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선율 속에서 걸어보기
나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곧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걸 팔자다리라고 불렀다.
어린 나는 그 말의 뜻도 모른 채,
그저 나만 조금 다르게 태어난 줄 알았다.
사진을 찍을 때면 다리를 교묘히 모았고,
바지를 입을 때는 주름선으로 모양을 감췄다.
누가 “걸음걸이가 특이하네.”라고 말하면
그날은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그건 단지 다리 모양의 문제였지만,
나는 그 모양이 내 인생의 큰 결함처럼 느껴졌다.
성인이 된 후,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필라테스도, 요가도 했으며, pt도 열심히 받았다.
근육을 잡고 균형 잡힌 몸이어야만
‘반듯한 나’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교복도 치마 대신 바지를 입었다.
치마를 입으면 다리를 더 벌리고 걷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제일 오래 남았다.
“예쁘게 걸어야지.”
그 말은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바르게 걷기에 치중하기보다 보이는 걸 먼저 배웠다.
다리를 고치기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지는 나에게 초점을 모았다.
98년도 사진 속의 나는 다리를 꼭 모으고 이쁘게 사진 찍으려는 엄마의 열정의 투혼이 있던 시기이다.
지금 보면 그냥 어린아이이고, 조금 바르지 못하게 걸어도 괜찮을 나이인 것을..
인어공주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녀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그는 그녀의 노래를 듣지 못했고, 그녀는 목소리를 내어주는 대신 다리를 얻었다.
그녀에게 다리는 사랑으로 가는 통로였다.
하지만 그 다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고통이었다.
그녀는 '피'로 번지는 통증 속에서도 그의 곁에 서기 위해,
조금이라도 인간에 가까워지기 위해.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잃었고,
나는 다리를 고치려다 마음을 잃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결국
나를 저만치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사람들은 인어공주가 바다의 거품이 되었다고 말한다.
비극이라고도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을 잃었지만,
그 사랑 속에서 자신을 되찾았다.
다리가 아니라, 목소리가 아니라,
그저 ‘나’라는 존재로.
그녀는 바다 위에서 천천히 흩어졌다.
누군가에겐 사라짐이었겠지만,
나에겐 돌아갔음.으로 보였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슬픔보다 고요가 남았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다섯 겹으로 본다.
몸, 감정, 생각, 습관, 의식.
그걸 오온(五蘊)이라 부른다.
나는 그중 첫 번째, 몸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 몸에 감정이 붙고,
그 감정에 생각이 쌓였다.
‘예쁘게 걸어야 한다.’
‘반듯해야 사랑받는다.’
그 생각이 행동이 되고,
그 모든 게 쌓여 ‘이게 나야.’라는 믿음이 되었다.
하지만 붓다는 말했다.
“그건 네가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마음의 형상일 뿐이다.”라고..
그 말을 떠올리면 거울 속 다리가 더 이상 결함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다리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정돈된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려 한다.
조금 비틀려도 괜찮고,
가끔 멈춰 서도 괜찮다.
걷는 일 자체가 이미 나의 연습이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배우는 중이다.
완벽히 반듯하지 않아도 된다.
휘어진 선에도 방향은 분명히 있다.
나는 요즘 나의 다리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결함이라 치부된 사실을 나의 소중한 무늬라는 것을....
그 안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필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비틀렸던 선율 위, 어설펐던 걸음조차
모두 나의 기록이고, 나의 흔적이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다리를 모으지 않고, 억지로 펴지도 않은 채...
내 속도의 걸음으로, 조용히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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