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쏭쏭 Mar 28. 2023

지금, 통장에 얼마 있나요?

퇴사와 노후를 마주하는 나의 자세.


  아마도 창구에 앉은 지 1년이 안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때 창구는 좀 바빴던 것 같기도 하고 적당히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주 바빴다면 아무리 옆자리라고 해도 다른 창구에 온 손님에게까지 신경을 쓸 수 없었을 테니, 어쩌면 약간 한가했던 것도 같다.    

 

  옆자리에 오신 손님은 할머니 손님이었다. 고령 고객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 할머니도 통장 확인(통장 잔액, 잔고를 확인한다, 기장을 하고 싶다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신다)을 하려고 오셨었다. 할머니는 통장에 얼마가 남았냐고 물었고 옆자리 선배는 약간의 침묵 후,


돈이 없다,   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당황한 얼굴이 되어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질문이 이어졌다. 만 원도 없느냐, 오천 원도 없느냐, 천 원도 없느냐? 선배는 그 모든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은, 고작 몇백 원.     


  할머니는 몸이 너무 아팠고, 병원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통장에는 돈이 있을 거라고 믿고 집에 있는 모든 돈을 털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온 상태였다. 그렇다. 지금 할머니의 수중에는 집으로 돌아갈 차비조차 없었다.     

  “그럼 나는 집에 어떻게 가!”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울음과 분노와 수치심이 묻어 있었다. 어렸던 나는 낯선 상황에 당황했고, 할머니가 내 앞에 오지 않았음에 감사하였고 동시에 할머니의 처지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내가 할머니에게 차비를 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럼 할머니는 집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창구에는 다른 손님들이 있다. 만약 내가 돈을 한 번이라도 주게 되면 그 할머니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 사람 앞에 가서 돈을 달라고 하면 준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그럼 "왜 저 할머니는 주고 나는 안주냐, 나도 차비 좀 줘라”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옆자리 선배 역시, 그것을 알기에 침묵하고 있었던 거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대답할지 잘 모르겠다.     


  이 문제는 다른 손님에 의해 해결되었다. 돈을 찾던 손님 중 한 명이 할머니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준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내게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았다.     


  그날 나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내 통장들을 전부 꺼내어 잔액을 확인해봤다. 일을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당연히 돈은 별로 없었다. 나는 당시 물론 지금도 농협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랜 백수 생활을 거쳤고, 1인 가구로 산 지도 오래되었다. 한 사람이 사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당장 수입이 끊긴다. 빨리 재취업에 성공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오랜 백수 생활의 기억은 내가 다시 취업 준비생이 되었을 때, 원하는 수준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부정적인 답만 내어놓았다. 백수가 된다면? 앞으로 수입이 끊어진다면?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그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났다.      

  어쩌면 내 미래가 저 할머니의 모습과 같을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갈 차비가 없어서 울어야 하는…….   

  

  그날 이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통장을 꺼내 잔액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돈으로 몇 달을 견딜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고민해본다. 그러고 나면 아, 일단은 다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는데 너무나 많은 돈이 든다. 그것은 지금도 그러하고 나중에도 그러하겠지.      

    

  소득 없이 소비만 해야 하는 노후. 내 앞에 놓여있는 강제적인 긴 백수 시간. 나는 그때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그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을까? 오늘도 그만두고 싶은 욕구로 심란한 마음을 고민하며 당신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통장엔 지금 얼마가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