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킴이의 종료

by 화당

정년퇴직 후 00초에서 지킴이로 봉사를 한지도 4년 5개월이 지났다. 이 근무도 종료하고, 나는 또 어디서 무엇이 되어 흘러가게 될는지 궁금하다.


한 학교에 3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는 교육청 규칙은 바람직하다. (최근 규칙이 완화되어 학교에서 다시 지원서를 내어 근무해 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만 두기로 작정했다.)

한 곳의 장기 근무는 반드시 부작용이 있으리라. 교사와 직원의 정기적 전보도 같은 이유가 아니겠는가.

나 역시 이곳 생활이 즐거운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태만해짐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설 연휴가 끝난 목요일 아침이다.

언제나 유쾌한 아이들이 길을 건너 내게 오면서 환한 얼굴로 웃는 이 순간이 좋다. 낯익은 6학년 아이들에게 어느 중학교로 배정받았는지를 묻고 열심히 하라고 한다.

나를 볼 때면 먼저 손을 높이 흔들며 반가움을 표하는 4학년 아이가 안경을 처음 낀 자기를 왜 못 알아보냐며 따진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수많은 친구들을 다 잃어버리는 기분이다. 언젠가 이들이 그리워질 때 나는 또 어디에 있을는지! 등하굣길에 아이들과 인사하고 얘기할 기회가 이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남은 시간이 소중할 뿐이다. 추운 날씨였지만, 하굣길의 교통지도를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 하였다


다음날 아침, 00초에서 마지막 근무하는 날이다. 예전에 적어 두었던 글들이 이렇게 선물이 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재작년 4학년생에게 받은 멋진 크리스마스 카드에 대한 보답도 그 당시 감동으로 내가 올렸던 SNS 글을 인쇄하여 아침 등굣길에 전해 주었다. 카드를 받던 그때와 같은 시간, 장소에서 봉투를 내밀며 "00 아, 내가 편지를 썼는데 나중에 집에 가서 읽어보렴." 하였다. 그 아이도 예전에 카드를 받았던 나처럼 기쁜 얼굴로 편지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침이면 함께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이한 교장, 담당 선생님께는 지난번에 펴낸 13인의 공저 '그래도 여행은 꽃핀다.'를 드렸다. '000 혜존'이라 적어본 것이 옛날 석사학위 논문 발간 이후 처음 느껴본 보람이었다.


아메리카노를 가끔 사주신 선생님께는 전화로 고마웠다고 하였으며, 교무실과 행정실에 들러 인사를 하니 가뿐하다. 어제 선발되어 나를 대신해 새로 온 분께 인계를 해주고 교문을 나선다.


오래 근무를 하였지만 정리할 짐도, 갖고 갈 짐도 하나 없다. 목에 걸었던 내 명찰만 떼서 오니 끝이다. 떠나고 머무름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


단 하나 아쉽다면, 이제 나만의 독립공간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푸른 하늘과 구름, 나무가 쳐다 보이는 운동장 옆 1인실 독립공간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웃고 울먹일 수도 있는 DJ박스 같은 나 홀로 공간)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지킴이 생활이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이렇게 즐거운 일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는지?

하지만, 찾을 수 없어도 좋으리라! 오래도록 회상할만한 즐거웠던 추억을 쌓았으니까!


좋아하던 노랫말이 떠오른다.

'♪~ 저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떠나고, 또 다른 나루에 내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

이날 나는 교문을 나와 새로이 얻은 업무의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곧장 갔었다.


새로운 일은 시간적 여유가 많으나, 그게 마냥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겠지만 즐겁게 따라 가리라~

새벽에 일어날 필요도 없이 늦잠을 자고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한 두 해쯤 즐겁게 쉬엄쉬엄 놀면서 일해 보리라! 옛 노동의 추억이 그리워질 때까지~


5년 전, 정년퇴직 직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이젠 '세월'이라 불러도 될만한 한 계단의 시간이 흘렀고 나 또한 연륜을 더했다. 즐거운 일을 찾아다니는 건 우리의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지만, 나이 들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질 것이다.

하지만, 떠돌이 같은 삶도 즐겁다. 물과 바람, 구름처럼 편안함과 익숙함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으로 흐르는 게 우리들 삶의 본질일 것이다.


새로운 일과 경험을 즐기면서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자유인으로 인생 후반을 걸어가야겠다. 시작이 곧 종료이며, 그 끝 지점이 또 다른 출발선이 됨을 인식하게 된다.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더욱 가까이서 느끼게 될 것이다.


4년 5개월의 일이 마무리된 오늘, 어찌 축배의 술 한잔을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깔끔한 '동전 노래방'에 들러 찬찬히 그리움의 노래도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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