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산이의 입무식
산이는 신들이 깃든 숲, ‘어리(정령)의 숲’ 입구에 섰다. 금방이라도 함박눈을 퍼부을 듯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 빼고는 모든 게 평소 같았다. 숲 입구에 즐비하게 서 있는 영혼나무들은 우듬지마다 사슴이며, 곰, 호랑이, 늑대의 머리뼈를 매달고 어제처럼 바람에 무거운 몸을 흔들고 있었고, 영혼나무들 사이사이 성글게 자리 잡은 선대 단그리(신에게 묻다라는 뜻으로 고대 아스라 부족연합 제사장 명칭)들의 돌무덤에는 지난 바람에 밀려온 마른 낙엽들이 작은 바람에도 와스락대고 있었다. 숲 상공을 맴돌며 꾸웨엑 꾸엑 울어대는 신조는 여전히 바람이 일지 않는 빛나는 커다란 날개로 날갯짓을 하고 있었고. 모든 게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오직 산이 처지였다. 산이는 평소와 다르게 두꺼운 곰가죽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채 서서 산이와 마찬가지로 곰가죽옷을 입고 선 세눈녀와 부족민들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둥둥둥둥 둥 둥둥둥둥 둥.
서른세 명의 젊은이는 땅북을 앞에 두고 둥글게 늘어서서 박자 맞춰 쉼 없이 북을 두드렸다. 북 치는 젊은이들 뒤로 줄 맞춰 길게 늘어선 부족민들은 퍽 진지한 얼굴로 다섯 박째 둥에 맞춰 발을 굴렀다. 북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에 천지가 화답하듯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가거라.”
세눈녀 말에 산이는 한숨을 쉬었다. 곰꿈이라니. 왜 그런 꿈을 꾸어야 하는지 산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눈녀는 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왜 네게 곰꿈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단그리들이 너 또한 곰꿈을 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니 나로서는 그 말을 무시할 수 없구나. 산이야, 곰꿈을 꾸거라.”
“곰꿈이 뭔데?”
“너를 지켜 줄 곰을 만나는 것이다.”
“내겐 고디가 있어. 고디가 나를 지켜 줘.”
아스라의 단그리는 곰꿈을 꾸어야 한다. 꿈속에서 곰을 만나야 단그리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산이는 자기가 왜 단그리가 되어야 하는지, 단그리가 되기 위해 왜 곰꿈을 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산이야. 산이는 곰이야. 곰은 곰꿈 안 꿔.”
세눈녀가 특유의 그 깊은 눈으로 빙그레 웃음 지었다.
“나도 알지. 산이는 곰이지.”
그러나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알았어. 곰꿈 꿀게.”
부족민들에게 세눈녀 말은 신의 말과 다르지 않다. 뭐든 손으로 만지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두 눈으로 본 듯이 알아내는 세눈녀는 단그리 중의 단그리, 한단그리였다. 한단그리는 부족의 지도자이며, 신의 중개자. 그 누구도 꿈에조차 거역을 상상하지 않았다. 세눈녀 말에 따박따박 대꾸하고, 거부하는 이는 오직 산이뿐이었다. 세눈녀는 거부하는 산이를 꾸짖지 않았다. 그러하냐? 그럼 그렇게 하거라, 늘 그렇게 응대했다. 그런 세눈녀가 산이 손을 잡고 곰꿈을 꾸어야 한다고 하니 산이는 거부할 수 없었다.
꾸웨엑 꾹. 꾸웨엑 꾹.
어리의 숲 앞에 서서 연거푸 한숨만 내쉬는 산이에게 신조는 말을 걸고 있었다.
-인간곰. 걸음을 망설이는구나.
산이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인사했다. 신조는 날개를 접고 앉으면 어른보다 키 크고, 검은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면 큰 매 예닐곱 마리보다 더 컸다. 그러나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고, 사람 귀로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신조가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신조를 보거나 듣는 이는 부족민 중엔 오직 산이뿐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숲에 남겨진 산이를 품어 키운 자가 신조였기 때문이었다.
신조는 일반인이 어리의 숲에 접근하면 비로소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냈다. 꾸웨엑 꾸웨엑. 신조의 울음소리는 너무도 크고 날카로워 사람들은 고막이 찢어지는 고통과 공포를 느꼈다. 사람들은 스스로 어리의 숲에 들어가지 않았다. 산이는 달랐다. 어리의 숲에서 나고 자란 산이는 어리의 숲이 집이고 어머니였다. 겁날 것도, 주눅 들 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스라족 단그리가 되기 위해 곰꿈을 꾸러 들어가는 지금은 망설임이 앞섰다.
‘곰꿈을 꾸지 못하면 세눈녀가 실망할 텐데.’
한단그리 세눈녀는 말했다.
“신성한 굴에 들어가 백일 동안 곰처럼 잠을 자면 곰을 만나게 될 거다. 그 곰이 산이의 수호신이다.”
“그때까지 고디 보러 가지 못하나?”
“굴을 나오면 안 된단다. 또한 혼자여야 하지.”
“힝.”
새로운 곰을 만난다니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나 백 일이나 되는 날 동안 고디를 보지 못하고 홀로 지낼 생각을 하니 허전했다. 겨울이 되면서 고디는 자기 굴로 들어가 잠에 들었지만 산이는 고디가 그리우면 종종 찾아가 그 곁에 누워 뒹굴곤 했다. 그러나 이젠 그도 못한다.
눈발이 점점 더 굵어지고 많아졌다. 어느새 마른 땅 위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