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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Feb 08. 2024

열네 번째 장은 숭고한 소명 의식입니다.

  안녕하세요?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의 책장 지기입니다. 내일부터 설날 연휴가 시작됩니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제깨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꼬까옷 입고 세뱃돈 받을 생각에 설레던 시절은 벌써 지났지만, 아이들 세뱃돈 주고 부모님 용돈을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작은 선물이라도 받고 싶은 것이 사람인가 봅니다. 아무도 여러분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책장 지기는 커피로 사치를 부렸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리저브 나이트로 한 잔을 준비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메뉴이지만, 거품이 많고 부드러운 맛이 매력적입니다. 책장 지기가 그리 좋아하지 않은 산미가 있다고 하지만, 거품 때문인지 부드러운 맛 때문인지 산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 좋습니다. 설날 연휴를 앞두고 커피로 사치를 부리면서 브런치 스토리의 책장을 넘겼습니다. 며칠 전 문경 화재로 순직하신 소방관분들 때문이었을까요? 커피로 사치를 부리는 것이 양심에 찔렸을까요? 유독 소방관이 직업이신 작가님들의 글이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내가 늘
깨어 살필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당신의 은총으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이 기도문은 1958년 A.Smokey라는 미국의 소방관이 쓴 ‘어느 소방관의 기도’입니다. 그는 아파트 화재 현장에 달려가 어린이 세 명을 발견하지만, 건물주가 설치한 안전장치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자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다짐하면서 지었다고 합니다. 2001년 홍제동 다세대주택에서 방화로 인해 발생한 연립건물 화재 붕괴 사고로 소방관 여섯 분이 순직하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순직하셨던 여섯 소방관님 중 한 분의 책상에 이 시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 - YouTube 인용

 

  이 먹먹함은 무엇일까요? 울컥울컥 하면서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설날 연휴를 앞두고, 사치스러운 마음에 한껏 적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 것입니다. 개인의 부귀영화가 사회적 책무를 전부 잡아먹는 시대에 ‘희생’을 선택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분들의 희생적 삶을, 사명감을, 소명 의식을 감히 저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분들의 희생적 삶을, 사명감을, 소명 의식을 감히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서산 대사의 ‘눈 덮인 들판 길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말로 감히 그분들의 삶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분들이 있기에 우리의 일상이 유지되는 것이겠지요. 우리의 일상은 그분들의 희생의 결과이겠지요.


  오늘의 글은 책장 지기에게 너무 박찼습니다. ‘거룩한 소명 의식’을 주제로 글을 펼치기에 앞서 자꾸 머뭇거렸습니다. 저의 머뭇거림에 큰 용기를 준 것은 한마디의 말이었습니다.


  “엄마, 어느 소방관의 기도로 글 써주시면 안 될까요?”


  아들은 디자인과 학생이지만, 소방관을 꿈꾸고 있습니다. 현재 군 복구하면서 디자인과 공부도 하고, 소방 공부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모순적인 책장 지기인지라 아직은 아들의 꿈을 100퍼센트 응원하고 있지 못합니다. 머리로는 소방관을 꿈꾸는 아들이 대견스러우면서도 마음으로는 걱정스러움이 앞섭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아들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하기를 소망합니다. 책장 지기의 필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는 어느 날, 다시 한번 ‘소명 의식’으로 글을 쓰기를 소망합니다.


 소명 의식이란 부여된 어떤 명령을 꼭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 있는 의식을 말합니다.


  오직 소명 의식으로 설날 연휴에도 우리 사회를 지켜주시는 수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몸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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