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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도를 손에 쥔 아이

정해진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by 달빛서재

나는 오랫동안 세상 모든 아이들이 나와 같은 풍경 속에서 사는 줄 알았다. 아빠의 빈자리, 아무도 꿈을 묻지 않는 어른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막막함까지도. 그것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기에, 나는 누구에게도 불평하거나 투정 부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내 앞에 놓인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고요하기만 하던 나의 세계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은, 교복을 벗고 막 스무 살의 문턱을 넘어서던 무렵이었다.


꿈으로 가득했던 작은 책상


어느 날, 사촌 동생이 서울의 명문대에 합격해 우리 집에서 1년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식구가 생긴다는 사실에 그저 마음이 들떠 있었다.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길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동생과의 동거는, 내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가야 했던 나와 달리, 동생의 세상은 오직 ‘약사’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평일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독서실로 향하는 동생의 발걸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고, 밤늦게 돌아와서는 스탠드 불빛 아래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책을 폈다. 동생의 작은 책상은, 마치 흔들림 없는 꿈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쌓이는 성전과도 같았다.


그 반짝이는 모습은 내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돈 벌 걱정부터 해야 했다. 내 꿈의 크기는 늘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그 아이는 오직 자신의 목표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면 되었다. 꿈을 향한 길 위에서 마주하는 모든 장애물과 걱정은, ‘부모님’이라는 이름의 든든한 버팀목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두 막아주고 있었다.


내 손에는 없던 인생이라는 지도 한 장


나는 그 아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손에 ‘지도’를 쥐고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약사였던 이모는 딸에게 ‘약대’라는 선명한 목적지가 그려진 지도를 물려주었다. 그 지도 위에는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 굵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아이는 그저 그 길을 따라 묵묵히 걷기만 하면 되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정해진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넘어질 걱정 없이, 길을 잃을 염려 없이, 오직 앞만 보고 걸어가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보장된 미래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걸어가는 동생 앞에서, 나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갯속처럼 느껴졌다. 내 손에 들린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이 막막한 세상 속에서 홀로 더듬더듬 길을 찾아야만 했다.


나 역시 그 시절, 막연한 불안감에 새벽반 입시학원에 등록하며 대학의 문을 두드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업고등학교를 나온 내게 영어와 수학의 벽은 너무나 높고 단단했다.


기초가 없으니 아무리 애를 써도 제자리걸음일 뿐이었다. 결국 나는 ‘대학’이라는 목표가 내 길이 아님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이지 망막함, 그 자체였다. 지금은 오히려 하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는데, 스무 살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작은 조각배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막연하게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무언가 나만의 기술과 경력으로 단단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이 필요했고, 그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보통 ‘학벌’이라는 배경이 있어야 했다.


내게는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인 ‘시간’과 ‘경험’으로 승부를 보기로. 정해진 지도가 없다면, 온몸으로 부딪쳐 나만의 길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첫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한 직장에서 15년이라는 시간을 묵묵히 채워가고 있다. 길 위에서 방황하던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놀랄 것이다.


어느 주말, 두 딸아이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큐레이터 체험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기다리며 유리창 너머로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때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가보지 못했던 길을 알려주는 든든한 어른이 되어주자고, 적어도 길을 잃고 헤매는 막막함은 느끼게 하지 말자고 말이다.


물론 지금 우리 부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자의 미래를 준비하며 바쁜 주말을 보내고 있는 두 딸을 위해, 우리는 정성껏 반찬을 만들어 양손 가득 들고 아이들을 찾아간다.


엄마의 손맛이 담긴 따뜻한 밥 한 끼가, 각자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아이들의 고단한 여정에 작은 위로와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손에 들린 백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이 나의 삶이었고, 이제는 내 아이들의 지도가 더 풍성해지도록 돕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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