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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자 Apr 08. 2023

신곰, 산이

3. 단 하나의 용-갈룬소의 분노


     

갈룬소는 두 시간 넘게 쟁기질 중이었다. 언덕배기 땅에는 생각보다 돌이 많아 쟁기질은 쉽지 않았다. 말이 트랙터지 모터가 없어 사람이 직접 힘으로 밀고 가야 땅이 갈리니 주먹만 한 돌멩이에도 바퀴가 걸려 애를 먹기 일쑤였다. 그래도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마다 마른 땅이 두 갈래로 벌어지고 파 뒤집어지며, 땅거죽 아래 감추었던 속살을 드러냈다. 뜨거운 피로 가득한 인간의 혈관만큼이나 대지의 속살은 붉었다. 아내의 배 속에서 한창 자라고 있을 아기도 이리 붉을까. 생각이 곧 태어날 아기에게 미치자, 갈룬소 입이 절로 벙글어졌다. 없는 살림에 식구가 늘어나니 거친 산자락 땅이라도 일구어 옥수수라도 심으면 살림에 보탬이 될 것이었다. 트랙터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해는 중천에 오를수록 뜨거웠다. 눌러쓴 모자 탓에 제때 증발하지 못한 땀들은 뜨거울 대로 뜨거워진 머리를 한증막으로 만들었다. 사람이나 기계나 쉬어야 할 때였다. 갈던 이랑만 마저 갈고 쉬리라.

턱, 흙을 파헤치던 칼날에 뭔가가 걸렸다. 돌멩이일 것이다. 뒤로 조금 물러났다가 앞으로 밀어 봤지만 바퀴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옆으로 슬쩍 비껴가 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니미.”

갈룬소는 치미는 울화를 뱉듯 욕과 함께 땅바닥에 퉤, 침을 뱉었다.

처음 땅을 일굴 마음을 먹었을 때만 해도 갈룬소는 제대로 된 트랙터를 빌려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빌리는 값이 어지간히도 비쌌다. 수확이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큰돈을 쓰는 건 내키지 않았다. 물론 돈도 없었다. 이주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다 어디에 쓴 건지, 터진 자루에 담긴 쌀 마냥 술술술 어디론가 빠져 달아났다.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땅은 이 언덕배기 땅뿐이었다. 논은 이미 글렀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땅에 밭을 일구어 세 식구가 먹고살아야 한다.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니까.” 

갈룬소는 트랙터 옆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태웠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사달은 자신이 가론족으로 태어난 탓이었다. 

가론족은 힘이 없었다. 용성제국은 용족 외에도 수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지만 주요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개가 용족이었고, 굵직굵직한 기업들도 모두 용족의 것이었다. 용성제국 황제 역시 대대로 용씨 혈통이 잇고 있었다. 용족들을 위한 정책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론족은 누론강 상류 고원지대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살았다. 대대로 그랬다. 살림살이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부족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갑자기 그 땅에서 뭔 자원이 발견되었다며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 후 정부는 용성제국의 백년지계를 위해 가론족이 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거부했다. 당연했다. 하지만 평소 만져보지 못한 돈을 이주 보상금으로 준다고 했다. 그 돈으로 대도시로 나가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집에서 편하게 살라고 했다. 솔깃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도시를 왕래했던 사람들은 죄다 자녀들을 위해 이참에 수도 성화시까지는 아니라 해도 가까운 시왕시로라도 나가 살아야 한다고 했다. 끝까지 이주를 거부한 사람도 있었다. 용성제국 자원개발부는 그들을 놔둔 채 채굴 작업에 들어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산을 무너뜨리는 다이너마이트 폭발음에 남은 사람들은 기겁을 했고, 집과 밭 둘레에는 폐기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원개발부도 국토안정사령부도 더 이상 이주하라 말하지 않았다. 단지 이제 그만 이주하겠다고 한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보상금을 주었다. 처음 제시한 보상금에 절반도 안 되는 액수였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람들은 떠났다. 갈룬소 역시 버티고 버티다가 절반으로 깎인 보상금을 받고 가론의 땅을 떠났다. 

도시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처음엔 장사를 했지만 장사도 해 본 놈이 하는 것이었다. 돈만 말아먹고 때려치웠다. 온갖 멸시와 핍박을 받으며 막노동을 했다. 운 좋게 가론족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났다. 도시에서 한 칸 방에 아이와 복닥거리며 살아갈 걸 생각하니 싫었다. 마침 아사 유역에 농경지를 만들고 새로운 이주민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사의 땅을 헐값에 판다는 것이다. 갈룬소는 공고를 보자마자 저기가 내가 살아갈 땅이구나 싶었다.

터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매산협곡을 빠져나가니 그리 높지 않은 산과 평야가 나타났다. 큰 강이 평야를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었다.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갈룬소는 이런 곳이라면 땅을 일구며 대대손손 살아도 되겠다 싶었다. 

꿈은 잠시였다. 갈룬소가 산 땅은 아사강 주변 기름진 평야에 있지 않았다. 기름진 평야는 이미 용족 농민들의 차지였다. 갈룬소가 분양 받은 땅은 한때 울창했으나 마르고 불에 타 시커멓게 변해 버린 언덕진 땅. 갈룬소처럼 뒤늦게 이주한 가론족 사람들이 배정받은 땅은 모조리 그런 땅들이었다. 기가 막혀 국토안정사령부를 찾아가 따졌다. 국토안정사령부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 값에 어떤 땅을 분양받을 거라 기대한 것인가?”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수중에 남은 돈이 별로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땅을 일궈야 했다.

이주민을 위한 지원책이 있긴 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트랙터만 해도 그랬다. 십수 가구가 사는 마을에 달랑 트랙터 하나를 지원해 주었다. 그나마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빌리게 했다. 빛 좋은 개살구였다. 

“빌어먹을 놈들.”          

2. 단 하나의 용(2)     

갈룬소는 배알이 뒤틀렸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이 산자락 황토처럼 확 갈아엎어지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갈룬소는 땅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전 내내 볕에 달궈진 대지는 뜨끈했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얼굴이 금세 불판처럼 달궈질 판이었다. 이래저래 성질이 돋았다. 갈룬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화는 삭여지지 않았지만 일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갈룬소는 터덜터덜 밭 가장자리로 가 곡괭이를 가져왔다.

퉤!

손바닥에 침을 한 번 뱉고는 곡괭이를 힘껏 내리쳤다.

텅! 

…… 

다시 한 번 내리쳤다.

텅!

“뭐지?”

분명 울림이었다. 땅속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리라. 갈룬소는 삽으로 흙을 떠냈다. 금세 표면이 편편한 돌이 나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은 아니었다. 흙을 좀 더 걷어내자 판석의 일부가 드러났다. 곡선 문양이 보였다.

“뭐지?”

호기심이 일었다. 갈룬소는 서둘러 흙을 걷어냈다. 정체를 드러낸 판석은 기다란 직사각형의 돌판이었다. 갈룬소는 손으로 판석 위 흙을 쓸어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짐승, 곰 문양이 나타났다.

“유물인가?”

아사족의 땅이었다고 들었다. 아사족의 흔적인 게 분명했다. 이주하면서 혹시나 땅을 일구다 뭔가가 나오면 반드시 국토안정사령부에 신고하라고 들었다. 그러나 갈룬소 머릿속에 다른 게 떠올랐다. 국립 뭔 연구소에서 나왔다는 박사, 현강. 

박사는 한동안 조수 한 명을 데리고 갈룬소네 밭 주변을 돌아다녔다. 조수 손에는 지도가 들려 있었다. 호기심에 갈룬소가 여자 둘이 뭐 하고 다니는 거냐 물으니 오래전 사람들이 살던 흔적을 찾는 거라 했다. 그러면서 혹시나 옛날 물건이나 흔적 같은 걸 발견하면 연락을 달라는 것이었다. 사례는 톡톡히 하겠다면서. 

“그런 걸 발견하면 관에 신고를 해야지, 왜 당신에게 알립니까? 나는 법을 어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갈룬소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자 조수로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관에 신고야 당연히 하셔야죠. 하지만 신고해 봤자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기껏 일군 땅에서 농사도 짓지 못하게 되죠. 우리에게 먼저 알려 주고 나서 관에 신고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당신들 혹시 도굴꾼이야?”

갈룬소는 두 여자가 미심쩍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박사가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나는 용성제국 국립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에요. 관에 신고하면 국토안정사령부는 내게 발굴을 의뢰할 거예요. 늘 그래 왔으니까. 그런데 현장에 나가보면 늘 뭔가가 이상하더군요. 전문가가 아니라 관이 먼저 손을 대서 그런지 뭔가가 훼손되어 있는 거예요. 연구자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용성제국을 신뢰하지 못하는 갈룬소는 박사의 말에 공감했다.

“뭐든 발견 당시의 모습을 직접 보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죠.” 

박사는 당당했다. 거짓을 말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조수는 다시 말했다. 

“우리는 귀중한 정보를 준 분께는 반드시 합당한 사례를 합니다.”

합당한 사례. 트랙터 때문에 치밀었던 화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갈룬소는 돌판 둘레를 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관 같았다. 돌로 만든 석관. 곰이 그려진 판석은 뚜껑 같았다. 둘레 사방의 흙을 파낸 뒤 갈룬소는 있는 힘을 다해 밀었다. 돌판이 조금 밀려났다. 

“밀리네!”

갈룬소는 신이 나서 돌판 둘레 흙들을 파냈다. 다시 돌판을 밀었다. 돌이 갈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무덤이었다. 

언제 적 무덤인지는 몰라도 허연 인골이 누워 있었다. 인골 주위에는 둥근 물건이 몇 개 놓여 있었다. 하나를 주워 옷에 문질렀다. 옥이었다. 돌판에 새겨진 그림과 같은 모양의 옥곰. 

“돈 좀 되겠는데.” 

갈룬소는 주위를 휘 둘러보곤 급히 주머니에 넣었다. 물건 들어낸 자리가 선명했다. 이렇게 뚜렷하게 표가 남으면 낭패다. 관에 신고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신고할 거라면 그냥 두는 게 후환이 없을 것이다. 고대 유물을 발견한 어떤 사람이 작은 귀고리 한 쌍을 몰래 주머니에 넣었다가 국토안정사령부에게 들켜 귀고리도 빼앗기고 엄청난 벌금도 냈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갈룬소는 쩝 입맛을 다시고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 대신 작은 뼈 조각 하나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박사에게 사례금으로 얼마를 요구하면 좋을까 잠시 생각했다. 적당한 가격이 짐작되지 않았다. 우선은 주는 돈부터 받아 봐야 판단이 설 것 같았다. 갈룬소는 서둘러 돌판을 제자리로 밀어놓았다. 돌판은 걷어낸 황토로 덮어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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