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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9. 2021

승부킥 대결

고학년생의 하교 교통지도가 끝나고 퇴근 무렵이 가까워 오면 할 일이 없어진다. 해가 길어진 7월의 오후에 안전지킴이 실에 앉아 있으면 권태감이 밀려온다. 지킴이실 창 너머로 운동장 한편에 유니폼을 입은 학교 축구부가 훈련하는 것도 보이고, 반대편 골대에는 축구를 하거나 발야구하는 아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쩌다 지킴이실 가까이 축구공이 굴러오면 나는 잽싸게 나가 몇 번 드리블한 후 힘껏 차 주게 되면 아이들도 '구~웃' 하며 엄지를 추켜올려준다. 나 또한 슛 팅 연습을 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 '나이 슛', '나이스 캣치' 등의 칭찬을 해 주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 가까이 다가가 함께 어울리게 된다. 

이렇게 넓고 푸른 운동장이 없는 학교였다면 나의 지킴이 생활은 참으로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지난 6월 우리나라 팀이 결승까지 승승장구한 'U-20 월드컵 축구대회'는 전국적으로 축구에 대한 열기를 한층 더 높여 주었다.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으로 공을 갖고 우르르 뛰 쳐 나오는 아이들이 엄청 많아졌다. 

비 오는 날도 축구시합을 하거나 슛 팅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며, 나 역시 이러한 들뜬 분위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8강전 때 이강인의 절묘한 어시스트로 득점을 올린 상황을 이야기하며, 포위망을 탈출하는 개인 기술 등을 아이들과 함께 재연하기도 하며 잘하는 아이들을 칭찬해주기도 하였다.


그중 슛 팅이 좋은 아이들과는 승부 킥 대결을 펼치기도 하였는데, 아이들도 단조로운 슛 팅 연습보다 이러한  대결을 더욱 좋아했다.

"우리 승부 킥 대결 한번 해볼까?" 

내가 물으면 아이들 대부분은 자신만만했다.

"아저씨, 좋아요." 

"5개씩 차고 골키퍼는 번갈아 하기다."  

"예, 알았어요." 

"우리 학교에서 지금껏 나를 이긴 학생이 아무도 없다는 거, 소문 들어서 알고 있는지?" 

"예~ㅎ, 저는 다를 겁니다."

아이들은 질 좋은 축구화를 신었지만, 결과는 늘 나의 승리였다.

그 이후 아이들도 교내에서 나를 마주치면 

"아저씨, 언제 한 번 더 대결해요."

계속 도전하는 아이들도 많아졌으며, 나는 파죽지세로 도전자들을 계속 이겨서 불패 신화를 이어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이날도 어김없이 지킴이실 가까이 굴러온 공을 뻥 차주면서 함께 어울린 아이들과 승부 킥 대결을 벌이게 되어 두 명을 이기고 난 후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평소 말이 없는 5학년생이 내게 대결을 요청해 왔다. 이 아이가 축구하는 모습을 가끔 보았는데, 실력은 뛰어나지 않았으나 키와 덩치는 나보다 조금 더 컸다.     

각각 5개씩을 차기로 하여, 내가 찰 마지막 공 한 개를 남겨두고 3 : 3 이 되었다.


지금껏 비긴 적도 한번 없이 전승을 기록했는데, 넣지 못하면 무승부가 된다. 나의 기록에 오점을 남기게 될 수도 있다. 정말 위기에 봉착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우측 상단 빈 곳을 향해 조금 강하게 슛을 때렸다. 볼은 아이 손을 스치면서 그물을 크게 흔들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완벽한 나의 오른발 슛 팅이었다.

아이도 많이 아쉬운 듯했다. 처음과 달리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손이 불편한지 양손을 만지 작 거리고 있다.

"왜 그래, 손이 아프니?" 

"아니, 괜찮아요." 

그러면서도 아픈 기색으로 오른손으로 왼손을 계속 주무르고 있다.

"야 너 아무래도 다친 거 같은데, 안 되겠다 양호실로 같이 가보자."  

양호실에는 그 아이 담임도 계셔서 조금 민망스러웠지만 경위를 대략 설명하였으며, 양호 선생님이 스프레이를 뿌리고 붕대를 감아 응급 처치를 해 주었다.

붕대를 감고 집으로 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 아려 온다.    

 

다음날 아침 교통지도를 하면서 마음은 온통 그 아이 생각뿐이다. 교문 주위로 시선을 주시하며 아이가 나타나길 기다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마침 점심시간에 어제 축구를 같이 한 5학년 여자 아이를 만나게 되어 물어보았다.

"아~ 예, 그 아이 우리 반 00란 앤 데, 오늘 병원에서 깁스하고 늦게 왔어요."


정말 안타깝고 난감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으며,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걱정이 된다.     

하교 길 교통지도를 하면서도 교문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주시하고 있는데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그 아이가 나타났다. 

"야~ 너 어찌 된 거냐?"

"예, 어제 집에 가서까지도 계속 아파서, 엄마가 병원에 가 보라 해서 사진을 찍어봤더니 뼈에 금이 갔는데 4주쯤 깁스하면 괜찮답니다." 

"그래, 정말 미안하구나." 

"전혀 아닙니다."

더 이상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가운데 내가 불 쑥 한마디 던집니다.

"그래, 어제 3대 3 상황에서 나도 이기려고 강슛을 때렸고, 너도 비기려고 무리하게 막느라고 다친 것이다. 모든 것에 욕심이 지나치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법이다."

"예~ㅎ"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을 터인데, 나이 많은 어른이랍시고 거기서도 훈계를 하는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하다.      

그 후 팔에 깁스를 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면목도 없고 할 말도 없는데 교내에서 더 자주 마주치게 된다. 나는 운동장에 가지도 않고 멀찌감치 공차는 아이들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가 깁스를 한 채 공을 차고 있는 걸 보니 더욱 불안하다. 

"야, 세게 차지 말고, 살살 차야 된다."

"예, 괜찮아요." 

또 다칠까 염려스럽지만 즐겁게 공을 차는 걸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시간이 참 느리게 가는 듯했지만, 4주가 흘러가고 그 아이 팔에 깁스가 풀렸다.

"야 괜찮은 거 맞니?"

"예, 끄떡없어요. 4주가 금방 지나가네요." 

두 손을 빙글빙글 돌리며 환히 웃는 것을 보니, 내 마음 도 평온해져 온다.     


그 후에도 점심시간에 아이들끼리 축구를 하다 부딪쳐서 골절된 아이가 구급차에 실려 간 또 다른 사고가 있었나 보다. 이 소식도 전할 겸 양호선생님이 지킴이실로 찾아와서 내게 경고장을 날린다.

"선생님이 찬 공에 다친 애도 안전공제회에 신청했었습니다만, 그만하기 참 다행이지요. 이제 애들과 축구는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젊은 양호선생님의 충고가 못내 서운했지만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아이들 상대로 승부 킥 불패를 달성하려 했던 나의 욕심이 안전지킴이의 본분에 역행하여 도리어 안전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다시는 아이들을 골키퍼 세워놓고 이기려고 강슛을 날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공을 차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멋진 운동장과 아이들이 너무 가까이 있는 유혹을 어찌 견딜 수 있을까!

"야, 슛 때려 봐라. 내가 골키퍼 해줄 테니." 

"예~ 할아버지, 아니 아저씨!" 

이제 강슛을 때리기보다 멋진 골키퍼(지킴이)로 아이들의 강슛을 온몸으로 막으며 서비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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