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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May 29. 2023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시간

운동 결심을 하다

오랜만에 합천 ‘해인사’를 찾았다. 남편과 연애 시절에 수학여행 코스로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처음 가는 거니 17년 만이다. 17년 전 보았던 해인사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 온 듯 낯설었다. 연휴라 많은 사람이 몰려서 주차할 곳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겨우 주차하고 해인사로 올라갔다. 

‘해인사가 이렇게 높은 곳에 있었던가’ 아무리 올라가도 절은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길이 계속 나타났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어서 습도가 꽤 높았다. 평소 등산하지 않는 나에겐 버거운 길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가다가 멈추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나만 헉헉대고 딸들과 남편은 편안하게 걸었다. 길이 가파른 것보다 나의 운동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폐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예전에는 많은 가게가 입점해 있었던지 간판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많은 가게 중 딱 한 곳에서만 장사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와서 연근으로 만든 과자라며 무료 시식을 해보라고 했다. 습도가 높은 탓인지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마른 과자를 시식하려 들지 않았다. 나 역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연휴가 지나면 사람이 뜸할 텐데 물건 하나라도 팔기 위해 아주머니는 최선을 다했다. 뒤에서 오는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아주머니는 그 관심에 함박웃음을 보이며 시식을 권유했다. 몇몇 아이들이라도 과자에 관심을 보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지나 다시 한참 올라갔다. 파전과 막걸리를 파는 가게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파전을 많이 주문했는지 가게 사람들이 주방 쪽을 바라보며 “파전 있어요”라며 소리쳤다. 사람이 많으니 주방 쪽에서 들리도록 크게 말하는 거였다. 파전 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나는 맛있는 파전 냄새를 맡고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해인사로 향했다.      



드디어 해인사에 도착했다. 가파른 계단에 겨우겨우 올라서니 사찰이 보였다. 부처님 오신 날 하루 뒷날이라 절에 등이 가득 달려 있었다. 나도 아주 작은 등 하나를 사서 소원을 적었다. 누군가 소원은 구체적이어야 이루어진다고 했다. 소원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신이 소원을 이루어 줄 것 같아서 적는다기보다는 소원을 적는 행위는 내가 그 소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일종의 결심 같은 거다. 소원에는 결심으로 가능한 소원과 운에 맡겨야 하는 소원도 있는 거다. 내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건강에 관한 소원에는 또 신에 의지해 보고 싶기도 했다. 소원을 종이에 꾹꾹 눌러 담았다. 원하는 곳에 등을 달고 오니 가족들은 팔만대장경을 볼 수 있는 입구에 서 있었다.     


합천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다. 정식 명칭은 ‘해인사 대장경판’이다. 1962년에 국보 제 32호로 지정되었다. 대장경판 앞에는 가까이 가서 보지 못하도록 줄이 처져 있었다. 17년 전에는 나무로 된 창살 안에 대장판이 있었고 창살 가까이에 서서 구경했던 게 기억이 난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많이 찍어서인지 사진 촬영은 가능하나 후레쉬를 터트리지 말라고 했다. 대장경판이 보관되어있는 입구에 들어서면 우산도 바닥에 찍으면 안 된다. 나무가 손상될 수 있으니 미리 통제하는 거라고 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등어졌다. 고려 사람들이 불교의 힘으로 거란군을 물리치기 위한 염원을 대장경판에 새긴 거다. 해인사에서는 여러 번 불이 났다고 하는데 여전히 잘 보관되고 있어 신기하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대장경판에서 기록의 힘을 느꼈다. 기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잘 유지하고 보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작년에 컴퓨터 배터리에 문제가 생겨서 써온 글들이 모두 사라질 뻔했던 일이 생각난다. 기록한 일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여러 곳에 저장하고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인사를 다녀온 후 다리가 쑤시고 아프다. 오랜만에 쓰지 않던 근육까지 단련한 것 같다. 기록을 잘 보존해야 겠다는 마음과 더불어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도 생겼다. 글을 쓰는 것처럼 운동도 조금씩 매일매일 해서 몸과 마음을 함께 단련시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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