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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자 Apr 08. 2023

신곰, 산이

4.합당한 사례

     

갈룬소는 배알이 뒤틀렸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이 산자락 황토처럼 확 갈아엎어지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갈룬소는 땅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전 내내 볕에 달궈진 대지는 뜨끈했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얼굴이 금세 불판처럼 달궈질 판이었다. 이래저래 성질이 돋았다. 갈룬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화는 삭여지지 않았지만 일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갈룬소는 터덜터덜 밭 가장자리로 가 곡괭이를 가져왔다.

퉤!

손바닥에 침을 한 번 뱉고는 곡괭이를 힘껏 내리쳤다.

텅! 

…… 

다시 한 번 내리쳤다.

텅!

“뭐지?”

분명 울림이었다. 땅속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리라. 갈룬소는 삽으로 흙을 떠냈다. 금세 표면이 편편한 돌이 나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은 아니었다. 흙을 좀 더 걷어내자 판석의 일부가 드러났다. 곡선 문양이 보였다.

“뭐지?”

호기심이 일었다. 갈룬소는 서둘러 흙을 걷어냈다. 정체를 드러낸 판석은 기다란 직사각형의 돌판이었다. 갈룬소는 손으로 판석 위 흙을 쓸어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짐승, 곰 문양이 나타났다.

“유물인가?”

아스라족의 땅이었다고 들었다. 아스라족의 흔적인 게 분명했다. 이주하면서 혹시나 땅을 일구다 뭔가가 나오면 반드시 국토안정사령부에 신고하라고 들었다. 그러나 갈룬소 머릿속에 다른 게 떠올랐다. 국립 뭔 연구소에서 나왔다는 박사, 현강. 

박사는 한동안 조수 한 명을 데리고 갈룬소네 밭 주변을 돌아다녔다. 조수 손에는 지도가 들려 있었다. 호기심에 갈룬소가 여자 둘이 뭐 하고 다니는 거냐 물으니 오래전 사람들이 살던 흔적을 찾는 거라 했다. 그러면서 혹시나 옛날 물건이나 흔적 같은 걸 발견하면 연락을 달라는 것이었다. 사례는 톡톡히 하겠다면서. 

“그런 걸 발견하면 관에 신고를 해야지, 왜 당신에게 알립니까? 나는 법을 어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갈룬소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자 조수로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관에 신고야 당연히 하셔야죠. 하지만 신고해 봤자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기껏 일군 땅에서 농사도 짓지 못하게 되죠. 우리에게 먼저 알려 주고 나서 관에 신고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당신들 혹시 도굴꾼이야?”

갈룬소는 두 여자가 미심쩍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박사가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나는 용성제국 국립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에요. 관에 신고하면 국토안정사령부는 내게 발굴을 의뢰할 거예요. 늘 그래 왔으니까. 그런데 현장에 나가보면 늘 뭔가가 이상하더군요. 전문가가 아니라 관이 먼저 손을 대서 그런지 뭔가가 훼손되어 있는 거예요. 연구자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용성제국을 신뢰하지 못하는 갈룬소는 박사의 말에 공감했다.

“뭐든 발견 당시의 모습을 직접 보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죠.” 

박사는 당당했다. 거짓을 말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조수는 다시 말했다. 

“우리는 귀중한 정보를 준 분께는 반드시 합당한 사례를 합니다.”

합당한 사례. 트랙터 때문에 치밀었던 화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갈룬소는 돌판 둘레를 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관 같았다. 돌로 만든 석관. 곰이 그려진 판석은 뚜껑 같았다. 둘레 사방의 흙을 파낸 뒤 갈룬소는 있는 힘을 다해 밀었다. 돌판이 조금 밀려났다. 

“밀리네!”

갈룬소는 신이 나서 돌판 둘레 흙들을 파냈다. 다시 돌판을 밀었다. 돌이 갈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무덤이었다. 

언제 적 무덤인지는 몰라도 허연 인골이 누워 있었다. 인골 주위에는 둥근 물건이 몇 개 놓여 있었다. 하나를 주워 옷에 문질렀다. 옥이었다. 돌판에 새겨진 그림과 같은 모양의 옥곰. 

“돈 좀 되겠는데.” 

갈룬소는 주위를 휘 둘러보곤 급히 주머니에 넣었다. 물건 들어낸 자리가 선명했다. 이렇게 뚜렷하게 표가 남으면 낭패다. 관에 신고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신고할 거라면 그냥 두는 게 후환이 없을 것이다. 고대 유물을 발견한 어떤 사람이 작은 귀고리 한 쌍을 몰래 주머니에 넣었다가 국토안정사령부에게 들켜 귀고리도 빼앗기고 엄청난 벌금도 냈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갈룬소는 쩝 입맛을 다시고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 대신 작은 뼈 조각 하나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박사에게 사례금으로 얼마를 요구하면 좋을까 잠시 생각했다. 적당한 가격이 짐작되지 않았다. 우선은 주는 돈부터 받아 봐야 판단이 설 것 같았다. 갈룬소는 서둘러 돌판을 제자리로 밀어놓았다. 돌판은 걷어낸 황토로 덮어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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