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의 환생과 계엄령
노들강변
그날은 추웠고 한강은 꽁꽁 얼었으며 하늘은 눈이 내릴 듯 어두컴컴하였다. 그날따라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나는 택시를 무엇에 끌린 듯이 의무감에 사로잡힌 듯이 어디로 가려고 잡아탔다. 택시기사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에 대답하니 백미러에 비친 기사의 표정이 이상하였다.
“선생님 이 추운 날씨에 어둑한 시간에 왜 그곳으로 가시는지요.”
“혹시, 명당을 찾아다니시는 풍수가이신가요. 차림과 인상을 보니 그렇게 안보이는대요.”
“그곳은 이제는 사칠신묘가 되어버렸는 걸 아시기나 합니까.”
“그 사람들은 충신들이라고는 하지만 속된 말로 줄을 잘못 섰지요. 12.12 때 군인들처럼 줄을 잘 서야지요.”하고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벌써 사육신 공원 앞에 도착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사육신이라고 하면 옛날 그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물레방아가 돌아가듯이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면 되지 왜 한스런 이야기를 만들고 민요를 만들고 난리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서 살아가는 게 자연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고 꾸짖기도 한다.
그 택시기사의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고 줄을 잘 서야 낙오되지 않고 무난히 살아갈 수 있다는 금언이기도 하다. 언제나 사람들은 줄을 서야 하고 그 줄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여 달리면서 부딪히기도 하니 어려운 게 줄 서는 일이다.
나는 사육신묘를 방문하였으나 참배시간이 지나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철책 너머로 눈으로만 예를 올렸다. 내려오는 길은 반대방향으로 갔더니 노들언덕 뒤편에 헌병대가 있었고 정문을 지키는 헌병이 나를 경계하는 듯하였다. 나는 그 헌병이 혹시 나를 끌고 갈까 봐 겁이 났다. 그러나 나는 지은 죄가 없기에 안심하였다. 그는 노들언덕에 기대어 강 건너 저녁 안개에 잠긴 경복궁을 바라보니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네 이놈 너는 어찌하여 별운검으로 짐을 죽이려 했단 말이더냐.”
“그대를 그 자리에서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되오. 백면서생들과 거사를 도모하는 게 아닌데 후회스럽소.”
“뭐라고 나를 못 죽여 후회스럽다고. 백면서생들이란 누구란 말이더냐.”
“그 잘났다고 공자왈 맹장왈 하는 성균관 서생 출신들 말이오이다. 그들은 겁이 많고 입만 살아있는 자들이오.”
“애초부터 상종을 안 하면 될 텐데 지금에 와서 왜 불평을 하느냐. 그건 그렇고 짐이 왕으로 등극한 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되는가.”
“아직도 왕권을 찬탈했으니 불충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씀이오.”하고 군기감 국문장에서 어느 충신과 세조 간에 오간 말들이었다.
수양대군의 내면에는 안평대군에 대한 열등의식이 많았다. 그래서 왕이 되고 싶었다. 그것을 눈치챈 모사꾼과 간자들이 어김없이 냄새를 맡고 달겨들었다. 한명회는 지략으로 권람은 권모술수로 김질은 첩보를 가지고 수양대군과 흥정하였다.
다시 국문장에서 세조의 호통소리가 이성을 잃은 듯하고 그 충신의 굵직하고 낮은 목소리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해는 중천에 떠있고 벌겋게 달은 인두가 사정없이 등어리를 지지고 있었다. 그 살타는 냄새는 분노와 저주와 뒤섞여 봉수대의 말똥 타는 내음을 닮았다. 그 연기는 사방으로 퍼져 나라의 위난함을 알려주는 듯 처연하였다. 세조가 친히 국문을 할 정도로 사태는 엄중하였고 그 가담자들은 승리자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남은 것은 역적이란 이름이요 멸문지화의 응징은 참혹하였다.
“고얀 놈, 너는 무슨 근거로 내가 선왕의 유지를 배반하였다고 하느냐. 나라를 위한 짐의 충정을 모른단 말이더냐.”
“허이구, 나으리. 그대는 참으로 얼굴이 두껍소이다. 단종을 보호하라는 유지를 받던 김종서 장군과 황보인 대감을 살생부를 만들어 척살하지 않았소이까.”
“뭐시라고 고얀 놈. 그들이 어린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권력을 휘두른 것을 너는 모른단 말이더냐.”
그 충신은 세조를 향하여 나으리라고 하면서 약을 살살 올리면서 할 말은 다하고 있었다. 세조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지만 관객들은 웃지를 못하고 지붕 위의 비둘기들이 끼룩끼룩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둘기보다도 용기가 없었고 양심은 무서운 칼바람에 밀려 증발하고 말았다.
“허이구, 주나라 주공의 충절을 알기나 하시오. 조카인 성왕을 사심 없이 보필한 것을 모른다는 말씀이오.”
“네놈이 어찌 무인이면서도 그런 고사를 어디서 주워 들었더냐.”
“허이구, 핑계도 유분수이지 왕권을 찬탈을 한 것이 아니오. 그게 선례가 되어 후대에서 본받으면 어찌 그 책임을 면할 수 있으리오.”
국문장에서 세조는 신하로부터 무슨 역사교육에다가 정신교육까지 받고 있으니 입회하고 있는 공신들에게 영 체면이 서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죽음을 불사하고 진실을 토해내는 그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여기에서 오간 말들 중에 찬탈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 그의 말은 후대에 그대로 적중하였고 또 많은 피를 흘리게 하였다. 예언을 바르게 인식하였기에 대응을 하였고 그 찬탈자는 그 예언을 우습게 보아 실패하였다.
갑자기 북서풍에 흩날리던 낙엽이 얼굴을 때리자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묘역의 담장을 넘어오는 음산한 바람소리를 등지고 어느 노인이 검은 옷을 걸치고 나타나서 말했다.
“허허, 수괴를 응징하려면 철저하고 냉혹하게 하라고 말했지 않았나. 그러니 또 수백 년이 지난 뒤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지 않았는가.”
“선생은 누구 시기에 갑자기 꾸짖고 계신가요. 이런 사태를 예견하였단 말인가요.”
“허허, 천상에서 내려다보니 옛날 역사를 반복하고 있더구만. 계엄인지 쿠데타인지 옛날의 반정과 비슷한 사태말이오.”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 노인은 덩치가 컸고 얼굴은 불그스름하였으며 이마에는 칼자욱이 거미줄처럼 그려져 있었다. 검은 옷에 예스런 국화꽃문양이 수놓아져 있었고 손에는 채찍이 들려있었다. 그 형색은 말을 몰다가 온 모습처럼 보였다. 그는 틀림없는 무인의 자태와 언변을 지녔다.
“현재 사태는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요. 국민들이 선거로써 뽑아준 사람이 아니던가요.”
“사람을 잘 뽑아야 하고 뽑고 나서도 나쁜 생각을 못하도록 감시를 해야 한단 말이오. 왜 주변사람들이 무슨 허물들이 많기에 바른 소리 한마디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닌단 말이오.”
“어느 때 어느 그 수괴를 단호하게 응징을 못했단 말인가요.”
“12.12인가 뭔가 하던 때에 국권을 노략질한 자를 말하는 것이오. 난을 일으켰으면 후일 그 수괴를 극형에 처해야 하는 것이오.”
그 노인은 무슨 훈장선생처럼 회초리로 학동을 때리듯이 꾸짖는다. 그는 분명히 근래에 일어난 사태의 원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통 그 정도의 나이에 속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치고는 의외였다.
지금 시대에 그들은 엉성한 준비와 막무가내 돌진으로 괴상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앞선 정권에서 수괴를 판결만 내려놓고 응징을 않고 사면을 해버린 영향이 컸다. 이번 사태도 주변사람들이 무슨 허물이 많아 비밀의 캐비넷이 열릴까 봐 코 꿰인 소처럼 끌려 다닐 수밖에 없어 제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나온 결과였다.
나는 다시 과거로 들어갔고 그 노인과의 대화는 이어졌다. 내가 사육신묘에 가서 홀렸는지 자꾸 그 시절로 들어갔고 그 노인은 거꾸로 현재로 나와서 현시국을 비판하고 있었다.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오히려 선명하게 그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러시면 어떻게 하였더라면 옳았을까요. 같은 무인의 입장에서 한마디 해주시지요.”
“무인은 오직 나라를 위하여 존재하고 개인의 사병이 아니지요. 세조가 찬탈을 쉽게 한 것은 병권을 장악했기 때문이지요.”
“그 12.12인가 무슨 욕설처럼 들리는 듣기도 민망한 날에 벌어진 것은 김종서 장군을 죽인 계유정난과 같다고 보오.”
그 무인 같은 노인은 현재 사태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거사날짜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혼사나 거사에는 택일을 하는 관습이 있었고, 거사에는 그날의 일진을 분명히 보았을 터이다. 12월은 동지가 들어있는 달이다. 제일 어두움이 강한 날이 동지이고 그날을 지나면 밝은 양이 도래하는 것인지라 음양이 반전하니 반정을 하기 좋은 달인지도 모른다.
“들어보니 그때 문민 대통령의 집안이 멸치죽방을 하고 있었다는데 그 안에 들어온 멸치처럼 한방에 보냈어야 했지요.”
“그때는 민주주의로 가는 길인데 극형을 집행하기는 그렇지 않았나요. 아마 그분도 군인들을 내치기에는 좀 겁이 났을 것 같기도 하고요.”
“허허, 악의 씨앗과 뿌리는 발본색원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그 문민 출신의 선조가 나와 같이 함길도 병마절제사를 지닌 백촌 김문기 선생이 아니던가요.”
“아, 김문기 선생의 후손이 맞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분은 후일 사육신의 반열에 추가로 올려야 한다고 말이 많았는데요.”
“그분의 충절은 사육신 못지않고 이미 삼중신에 올려져 굳이 사육신으로 올릴 이유가 없는데, 천상에서 백촌선생을 만나보니 후손들이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더이다.”하고 그 검은 옷을 입은 노인과 나눈 이야기였다. 그 노인은 유응부 선생이 맞았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풍모와 말투에서 무인의 기질이 느껴졌고 함길도 절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묻지 않아도 실명을 밝힌 셈이다.
“그러면 12.12의 수괴를 극형에 못 처한 게 화근이 되었다는 말이시네요.”
“그렇소. 민간인 출신이 강단이 있게 보이던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데 있는 것이오. 무인들의 세계에서는 거사 실패는 바로 죽음이오.”
유응부는 강경하고 냉정하였으며 타협을 모르는 반골처럼 보였다. 문인이 되려고 하였으나 실력이 달렸는지 모르지만 아마 기질 자체가 그랬을 것이다. 그는 줄을 잘못 섰는지 죽음을 맞이하였고 줄을 잘 섰는지 후대에는 영원히 살아났다. 예나 제나 무인의 길도 줄이요 문신의 길도 줄이니 그 줄은 교수대의 목줄이기도 구원의 생명줄이기도 한 것이다. 유응부는 한번 선 줄을 바꾸지 않고 영원히 그 길을 갔으니 무인의 길은 오직 한길인 것이다.
사실 지금 시국이 유응부가 말한 내용과 판박이이다. 수괴들이 저지른 과오는 본인 스스로 참회해야 하는데 그런 기회를 주지 않고 오히려 관용해 버렸다. 본인에게도 나라에도 다 불행한 일이 되어버렸다. 원조 수괴를 누구로 부를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수괴들은 계엄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취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여야 지금 이 나라가 바른 길로 갈까요.”
“지도자는 유능하고 분별력이 있어야 하오.”
“지금은 세조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그래도 세조는 아는 것도 많아 신하들의 농간에 빠지지 않았고 오직 자신이 통치를 하고 싶어 한 이기심이 많았던 것이오.”
“역사는 후세가 배워서 약을 만들 수가 있고 잘못 배워서 독을 만들 수도 있으니 진정한 군주는 주나라의 문왕을 닮고 참다운 신하는 주나라의 주공을 닮아야 한다고 보오.”
세조는 아는 것은 많았지만 술수가 부족하여 그것을 한명회 패거리로부터 보완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국은 세조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는 것이 없는 권력자에다가 참모들의 술수 또한 천박한 것이어서 단기간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 참모들은 국가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하는 대신 주군의 기분에 맞장구만 쳐주는 광대놀음만 하였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어리석은 주군을 이용만 하고 단물 다 빨아먹은 껌처럼 뱉어 버렸다.
나는 유응부가 굳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국문장에서 말한 내용과 김문기 선생에 대한 이야기에서 단서를 찾아내었다. 나는 유응부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고 묻는다는 게 눈치를 못 채는 바보로 보일 수도 있겠고 그 역시 내가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을 못 알아차린다면 어찌 역사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사관이 될 재목이라고 나에게 말했을 것인가.
그는 사육신공원을 탐방하고 내려오는 길에 사육신 백촌 김문기 선생 기념관이라는 간판이 달린 건물을 보았다. 앞서 유응부 선생이 만고의 충신이어서 삼중신에 등재되어 있는데 왜 후손들이 기필코 사육신에 넣어 달라고 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였었다. 그것이 궁금하여 그에게 물어보았다.
“참으로 후손들이 어리석기 그지없다고 보오. 삼중신은 사육신 보다 윗자리에 배향되어 있지 않은가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되오.”
“정말 그렇네요. 지금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장관자리가 높으니 차관으로 발령 내어 달라는 것과도 같고요.”
“한번 내려진 시호는 거둘 수가 없고 모두 다 국법에 따라 정해진 것인데 소급하여 바꾸어 달라니.....”
“그렇게 되면 유응부 선생께서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데 동의를 하십니까. 무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사육신이지 않습니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바는 아니지만 그 사육신이라는 자리가 무슨 대단한 감투입니까. 이미 죽은 충신들은 어떠한 칭호에도 관심이 없고 순수한 충성만이 있을 따름이요.”하고 그와 유응부가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유응부는 자신이 왜 사육신이 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왜 그토록 사육신에 들어가기 위하여 멀쩡한 높은 지위를 낮추어서 까지, 또 그것이 어려우니까 한 명을 추가하여 사칠신으로 만든 것에 기겁하였다. 전쟁이 벌어지면 무인들은 제할 일을 하게 되고 평화가 오면 지식인들은 한가롭게 입씨름을 하게 되니 전쟁이나 논쟁이나 둘 다 싸우는 것이다.
유응부는 역시 무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고 충신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 보였다. 그에게는 오직 봉사만이 있고 군림이나 허세는 찾아볼 수가 없었기에 지금의 군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권력자의 눈치나 슬슬 보면서 소불알이 이리저리 흔들리듯이 부평초가 우왕좌왕 떠돌듯이 바람에 풍경이 울며 흔들리듯이 주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던가. 국민의 세금으로 받는 높은 녹봉도 그렇고 절대 권력자에게는 비굴하게 약하게 처신하고 부하들에게는 냉혹하고 후안무치하게 대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노들강변에 앉아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물을 바라보며 카페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노들강변 민요를 들었다. 그 노래 가사 중에는 과거는 물론 현재의 세태를 비꼬고 꾸짖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어리석은 자들아 왜 못난 자가 잘난 사람을 해치고 그랬느냐, 망상을 가졌으니 그랬지, 제발 사람이 좀 되거라 하고 비꼬기도 하는 듯하였다.
눈에 보이는 권력과 부는 정치인과 졸부들이 가져도 비판을 면할 수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명예는 그 자체가 명예이기에 가치가 없는 한 진정한 명예가 될 수가 없다. 다시 마지막으로 유응부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선생께서는 여기 노량진 사육신묘에 어떻게 해서 모셔졌는지 알고 계시는가요.”
“나는 군기감 연병장에서 차열형으로 죽고 난 뒤에 천상으로 올라왔다는 걸 판관이 이야기해 주더이다. 김시습이라는 선비가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하더이다.”
“예, 정확하게 알고 계시군요. 여기 묻힌 충신들과 한 번씩 서로 이야기를 나누시고 계신가요.”
“그런데 나는 그런 백면서생들하고는 상종을 하기가 싫소이다. 그들은 어찌 보면 어정쩡하고 무능한 사람들입니다.”
유응부는 이론에는 시비를 가리려고 하고 행동에는 우유부단한 서생들을 못 마땅해하였다. 온갖 논쟁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이파니 저파니 좌니 우니 하면서 끼리끼리 하는 것도 경멸하였다.
“쇠뿔도 단김에 뽑아라고 하듯이 밀어부쳐었야 했는데 흐흐흐.....”
“아마 병권이 없다 보니 거사 후를 걱정한 게 아닐까요.”
“모르시는 소리. 우두머리를 처단하면 그 순간부터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있는데..... 내가 딱 그 순간을 노리고 있었는데.....”
“눈치가 빠른 한명회가 대비를 안 했을까요. 세조가 그를 자신의 장자방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홍문의 연에서 번쾌를 대기시켰듯이 말입니다.”
“오우, 그대께서 홍문의 연을 아시는군요. 그 당시에는 항우가 흉포하여 민심을 잃었기에 항우의 삼촌인 항장이 유방의 편에 섰지요. 거사 당시에는 민심은 세조가 아닌 단종에게 있었으니 그것과 비교하면 아니 되오.”
유응부는 거사가 실패하여 피바람을 몰고 온 데 대해서 그 선비들을 원망한 게 사실이었다. 그것은 애증이었고 분노는 아니었지만 순간의 선택을 잘못하여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못한 걸 천추의 한으로 남겼다. 그렇다고 거사를 기획하고 실행의 단계까지 이끌고 간 충정만은 귀하게 여겼다. 단 하나의 변수인 변절을 막지 못했다. 무인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불안감이 고변으로 이끌고 말았다.
“그러면 앞으로도 같이 계신 나머지 육신들과 대화를 일절 안 할 참이신가요. 비록 거사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고 있지 않던가요.”
“내가 어찌 삐쳐서 대화까지 못할 게 있겠소. 거사는 목숨을 내놓고 하는 각오라야 하고 실패하면 자결할 수 있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오.”
“예, 그렇군요. 무신의 길은 정말로 비장한 길이군요. 목숨을 전장에 내놓듯이 사즉생의 각오가 되어야 한단 말씀이시네요.”
“허허, 이제사 내 말을 바로 알아듣네요. 그런데 선생은 왜 이렇게 집요하게 나에게 묻고 합니까. 혹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라도 되는가요.”
유응부는 내가 집요하게 묻고 또 묻는 것을 보고 묏자리를 보는 풍수가가 아닌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으로 보는 모양이었다. 택시기사가 나를 풍수가로 보았다면 유응부는 사관으로 보고 있다니 사람의 보는 눈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느 한 사람의 말속에서 향기를 맡고 눈빛에서 진심을 읽어서 의인인지 범부인지를 구분해 낼 수 있는 모양이다.
“하하, 선생님 저는 사관은 아니고 역사의 현장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사마천의 사기처럼 조선의 충신열전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응부 열전이라던가 말입니다.”
“허허, 그런 꿈을 갖고 계시는군요. 저 같은 사람이 어찌 그런 열전에 오를 수가 있겠는가요. 내 말고 다른 충신들의 열전을 만드시고 저는 도무지 그런 반열에 오를 수 없는 죄인이니까요.”
“아이구, 선생님께서는 너무 겸손하십니다. 저는 분명히 조선의 무인열전의 앞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고 보는데 말입니다.”
유응부는 조선의 무인열전에 올리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었다. 우선 겸손하다는데서 그릇을 찾을 수가 있었고 풍모에서 장군의 모습을 언행에서 충절의 면목을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완력이 뛰어난 들 덕망과 충정이 보이지 않는다면 무인열전에 올릴 수가 없지 않겠는가. 완력이 넘치지만 흉폭한 도척을 무인열전에 올릴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지 말고 저가 추천하는 분이 있습니다. 김종서장군의 부하인 이징옥 장군에 대한 연구를 하셔서 그분을 무인열전에 올려주시면 어떨까요. 자신을 키워준 김종서장군의 원한을 갚기 위해 거사를 일으킨 그 용맹과 결단을 높이 평가합니다. 단종복위의 포석도 있고요.”
“그분은 난을 일으켜서 역적이라고 후세에 알려져 있지 않나요. 조선의 대표적인 반란의 주인공인데 추천을 하시다니요.”
“허허, 이징옥 장군은 단연코 조선 제일의 무인이 틀림이 없다고 장담하오. 내가 곁에서 보아 아는데 완력이나 용맹은 물론이고 내면의 충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오.”
“선생께서 상하 간의 충성에 대한 깊은 뜻을 담고 있는 말씀을 하셨네요. 저가 생각해도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간 의로운 무인이라고 봅니다. 역사는 이징옥의 난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서도요. 그런데 자신의 상관의 원한을 갚기 위한 거사는 명분이 좀 약하기도 합니다.”
“허허, 인간의 도리를 의리라고 하지 않던가요. 무도한 상관에 대한 의리가 아닌 의로운 상관에 대한 의리가 아니겠소. 형가가 자신을 알아준 연나라 태자의 은혜에 감읍하여 무도한 진시황을 시해하려 역수를 건넜듯이 말이오.”
“선생께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의분이라는 게 정말 가치 있는 것이다고 여겨집니다. 사육신도 그렇고 형가도 그렇고 이징옥도 그런 것 같네요.”
“거기 하나 자기 형인 이징석은 세조 편에 서서 공신이 되었고 그는 역적이 되어버렸지요. 내가 볼 적에는 기회주의자인 이징석이 만고의 역적이라고 보오. 같은 집안에서 충신과 역적이 나오니 조상들이 통곡할 일이지요.”하고 유응부와의 긴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는 유응부로부터 진정한 무인의 길이 어떤 것이며, 공복이 사욕을 위해 배가 고파하는 공복감을 느끼면 이미 공복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진정한 무인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위기 시에 자신의 몸을 던질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며, 권력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출세의 기회를 잡으려는 자는 비굴하며 비겁한 소인배라는 것도 알았다. 공복은 공복일 때가 제일 중요한 자기의 시험대이며 그 공복을 견뎌내고 가치 있는 것으로 공복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진리도 알았다.
노들강변은 노들언덕 아래에 있는 백사장이고 그 노들강변에 얽힌 사연이 애달프다. 나는 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에서 출발하여 종착점인 노들강변까지 흘러왔다. 물이 되어서 흘러내려오기도 구름이 되어서 떠돌다 오기도 바람이 되어서 숨결처럼 숨어오기도 하였다. 한강물은 태백에서 출발하여 굽이굽이 흐르지만 양수리에서부터는 오직 직진을 하고 있다. 여러 갈래의 물길은 휘돌아서 꺾이기도 또다시 좌로 우로 방향을 바꾸다가 종착점에서는 오직 한 줄로 대열을 맞추어 물의 고향인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연이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바뀌는 것은 진리에 수렴하는 과정이기에 탓할 수는 없다. 인간은 자기중심을 지켜서 오직 바른길로 가야 하는 법이니 한번 줄을 섰더라도 잘못 섰다고 판단되면 바꿀 수는 있다. 그것은 한강의 물길이 굽이굽이 이리저리 흐르다가도 종착점을 향할 때는 한 줄로 직진을 하는 것과 같다.
노들강변을 따라 흐르는 한강물은 노들강변이라는 민요로서 인생사를 노래하고 있다. 수많은 재자가인을 실어간 강물의 잘못을 꾸짖고 있다. 왜 아까운 그 사람들을 해쳤느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참회하여 노들강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육신의 한을 실어서 고요하고 영원한 안식처인 바다로 실어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잠결 속에서의 그간의 대화가 머릿속을 희미하게 맴돌고 있는데 무슨 소음에 의해서 정신을 차렸다.
그때 사육신공원 아래쪽에서 웬 사이렌과 같은 확성기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잠시 아래쪽을 쳐다보니 붉은 조끼에 손에 태극기를 든 한 무리의 군중이 긴 줄을 만들며 이상한 큰소리를 외치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또 철길 건너편 여의도 쪽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집단이 파란색 점프에 긴 플래카드를 만장처럼 앞세우고 긴 줄을 만들어, 무슨 선동 같은 글씨가 새겨진 막대봉을 흔들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로의 중앙선을 경계로 줄을 서서 계획된 구호를 연속으로 외치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한쪽이 조용하면 한쪽이 바통을 이어받아 무슨 약속대련 같은 집회를 열심히 열어가고 있었다. 예나 제나 항상 사람들은 줄 서기를 좋아하고 있는 것인가. 그 양편에서 당기는 줄다리기는 어느 한쪽이 이겨서 승리에 도취하다가 얼마 후에 다시 뺏고 빼앗기기도 하지만 그 줄 서기는 지금도 변함없이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