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와 단종에게 소식을 전한 두견새의 애달픈 이야기
영도교의 이별
청령포에 어둠이 깔려오자 관음송 위에서 한 마리의 두견새가 울고 있었다.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애절하게 울고 있었다. 그 새는 다시 날아가 엄흥도 집의 감나무 위에 앉아 울고 있었다. 청령포와 엄흥도의 집을 오가면서 울고 있었다. 며칠 후에는 한양의 동망봉 아래에 있는 정업원 나무에 앉아 두견새는 울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정순왕후는 무엇에 감응하였는지 바깥으로 나와 나무 아래로 나갔다. 그 순간에 두견새가 피가 묻은 무슨 종이 같은 것을 토해내어 마당에 떨어뜨렸다. 그 두견새는 어느 날은 영월에서 어느 날은 한양에서 번갈아가며 울어댔다. 밤을 틈타 수백리길을 날아서 오가며 무슨 사연을 전하는지 오갔고, 울면서 가지고 온 쪽지를 뱃속에 담아서 피를 머금어 토해내었다.
그 두견새는 유달리 울음소리가 처량하였고 꼭 한 곳에서 누구에게 전하려는 듯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전하듯이 울어댔다. 밤에만 울어대니 그 모습은 어둠 속에서 분간하기가 힘들었고 날이 밝아오면 여명과 함께 사라졌다. 어둠을 타고 찾아왔다가 햇빛에 쫓겨서 사라졌으니 어둠의 사신인양 슬픔의 화신인양 암담하고 애절하였다. 그 새는 또 아무 곳에서가 아니고 영월의 청령포와 엄흥도의 집과 한양의 정순왕후의 정업원에서만 울어댔다. 이별의 아픔인지 애타는 기다림인지 견디기 힘든 고독감인지는 모르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을 녹이는 듯하였다.
한여름 한양을 떠나 이레만에 단종의 유배행렬은 영월에 도착하였고 막바로 단종은 청령포에 마련된 배소에 갇혔다. 급하게 지은 초가삼간에는 단종이 머무르고 몇 명의 옥리들이 지켰다.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도망갈 길도 없는 사방이 강과 산으로 둘려 쳐진 천연의 감옥이었다. 감돌아 흐르는 서강의 여울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애잔하였고 소나무 숲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는 음산하였다. 그곳을 어찌하여 유배소로 정했는지 강과 산으로 단절된 모습은 창자를 끊어 놓은 듯 외롭고 처연하게 보였다. 간직해 온 정분을 끊다 못해 이제는 희미한 희망마저 저버리게 만든 그 모양새며 그 분위기며 또 강물과 바람과 산새들의 울음소리도 그야말로 절망과 고독의 감옥임을 실감하게 하였다. 청령포를 감돌아 흘러가는 강물은 며칠이면 한양의 노들강변을 지나갈 것이다. 강물이라는 물길은 한양땅과 연결되어 있지만 소식을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었기에 그 어린 단종을 밤마다 잠 못 이루게 하였다. 말을 나눌 신하도 없었고 같이 있는 옥리들만이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차리게 하였다.
단종은 사방 몇 걸음 밖으로 못 나가게 경고하고 있는 금표비를 원망하며 오직 초가 앞에 서있는 두 갈래 가지가 갈라진 소나무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를 까먹기도 하다가, 거센 강바람이 얼굴을 때리면 그제야 처지를 알아채었다. 밤이 되면 등잔불 앞에 앉아 지난 일을 되돌아보지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영문을 알 수도 없었다. 대역죄인으로 노산군이라는 이름은 있었고 단종이라는 왕호는 호명되지 못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충신들의 처참한 죽음에 대한 사연은 밤마다 그를 악몽에 시달리게 하였다. 신혼의 달콤함을 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영도교에서 이별한 왕후가 옷고름에 눈물을 훔치던 모습을 그리니 견딜 수 없는 애처로움이 가슴을 쳤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를 자신의 운명을 헤아리니 밤은 견디기 힘든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네 이놈, 너는 어찌하여 녹을 내린 짐을 배신하였단 말이더냐.”
“나으리, 저는 그대를 임금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소이다.”
“뭣이라고, 이런 죽일 놈을 보았는가. 나를 나으리라고 이런 망발이 있나.”
“내가 한 번도 문서에 신하라고 적은 적이 없고, 녹봉을 받아서 쓴 적도 없소이다.”
“어허, 그간 매달 쌀가마니를 보냈는데 안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단 말이더냐.”
“나의 집에 와서 한번 챙겨보시오. 그대로 곳간에 쌓아만 두었단 말이오”
“그러면 네가 지금까지 먹은 곡식은 어디서 났더란 말이더냐. 이런! 거짓말도 유분수지 영악하기도 하구나.”
“나으리, 나는 문종임금과 단종임금이 내린 쌀을 아껴서 먹고 있다오. 어찌 나으리가 내린 더러운 쌀을 먹을 수가 있다고 보시오이까.”
“갈수록 가관이구나. 저놈의 주리를 틀고 인두로 담금질을 하여라.”
“아이구, 나으리는 그간 내가 올린 문서를 무슨 까막눈인지 알아보지를 못했단 말인가요. 신(臣)이라는 글자를 유심히 살펴보소서.”하고 그와 세조 사이에 국문장에서 오간 말들이었다.
병자년 군기감 연병장에서 담금질로 피폐해진 그의 육신은 마지막으로 차열형으로 사지가 찢어져서 죽었다. 그 처참한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김시습은 치밀어 오는 분노의 눈물을 머금고 시신을 수습하여 노들언덕에 묻었다. 얼마 후 노들강변에서는 구슬픈 초혼가가 강바람 타고 들려왔고 강위쪽 송파의 정자에는 공신들의 권주가가 흥청망청 울려 퍼졌다. 며칠 동안은 밤이 되면 노들언덕에는 귀신불이 이리저리 뭉쳐서 몰려다니면서 무언가를 항변하였다. 노들언덕에 묻힌 그의 혼은 구천을 맴돌며 안주하지를 못했다. 천상으로 천사가 불러 올렸지만 그는 한사코 사양하였고 두견새로 태어나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
“어허, 그대는 어이하여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천상을 마다한다는 말인가요. 이번에 못 가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를 않다는 것을 모르시오”
“판관 나으리, 저는 가슴에 맺힌 한을 풀지 않고서는 그곳으로 가기가 싫습니다. 축생으로 태어나더라도 조선땅에 가고 싶습니다.”
“무슨 한이 그렇게 맺혔기에 축생으로 태어나서 그 땅을 지키려고 하는가요.”
“아마 하늘은 나의 사연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니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전생에 모시던 임금에 대한 애환이라는 것은 짐작은 합니다만 이제 잊어버리고 새로운 생을 찾으시길 권합니다.”
“아직 살아 계시는 임금이 애처로워 그분의 곁을 떠날 수가 없군요. 지금도 혼자서 울고 계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하고 그와 천상의 판관이 나눈 이야기였다.
그는 군기감 연병장에서 죽음을 맞이하였고 얼마 후 천상으로 가서 판관에 의해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 심문을 받았다. 그곳에는 이미 계유정난 때 희생된 김종서와 황보인이 먼저 도착하여 천상에 머무르고 있었다. 얼마 후에 그가 도착하였기에 천상과 지상의 시차는 어마어마하였다. 3년이라는 세월이 그곳에서는 단 며칠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김종서나 황보인처럼 판관의 권고대로 천상에 머물면 될 텐데 어찌하여 축생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였을까. 아마 단종을 보호해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스스로 고행의 길로 가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축생으로 태어나려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대가 축생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는데 무슨 짐승이길 바라오.”
“저는 두견새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허허, 두견새는 얼마나 슬픈 짐승인가요. 피를 토하듯이 밤마다 우는 것을 모르신다는 말씀이오.”
“저의 심정이 괴로워서 밤마다 울 수밖에 없습니다. 두견새로 태어나게 해주십시요.”
“두견새는 낮에는 눈이 어두워 볼 수가 없고 밤에만 보이니 감당할 수 있겠소.”
“아이구, 제가 낮의 세상을 보고 싶지도 않고 밤에만 보고 울고 싶습니다.”하고 판관과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군기감 국문장에서 끌려 나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육신은 처참하게 분노의 형벌에 부서져가는데 오직 정신만은 밝게 빛났다. 가슴에 응어리진 한스런 원망을 뱉어내니 후련하였고 하늘에 떠있는 해는 희열을 안겨주었다. 그는 세조와 간신들을 보지를 않고 하늘을 맨눈으로 응시하였으니 얼마 후에는 강열한 햇빛에 의해 눈이 멀어 버렸다. 세상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사람도 싫었다. 오직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희열을 보내주는 태양만을 보고 싶었다. 해가 중천으로 저물고 다시 밤이 되니 보이지 않던 눈이 살아나서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마 마음의 눈으로 보았던 모양이었다. 다시 아침이 되자 그는 영원한 어둠의 세계 속으로 육신을 남기고 사라졌다.
계유정난으로 고명대신인 김종서와 황보인 등이 척살을 당하였고, 얼마 후에 단종은 수양대군의 강압에 의해 왕위를 넘겨주었다. 몇 년 후에 암암리에 진행해 온 단종복위거사가 김질의 밀고에 의해 병사참극을 유발하였다. 성삼문과 박팽년을 비롯한 충신들이 군기감 연병장에서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김시습 등 의인들은 노들강변에 버려진 그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들언덕에 묻었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영도교에서 정순왕후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여주 이포나루에서 내려 원주 신림 싸리재를 넘었다. 황둔을 거쳐 주천의 군등치를 넘고 다시 배일치에서 소나기재를 거쳐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임금님, 이 불충한 신하의 보잘 것없는 어탕이지만 정성이라고 여기시고 드시옵소서. 부디 마음을 편하게 가지옵소서.”
“오, 그대는 누구신가. 어찌 접근을 금하고 있는 배소를 찾아왔는가.”
“전하, 저는 이 고장의 말직인 호장을 맡고 있는 엄흥도라고 합니다.”
“오우, 다수가 쉬쉬하면서 모른 척 넘어가는데 참으로 가상하기도 하구려. 그대의 신변에 해가 될지를 모르지만 다시는 오지 말게나.”
“전하, 저의 선대로부터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데 어찌 안위를 생각하겠나이까. 저가 힘닿은데 까지 시봉을 할 테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하고 엄흥도는 단종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엄흥도는 홀홀 단신인 어린 단종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세상의 소식을 전하기도 하여 지근거리에서 모셨다. 한 번씩 원호라던가, 조여, 이수형 등이 영월을 방문은 하였지만 먼 거리에서 걱정을 하였지만 그는 직접 알현을 하였다. 단종은 한양에서 헤어진 정순왕후를 잊을 수가 없어서 관음송에 올라가기도 하였고 망향탑을 쌓으면서 그리움을 달래기도 하였다. 영월관아에서는 무서운 칙령을 공포한지라 다들 함부로 강을 건너갈 엄두를 못 내었는데 엄흥도는 죽음을 불사하고 알현하였다. 단종은 정말로 외로워 보였고, 둘째 아들과 비슷한 나이였기에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특히 영도교에서 눈물을 옷깃에 닦으며 배웅하던 정순왕후를 생각하면서 밤잠을 못 이룬다는 말을 듣고 더욱 마음이 아렸다. 그렇다고 한양땅의 소식도 알 수 없어 전해줄수도 없었다.
“그대는 두견새로 태어나서 어디로 갈 참이오.”
“저는 단종 임금이 계시는 유배지로 가고 싶습니다. 그곳에 대한 정보가 있으시면 주십시요.”
“허허, 이것은 누출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대의 충성심에 감동하여 알려주겠소. 영월땅에 있는 청령포에 있다고 나오네요.”
“그리고 정순왕후는 어디에 계신가요.”
“그분은 정업원이라는 비구니스님이 수도하는 곳에 있소.”
“무슨 잘못이 있기에 업을 정화한다는 정업원에 있는가요.”
“허허, 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소. 하늘의 법과 세상의 법이 다르니까 말이요.”
“또 하나 단종임금을 자주 배알하는 신하가 있다고 하던데 누군가요.”
“그분은 엄흥도라는 호장이고 아마 최후까지 임금을 보필할 것이오”하고 그와 판관이 나눈 이야기였다.
두견새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는 영월로 날아갔다. 먼저 청령포에 있는 배소로 가서 단종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지만 축생으로 태어났기에 말을 건넬 수도 없었기에 오직 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밤이 되면 관음송에 앉아서 구슬피 울어댔다. 그 소리는 단종의 귀를 통하여 마음으로 전해졌고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단종은 혼자 우는 것보다는 같이 울어주니까 좀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하였다. 단종은 처음으로 두견새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고 슬픔이라는데 공감을 하였으니 두견새와 동병상련이라고 여기기도 하였다. 그는 다시 북쪽으로 날아가서 한양땅의 정업원으로 가서 나무에 앉아 밤새도록 울어댔다. 잠이 들려고 하던 정순왕후는 애절하게 우는 두견새의 소리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참으로 기이하기도 하구나. 내가 밤마다 임금을 그리워하다가 꿈을 꾸고 있는데 그 꿈속에서 나타난 두견새가 울고 있지 않던가.”
“마마, 그것은 임금님을 그리워하다 보니 꿈에 나타난 것이기도 한데 지금 그 두견새가 울고 있는 게 조금은 의아합니다.”
“그래, 내가 헛꿈을 꾸었다고 여기지만 꼭 무슨 사연을 전하려는 듯 애절하니 잠을 이루지 못하겠구나.”하고 정순왕후가 시녀하고 나눈 이야기였다.
단종이 머무르는 청령포에도, 정순왕후가 살고 있는 정업원에도 두견새가 날아와 울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엄흥도는 단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그 소문을 들려주었더니 깜짝 놀라는 게 아닌가. 자기도 거의 매일 밤마다 우는 두견새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가 궁금하던 차에 그 소문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단종의 마음이 정순왕후에게 전해지고 거꾸로 정순왕후도 그에게 소식을 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뭐라구요. 두견새가 한양에서도 울고 있다는 말이오. 그 두견새가 같은 새이지는 않을 테고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오.”
“전하, 소생이 생각할 적에 어느 억울한 충신의 분신이 아닐까 하고 여겨집니다.”
“허허, 그 말을 듣고 보니 나의 생각과 들어맞는 것 같소이다. 그렇다면 그 충신이 누구인지 참......”
“아마, 청령포와 한양에 나타난다고 하니 충절이 깊은 신하라고 여겨집니다.”
“충성으로 보면 사육신도 있고 또 이름 없는 수많은 의인들이 있지를 않은가요. 그중에서도 누구인지 참으로 그러하네.”
“전하, 저의 집 감나무에도 한 번씩 두견새가 울곤 하던데 그 또한 의아합니다.”
“어허, 그 또한 무슨 소리란 말이오. 필시 무슨 조화가 있는 모양이기도 한데......”
“소생이 생각할 적에는 어느 충신의 혼이 두견새에 깃들어 서로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하고 단종과 엄흥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청령포에서 밤마다 정순왕후를 잊지 못하고 잠 못 이루고 낮이면 관음송에 걸터앉아 한양 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단종이 너무 애처로웠다. 삼면이 강물로 둘러 쌓여 흐르고 뒤로는 육육봉이 버티고 있는 천연감옥에서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는 임금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는 오랫동안 두견새가 되어서 단종과 함께 슬피 울어주었기에 다음으로는 그 사연을 정순왕후에게 전하고 싶었다. 청령포의 유배소에는 출입이 엄중하게 금해져 있고 임금이 글씨를 써 보내면 역모를 꾀한다는 혐의를 받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엄흥도를 통하여 정순왕후에게 보내는 편지를 배달해주고 싶었다.
그는 엄흥도의 집으로 가서 울어대기 시작하였더니 매사를 충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엄호장의 마음과 상통하였다. 엄흥도도 그 두견새가 분명히 죽은 충신의 분신이라고 믿고 울어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의 뜻대로 엄흥도가 단종의 사연을 정순왕후에 전해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엄흥도는 붓글씨가 잘 번지지 않은 기름종이에 단종이 정순왕후를 그리워한다는 글을 조그만 글씨로 간략하게 적었다. 그것을 아주 조그맣게 똘똘 말아 감나무 밑에 놓아두었더니 어느새 그것이 눈앞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 두견새는 그 종이를 목구멍 깊숙이 삼켜서 몇백 리를 날아 정업원 나뭇가지에 앉았다. 밤이 되자 구슬피 울기 시작하여 피를 토하면서 울어댔다.
“왕후마마, 여기에 피 묻은 종이가 떨어져 있는데 무슨 글씨가 적혀 있는 것 같습니다.”
“뭣이라고, 그 두견새가 토해낸 종이에 글이 적혀있다고. 그 무슨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이더냐. 어서 피를 닦아내고 가져와 보거라.”
“예, 저는 글을 몰라 알아보지 못하겠네요.”
“어머나, 이럴 수가. 임금님께서 나한테 안부를 전하는 편지이네. 천지신명이 도우시는 것 같기도 하구나.”하고 정순왕후와 시녀와 나눈 이야기였다.
그 편지 내용은 첫 인사이자 부인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부인!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오. 나는 청령포에 자리 잡아서 매일 같이 관음송이라는 조그만 소나무 가지에 앉아 그대를 그리워하고 있소. 이 편지를 받으면 답장을 주시지요. 멀리서 그대를 그리는 힘없는 남편이 드립니다.” 정순왕후는 그 편지를 보고 기쁘기도 슬퍼기도 하여 말문이 막혔다. 한참 동안 그 편지를 가슴에 꼭 품고 고동치는 마음을 누르니 이윽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정순왕후는 눈물을 닦고 정신을 차리고 난 후 기름종이에 간단하게 편지를 적어 나무 밑에 놓아두었더니 밤사이에 두견새가 삼켜서 가지고 갔다. 그 두견새는 또 몇백 리를 날아서 엄흥도 집의 감나무에 앉아 피를 토하며 울어대었다. 엄흥도가 그 소리에 놀라서 밖으로 나가보니 피 묻은 종이조각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니던가.
“전하, 기뻐하여 주시옵소서. 한양의 정순왕후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잘 있다고 안부를 묻는 글입니다. 오늘만 직접 보여드리고 다음부터는 만약을 위해서 머릿속에 담아 말로 전해드리겠나이다.”
"어허, 그게 사실이란 말이오. 어서 보여 주구려. 참으로 신묘한 일이 다 있군요. 분명 하늘이 감응하여 그 두견새를 보내준 모양이오.“하고 단종과 엄흥도가 나눈 이야기였다.
그 편지의 내용은 애절하였다.
“상감마마, 어찌 소식을 두견새 편에 보내셨다는 말씀이신가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지만 생시가 맞군요. 소첩은 날마다 동쪽에 계신 님을 그리워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시작한 서로 간의 편지는 자주 전해졌다. 정순왕후에게 보내는 편지는 단종의 마음을 담아 엄흥도가 보내고, 정순왕후로부터 받은 편지는 단종에게 직접 보여주지는 못하고 내용과 마음까지 읽어서 대신 전하였다.
“부인, 나는 그대를 그리면서 망향탑을 쌓고 있네요. 그리울 때마다 돌 한 개씩을 쌓으니 벌써 높이가 내 키만큼 된답니다.”
“마마, 저는 매일같이 동망봉에 올라서 님을 그리고 있답니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면 님의 얼굴이 함께 비쳐 온답니다.”
얼마 후 청령포에 큰 홍수가 들어서 단종은 관풍헌으로 유배소를 옮겼다. 단종은 매일같이 관음송 대신 매죽루에 올라서 정순왕후를 그렸다. 두견새는 또 정자나무에 앉아서 밤마다 울어댔다. 너무나 구슬피 울었기에 단종은 자신의 처지를 두견새에 빗대어 자규시를 지었다.
“부인, 나는 청령포에서 관풍헌으로 유배소를 옮겼다오. 매죽루라는 정자가 있어 매일마다 올라 한양땅의 그대를 그린다오. 두견새가 얼마나 애절하게 우는지 잠을 이루지 못하겠소.”
“마마, 저는 또다시 이별하는 꿈을 꾸었답니다. 어떻게 이별하였는데 또 이별을 해야 하는지요. 님의 옥체에 이상이 없기를 하늘에 빌고 있답니다.”
그 두견새는 단종의 슬픈 앞날을 예견하는 듯이 더욱 애절하게 피를 토하며 울어댔다. 또 엄흥도의 집으로 갔다가 한양으로 갔다가 다시 영월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였다. 수많은 편지를 목구멍에 삼켜 넣어 피와 함께 토해내었더니 그의 몸도 서서히 쇠약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금성대군의 단위복위거사가 밀고로 인해 실패하고 대대적인 피의 숙청이 자행되었다. 얼마 후 단종도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곤 어명에 따라 사약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단종의 시신은 청령포 앞 강물 위를 맴돌다가 엄흥도가 수습하여 동을지산에 암장하였고, 엄흥도 일가는 영월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그 두견새도 기력이 다했는지 슬픔을 견디지 못해 그런지 같은 날 죽었다. 그 두견새는 죽었고 그의 혼은 천상으로 올라갔다.
한양에 있는 정순왕후는 두견새가 날아와 울지를 않고 소식조차 없어 불길하게 생각하였다. 그날 저녁에 마음이 심란하여 동망봉에 올랐더니 저 멀리 떨어진 동쪽 하늘에서 시퍼런 불길이 무슨 용트림을 하듯 감도는 것이 아니던가. 순간적으로 무슨 영혼이 승천하는 것 같기도 또 강림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날 밤 정순왕후는 꿈을 꾸었다. 단종이 나타나서 자신은 죽었지만 다시 천제의 부름을 받고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다음 날 꿈을 깨어 일어나 보니 단종이 승하하였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정순왕후는 며칠간을 몸져 누었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비록 단종은 이 세상에서는 죽었지만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국토를 지키고 민중들을 보살핀다고 생각하니 슬픔을 거두기로 하였다.
“어이하여 그대는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는가요. 두견새는 그래도 십 년을 사는데 몇 년을 못살다니 무슨 연유가 있었는가요.”
“판관 나으리, 소생이 단종 임금의 처지가 어찌나 애처롭던지 밤마다 피를 토하여 울었고, 수백리를 몇십 번 오가다 보니 기력이 다해 더 살지 못했답니다.”
“왜, 힘을 아껴 가면서 대충 울지 그토록 처절하게 울었단 말인가요. 하기야 그대 같은 충신이 임금의 처지를 보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요.”
“판관 나으리, 저의 마지막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겠는가요. 다음 생은 조선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십시요.”
“어허, 그대는 변덕도 심하오이다. 전번에는 나의 만류도 뿌리치고 축생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더니만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고요.”
“맞습니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서 단종임금의 자취를 찾아서 추모를 하고 그 역사를 쓰고 싶답니다.”
“지금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시대가 많이 바뀌어 그 옛날의 장면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면 옥황상제에게 건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하고 그와 판관이 나눈 대화였다.
그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고 시대는 한 오백 년이 흐른 현대이었다. 그는 먼저 영월을 찾아서 장릉에 참배를 하였고 엄흥도의 충절을 기렸다. 다시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는 설화가 얽힌 망경사 옆의 단종비각을 찾아서 단종을 기렸다. 단종의 한이 어린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을 펼쳐서 단종유배길을 걸었고 배일치에서 단종이 저무는 해를 향해 절하는 조각상과 만나기도 하였다. 다시 청령포로 가서 관음송과 망향탑을 찾았고 관풍헌에서 단종의 영정에 절하기도 하였다. 몇 번에 걸쳐 노들언덕의 사육신묘를 찾아 충절을 기렸고 노들강변에서 애달픈 사연의 노들강변이라는 민요를 부르기도 하였다.
그는 단종이 사사당한 관풍헌을 탐방하고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에 휘몰아치는 바람을 안고 생각에 잠겨보았다. 그 장소는 단종이 사사당한 곳이기도 매죽루라고 불렸던 정자에 오르기도 정자나무에 앉아 밤새 울어대던 두견새의 울음을 듣던 장소이기도 하였다. 그는 조용히 옛날 매죽루이던 자규루를 올라가서 걸려있는 시현판을 둘러보았다. 그중에는 단종이 지은 자규사와 자규시가 걸려있었고 그것을 읽으니 어쩐지 자신과 연관된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날따라 목이 메고 목줄이 아파왔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갑자기 목이 아픈 게 자규가 피를 토하며 울던 것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다는 말이던가. 그는 영월에 있는 단종의 유적지를 다 돌아보았고 다시 노량진의 사육신 묘를 청계천가의 영도교까지 탐방하였으니 그 인연의 연결고리는 끈끈하기만 하였다.
“선생님, 그런 사유로 시청을 방문하셨는가요. 그 영도교는 세운 지가 오래되었는데 단종임금이 정순왕후와 이별한 장소인지라 예산을 많이 들였답니다.”
“저가 가서 보니 다리의 상판이 넓고 대리석으로 만든 긴 의자가 잘 배치되어 있더구만요. 안내판도 있고 관람객도 간간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대부분은 영도교의 역사를 모르고 그냥 청계천 위에 편하게 쉬려고 오는 것일 겁니다. 요새 사람들이 단종의 역사에 큰 관심이 있겠는가요.”
“맞습니다. 영도교가 큰 글씨로 한글로 그 밑에는 조그맣게 한자로 적혀있던데 한글세대들이 그 뜻을 알아보기가 힘들겠지요.”
“옛날 도성 안의 망자가 가족들과 영원히 이별하며 건느는 다리라는 뜻이 있지요. 단종도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 영도교를 건넜으니 정순왕후와 영원히 이별한 셈이 되지요.”
“참 그건 그렇고, 영도교 바로 위쪽에 다산교가 있던데 혹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이름을 따서 지은게 맞는가요.”
“저가 문화관광과에 근무하여 아는데 다산선생의 이름을 따서 지은 다리가 맞습니다. 영도교에 비해서 상판도 좁고 장식도 없이 허름하게 보이지요.”
“그런데 다산선생의 뜻이 깃들어 있는 듯이 노숙자의 침구류가 쌓여있고 행상들의 리어카도 있기에 힘없는 민중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영도교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저가 생각할 적에는 아마 한강의 흐름과 관계가 있다고 여깁니다. 양수리 인근의 조안면에 다산선생의 생가와 묘소가 있지 않던가요. 단종과 정순왕후의 안타까운 사연이 남한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양수리에서 만나지요. 청계천물이 다산교를 흘러 영도교 밑을 지나가듯이 말입니다.”하고 그가 시청 공무원하고 나눈 이야기였다.
세월이 흘러서 그는 단종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기행문을 발간하였다. 그 책 속에는 태백산 망경사의 단종비각을 대하면서 느낀 감회를 시작으로 광부와 떼꾼의 이야기를 담았고 단양에서 기생 두향과 퇴계의 이야기를 적었다. 다시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물을 따라서 흘러오다가 월악산에서 마의태자의 한을,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장군의 충절을 글에 담았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에서 설악산에서 흘러내려온 오세암의 전설을, 마지막으로 노들언덕의 사육신 묘를 탐방하여 한강의 물길처럼 길고 한스런 역사기행을 마무리하였다. 그 책을 친구의 동생에게 전해주었더니 그 책에 감응하였는지 연락이 왔다.
“성님, 한강역사기행문 책자를 잘 받아 읽어보았습니다. 책 내용 중에서 단종의 유배행렬에 관한 것이 크게 와닿아서 책을 읽은 그다음 날 아침에 바로 자전거로 영도교를 출발하여 영월을 다녀왔습니다.”
“허허, 아우가 어떻게 그 책을 읽고 그 다음날 바로 영월을 자전거로 다녀왔단 말이고. 또 출발점이 영도교라고 하니 무슨 뜻이 있긴 있는 모양이네.”
“내가 성님의 책에 ‘영도교의 이별’이라는 시조를 읽고 갑자기 마음이 발동하여 단종의 유배길을 따라서 갔다왔지예. 특히 배일치에서 단종이 저무는 해를 보고 절하는 조각상을 보고 눈물이 나옵디다.”
“동생도 한스러운 역사에 대해 감응하는 걸 보니 혹시 전생에 단종과 관련된 인물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 내가 보니 차성복이의 후신이 아닌가 생각하네만......”
“아이구, 성님이 정말로 사람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 맞히네예. 나도 단종유배길에서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던 임금님에게 백설기를 몰래 전해준 차성복이게 감동하였는데 말입니다.”하고 그와 친구 동생과 나눈 이야기였다.
그의 친구 동생은 무엇에 감응하여 영도교를 출발하여 단종의 유배길을 다녀왔다는 말인가. 그 동생은 등산을 좋아하고 철인경기 종목인 마라톤은 물론 자전거 투어를 자주 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걷기는 물론 고개를 넘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은 특별한 유전인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자신의 전생은 스스로는 모르는 법이고 남의 전생은 짐작은 할 수가 있는데 그 사람의 취향을 보면 참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이 역사적 사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전생의 업에 따른 것이기도 보아지 않는 인연의 작용에 의한 필연이라고 믿는다.
지금 영월의 관풍헌을 가보면 옛날 매죽루라고 부르던 정자에는 자규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그 정자에는 단종이 지은 자규시가 몇 편 적혀있는데 유배시절에 두견새인 자규가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여 주었기에 지었다고 보인다.
그는 태백산을 시작으로 영월을 거쳐 노들강변까지 가는 역사기행을 하게 된 것은 단종과의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안타까운 시절의 애절한 사연에 잠 못 드는 심경을 드러내어 두견새가 되기도 역사의 방랑자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