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비밀
사람들이 떠나자 아스라의 숲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 커다란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고 동굴이 파괴되고 산이 무너졌다. 커다란 굴착기 십여 대가 몇 달을 쉬지 않고 땅을 파내고, 트럭에 흙을 실어 어딘가로 보냈다.
난리가 끝났을 때 숲은 사라지고 없었다. 군데군데 흙 퍼낸 자리에는 빗물이 고여 뜬금없는 연못이 만들어졌고, 흙이 쌓인 곳에는 작은 언덕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수백 년 아스란을 품어 주었던 아스라의 숲, 아스라의 산은 없었다. 대신 어마어마하게 큰 붉은 용과 황제의 동상이 들어섰다. 아스라의 흔적이 남김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농부의 트랙터 날 끝에서 인골이 든 석관이 발견된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석관 속의 인물. 굴착기의 날과 삽을 피해 살아남은 자, 수백 년의 세월과 용족의 잔혹한 파괴의 시간을 견디고 조각 뼈로 찾아온 자. 누구일까.
‘왜 내게 왔는가.’
현강은 2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뼈 앞에서 세차게 박동하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갈룬소는 무안했다. 사람을 앉혀 놓고 아무 말도 없는 박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갈룬소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얼마 줄 거요?”
곁에 있던 소물이 대신 대답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석관이 땅속에 묻혀 있었다고 했지요?”
“그렇다니까, 대체 몇 번을 말합니까!”
갈룬소는 이미 한 말을 이젠 조수라는 자가 또다시 물으니 짜증스러웠다. 합당한 사례를 한다고 해서 믿고 왔는데, 아무래도 괜한 걸 트집 잡아 사례금을 주지 않으려는 속셈 같았다.
현강은 툴툴거리는 갈룬소를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무덤을 볼 수 있을까요?”
“뭐요, 무덤?”
“네. 이 뼈를 가져온 무덤.”
갈룬소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조각 뼈만 내밀면 돈을 줄 거라고 예상했는데, 달라는 돈은 안 주고 질문만 해대는 것도 마뜩잖은데 이젠 무덤까지 보여 달라고 하지 않는가.
‘어떻게 하지?’
무덤을 보여주는 거야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기껏 무덤까지 보고 나서, 이건 내가 찾는 유적이 아니다 그러면 낭패였다. 없는 살림에 시간 내고 돈 들여 매령시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거 다시 주쇼.”
갈룬소는 배짱을 부려 보기로 했다.
“뭐든 발견하면 가져오라 할 때는 언제고. 괜히 시간 낭비만 했네. 주쇼, 얼른!”
현강이 빙그레 웃더니 소물에게 눈짓을 했다. 소물이 가벽 뒤로 갔다. 잠시 후 하얀 봉투 하나를 들고 와 현강에게 건넸다. 갈룬소 눈길이 봉투를 따라 움직였다.
“무덤이 어떻게 생겼던가요?”
현강이 다시 물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무덤이야 뭐, 다 그렇지.”
“….”
“아, 돌로 되어 있습디다, 벽이. 넓적넓적한 돌이 벽처럼 서 있는데, 뭐 무너진 것도 있고.”
“…?”
갈룬소는 더듬더듬 발견 당시 상황과 무덤의 생김생김을 설명했다.
“또 … 석판 뚜껑에 곰 같은 게 그려져 있는데.”
순간 현강 눈이 반짝했다.
“곰이라고요?”
“뭐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는 곰 같습디다.”
“그림으로 그려 볼 수 있겠어요?”
“그림이요? 내가 뭔 그림을 그려요? 그냥 웅크린 곰같이 생겼다니까.”
‘웅크린 곰?’
현강은 심장이 떨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내 말을 믿지 못할 거 같아서 작은 거 하나 들고 온 거긴 한데. 그 뼈, 그 무덤 주인 뼈 맞아요. 내가 돈이 없긴 하지만 이런 걸로 거짓말하거나 사기 치는 사람은 아닙니다. 뭐, 내 말을 믿든 안 믿든 그건 그쪽들 자유고. 하여간 약속대로 어서 돈이나 주쇼.”
현강이 갈룬소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덤은 다음에 보여 줘도 됩니다. 그러나 신고는 며칠 기다렸다 하시지요.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요. 당분간은 비밀에 부치시고 갈던 대로 밭을 가세요. 며칠 후에 돌아와 두 배로 사례하겠습니다.”
“두 배요?”
“네, 비밀을 지키고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현강은 갈룬소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갈룬소 손에 잡힌 봉투는 보기보다 두툼했다. 이것에 두 배? 얼마쯤 되려나? 정확히는 몰라도 가론의 땅을 떠날 때 받았던 보상금보다 훨씬 큰 액수임에는 틀림없었다.
“며칠이면 얼마나?”
“열흘. 열흘 후에 제가 가겠습니다. 무덤을 꼭 보고 싶군요.”
“좋소.”
“마을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걱정 마쇼. 집사람한테도 비밀로 할 테니까.”
갈룬소는 당분간 돈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내와 아기와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이런 비밀 정도는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갈룬소는 봉투를 점퍼 안주머니 깊숙이 쑤셔 넣고 사무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