 그의 음악은 전 세계의 음악가와 작곡가, 그리고 그의 천재성과 서정적인 예술성에 깊은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여전히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곡을 쓴 사람의 마음이나 연주하는 사람의 영혼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빌 에반스의 음악은 친절하고 젠틀하다. 노래하고 있는 그의 영혼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진실되며, 여린 영혼을 가진 어른 아이와도 같다.
수없이 쏟아져 나온 재즈 명반들 가운데에서도 빌 에반스만이 가진 사운드의 명료함과 여백이 주는 안정감, 단단하면서도 섬세하고 맑은 터치, 그리고 빌 에반스로 정의되는 서정적 멜로디는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력적일 만큼 황홀하다. 그의 플레이는 때로 대담하지만 선명하고 깨끗하다. 투명한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그의 멜로디는 빌 에반스의 내재되어 있던 에너지가 빛나는 찰나의 순간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