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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자 Apr 08. 2023

신곰, 산이 1

1. 프롤로그 _ AS-014

어스름 저녁, 현강은 자동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성화시 중앙대로를 천천히 달렸다. 머릿속은 온통 돈윤 생각뿐이었다. 

‘대체 어디를 간 거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야?’

짐작이 가지 않았다. 

돈윤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루주 색깔까지 신경 써 바른 입술을 잘근대며 현강은 생각에 골몰했다. 

삼 일 전 현강은 AS-014 고분을 보기 위해 아사강 유역까지 갔지만 고분 입구에서 제지당했다. 용성제국 국립역사연구소 고고인류학 책임연구원 신분증을 제시했지만 소용 없었다. 봉쇄된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냐 묻자 경비병은 황제 직속기관 국토안정사령부 명으로 보름 전부터 봉쇄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아는 게 없는 듯했다. 하지만 무뚝뚝한 경비병의 짧은 대답은 현강의 신경줄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국토안정사령부 명으로 봉쇄했다? 돈윤이 알아낸 것인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봉쇄 이유를 확인해야 했다. 

현강은 날이 밝자마자 국토안정사령부가 있는 용성제국 수도 성화시로 차를 몰았다. 돈윤은 없었다.

“장기 출장 떠나셨어요, 보름쯤 되었나.”

“보름이라고요?”

같은 시기에 진행된 고분 봉쇄와 장기 출장. 예감이 좋지 않았다. 텅 빈 돈윤의 사무실 앞에서 낙담하는 현강이 안돼 보였는지, 짙은 남색 정장에 찰랑대는 단발머리를 한 소 비서는 잠시 앉으라며 차를 내주었다.

“AS-014 고분 봉쇄한 건 아시지요?”

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 비서실장은 무심한 듯 말했다.

“단장님은 그 고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네?”

묻지도 않은 걸 굳이 알려주는 소 비서의 심중을 헤아릴 수 없었다. 소 비서는 생글하고는 덧붙였다.

“단장님께서는 특수임무를 띠고 장기출장을 가셨어요. 언제 돌아오시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죠. 황제시라면 모를까.”

“특수 임무요? 황제 명으로?”

소 비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임무 내용이 무언지는 모른다면서. 

현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임무이기에 이토록 오래 자리를 비운단 말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아스라국과 교전이 벌어지는 마당에 다른 누구도 아니고 소수민족 관리를 도맡고 있는 용성제국 국토안정사령부 수장이 자리를 비웠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건 또 있었다. 평상시 같지 않은 소 비서의 행동. 황제의 명으로 특수임무를 부여받고 장기 출장 중이라면 외부인에게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현강에게 일러주지 않는가.

현강은 멍하니 소 비서를 바라봤다. 소 비서는 또다시 생글하더니 중부권은 홍수가 나서 큰일인데 남쪽 지방은 너무 가물어서 문제라는 둥, 수다스럽게 기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현강은 의례적인 말로 몇 마디 대꾸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을 나와 긴 복도를 걷다 문득 뒤돌아보니 소 비서가 문가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산강의 사람이 있었던가?’

만약 그렇다면 현강이 굳이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소 비서의 언질에 의하면 돈윤의 장기 출장은 매우 위험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돈윤은 AS-014 고분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아 고분을 봉쇄했고, 황제의 명으로 고분과 관계된 특별한 임무를 띠고 어딘가로 간 것이니까. 그 임무는 물론 세계 대전 후 열강에 의해 뜬금없이 식민지가 되고, 살던 곳에서 쫓겨난 아스라족이 아스라국의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용성제국의 잇따른 공격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일과 관계있으리라. 특수 임무는 아스라국을 위협하는 무언가일 테고. 현강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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