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오란다 사장 노유리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하던 음악 프로그램이 경제 프로그램으로 바뀌면서 청취자들이 방문했다. 아쉬운 청취자와 미안한 디제이와 작가. 그들에겐 단골가게 한 곳이 사라진 게 아닐까. 부드럽고 바삭한 오란다를 만들면서 한 몸처럼 들었던 라디오인데 난데없이 종신보험이니, 암보험을 떠들어대는 걸 들어야 하니 불편하고 어이없고 난감할 것이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디제이가 디제이룸에서 방송을 하는 동안 (현재 9시-11시, 11-12시 두 개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밖에서 세 시간을 앉아 있다 보면 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내가 맡은 ‘임무’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가제트 형사. 온에어지만 편하게 사람들이 오고 가는 분위기여서 해결해줘야 할 일이 있다. USB, 투명테이프, 자, 칼을 찾는 건 걸음마 수준. 문구류 외에 ‘이건 없냐?’고 가장 많이 물어보는 건 물티슈고, 비닐봉지, 빨대, 일회용 밴드 심지어 고난이도 목장갑을 찾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게스트나 청취자가 종종 음료를 가져오거나 보내줄 때면 남는 봉지와 빨대를 큰 쇼핑백에 챙겨두곤 한다. 목장갑은? 그 입 다물라 눈빛에 그래도 회사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친절 반 방울을 넣어 노려본다.
그리고 종이컵을 찾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건네면서도 몹시 아깝다. 못된 심보. 종이컵과 A4 지는 내가 산 것도 아니고 회사 비품을 가득 쌓아둔 곳에 가서 다발로 가져오면 되는데 희한하게 아깝고 주기 싫다. 종이컵과 A지가 그득그득 넘치는 걸 보면 우리 집 냉장고 한 칸이 쿠팡에서 막 도착한 음료 한 상자 낱개들이 꽉 차 있을 때처럼 부자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치사하고 유치하게 종이컵의 여유분은 곳간을 잠가버린 놀부처럼 디제이룸에 숨겨 놓는다.
또 하나의 임무는 동네 이장. 게스트들이 오면 한 주간의 안부와 근황을 물으면서 하하호호 사랑방이 되고, 주말 방송 녹음하러 조금 일찍 나선 디제이가 오거나 친한 후배들이 들리면 낄낄깔깔 단골 카페가 된다. 여기에 일 년에 한두 번, 청취자들이나 게스트 가족들 또는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생들이 오면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되기도 하고, 방송국 견학 안내 도우미가 되기도 한다. 사람에게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인 기질이지만 때로는 기가 빨려 힘에 부칠 때도 있고, 북적이는 기운에 열이 올라 한겨울에 에어컨을 켤 때도 있다. 그런데, 좋은 걸어쩌단 말인가. 라디오를 찾는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