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남원 인월에서 2일간 둘레길을 걸었다. 책 '그래도 여행은 꽃핀다'의 공동 저자와 여러 회원들을 만나서 반가웠고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번 주는 가족과 함께 내장산 강천산 등의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담양의 메타 펜션을 3일간 예약했다. 단풍철이라 정읍, 순창의 호텔은 이미 만실이어서 가까운 이곳으로 정했다.
목요일 오후, 퇴근과 동시에 아내와 큰 아들과 함께 차를 담양으로 달렸다.
지난 7월 졸음으로 인한 사고를 겪을 뻔하였기에 조금만 피로해도 쉬기로 하여 휴게소를 빠지지 않고 들렀다.
해가 넘어갈 때쯤 우리는 담양 IC로 나와 메타스퀴어 가로수 길이 보이는 펜션에 도착했다.
벌써 숙소에는 바비큐를 준비하느라 불을 피우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짐을 풀어 두고 주변 맛집 프로방스를 둘러보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차로 10분 거리의 떡갈비 맛집으로 갔다. 음식이 꽤 정갈히 나오고 독특한 식감이다. 추가 주문을 AI가 서빙해 주는 것도 신기하다.
작은 도시지만 관광지로서 수준이 높다. 돼지ㆍ한우 떡갈비를 반반씩 시켜 먹었는데 언양불고기 보다 함박스테이크 맛이라는 아들의 표현이 정확했다.
거실과 방이 분리된 넓은 숙소로 돌아와 TV를 보고 내가 먼저 안방에서 자는데 코를 골았는지 아내와 아들 모두 거실로 옮겨갔다.
다음날 일찍, 우리는 사온 빵과 커피를 끓여 마시고 순창 강천산을 향했다.
가는 길목은 안개가 짙어 주변을 볼 수가 없었으나, 산 초입에 오니 단풍나무가 울긋불긋 멋진 수채화로 우리를 맞이한다.
안개도 걷히고 아침 햇살이 비치니 단풍의 색깔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아들은 어린이 사생대회를 열면 더없이 좋은 장소라고 말한다. 아내도 자연이 준 황홀감에 빠져 연신 감탄사를 토한다. 예전에 못 본 현수교와 구장군 폭포까지 올라가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맑고 고요한 가을의 시간이면 나도 눈과 귀가 밝아져 총명을 더한다. 아기 숨결 같은 바람에도 가지 끝에서 허공을 팔랑대며 날리는 단풍의 몸짓이 또렷하고 낙엽더미에 살며시 내려앉는 바스락 소리도 감지된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아는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길가에서 본 '연리지' 단어도 그렇고, '현수교'의 설명도 이현령 비현령을 예시하며 아들에게 이해를 어렵게 할 뿐이다.
사진을 아주 싫어하는 아들도 차츰 융화하면서 무릎을 꿇어가며 사진을 잘 찍어주려고 애쓴다.
올 가을은 억새와 단풍의 정취에 흠뻑 빠졌던 날들이 많았다. 우리 모두는 억새의 굳건함과 단풍의 아름다움에서 삶의 의지와 가치를 느낄 수 있었으리라.
우리는 강천산 6km의 산책을 끝내고 곧바로 내장산으로 차를 달렸다. 높은 산을 넘으니 저 아래 국립공원 내장산 입구 마을이 보인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여서 식당에 주차의 대가로 산채비빔밥을 먹고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매표소는 긴 줄이 서있으며 옆의 입구에서 외치고 있다.
"만 65세, 국가유공자, 복지카드 발급자, 정읍 시민은 무료이니 옆으로 나오세요!"
내 흰머리가 눈에 뜨이는지, 긴 줄 속의 내게 묻는다.
"선생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며칠 차이로 해당이 안 됩니다."
"아하~ 내년에 오시면 무료로 입장해 드릴게요.ㅎ"
끝이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단풍길을 따라 우리는 걸었다. 우화정 호수와 케이블카를 지나 내장사까지 걸어갔다. 인파의 물결이지만, 미소와 감탄과 환호성으로 모두가 즐겁다.
내장사 경내로 들어서니 대웅전이 아닌 '대법당'이라 적힌 임시 건물이 보인다. 참, 얼마 전 방화로 소실되었었지!
초라한 대법당이 오히려 눈길을 끄는지 사람들이 많고 나도 들어가 절을 했다.
내려오는 길에 휴대폰 뉴스를 보니 야당의 대선후보 경선 결과가 나왔다. 아들과는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않기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대선에의 기대는 크다.
미래를 생각하는 지도자가 뽑히길 바란다. 무능하고 부도덕한 후보를 배제할 줄 아는 국민의 안목이 곧 정치발전으로 연결되어서 청년들의 희망이 펼쳐질 것이다.
종일 단풍길을 걸은 후 담양으로 되돌아와 숙소 앞 메타스퀴아길을 산보하러 갔으나, 입장료를 받는단다. 아들은 2년 전 친구와 함께 와서도 가성비 낮은 입장료가 어이가 없어 걷지 않았단다. 우리는 입구 벤치에 오래도록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은 가까운 프로방스 국수 맛집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숙소에서 쉬었다.
마지막 날 아침, 어제 사온 빵과 커피를 마시고 죽녹원으로 갔다. 대나무 숲 속에서 음이온을 받으며 한 시간여 걸었다. 죽제 3인용 안락 의자에 누워 쉬기도 하고, 디지털 입체 음향 그림(꽃 폭탄을 맞으며 변하는 모나리자 그림, 사계절로 변하는 풍경화 등)도 감상하고 목베개도 샀다.
마지막 코스로 백양사 단풍길로 향했다. 주말 11시경이라 정체가 심하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다. 입구에서부터 단풍이 진하다. 백양사 뒷산의 큰 바위가 멋지고 그 아래 자리한 절도 명당으로 보인다.
절 입구에 스님이 멋진 목소리로 가을 노래를 부른다. 노래와 단풍이 어우러져 그동안의 갑갑함을 힐링해 준다. 좋은 마음으로 기와 불사도 했다.
사흘간의 단풍 여행, 피크닉 같았던 산책을 모두 마치고 이제 귀갓길이다.
부산에 도착해 저녁을 먹으려다 진영휴게소에 들르니 이전과 달리 멋지게 변모하여 여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늘 그렇듯이 밥 하나를 나눠 먹으면 적당하다.
이 휴게소는 예전에 고향을 오가며 가끔 들렀던 곳이다. 아내와 아들은 그때 할머니와 함께 튀김 가락국수를 즐겨 먹었다며, 이 휴게소가 좋아 경부고속도로보다 이 길을 더 이용했다고 얘길 한다.
나는 잊었었는데 아내와 아들은 뚜렷하다.
또한 제주도 성산일출봉 위에서 내 지갑을 습득하였다는 방송이 나와 구경도 못하고 부리나케 내려온 기억 등 내가 잊어 먹었던 추억을 되새겨주니 정말 새롭고 기뻤다.
모두가 작은 갈등 없이 즐겁게 끝났다. 이전 여행과 달리 서로가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고 배려한 결과이다.
곧 둘째 아들이 휴가를 받아 집에 온다고 하니 지리산 단풍 산행을 계획해 볼까 한다. 올 가을의 정취에 푹 빠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