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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Feb 01. 2024

열세 번째 장은 아름다움입니다.

  안녕하세요?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의 책장 지기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름다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시나요? 저는 어린아이를 보면 저도 모르게 저절로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 아이의 곤하게 자는 모습, 아장아장 걷는 모습, 그 모든 모습이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아이로 묘사하는 것일까요?


  ‘예쁨’과 ‘아름다움’. 젊음으로 한없이 예쁠 때는 ‘예쁜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꼭 예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각적으로 보기 좋고, 사랑스러운 것이 예쁜 것이라면 아름다운 것은 외적으로 예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코로나로 일상생활이 무너졌을 때 각자 자리에서 고군분투한 많은 사람. 그 사람들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과 치열한 사투를 보면서 ‘아름다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평화로운 한낮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산책하시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이 새겨집니다. 책장 지기도 그 모습을 본받고 싶습니다. 오늘은 이런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면서 재스민 시트러스 차를 준비했습니다. 우롱차에 유자와 레몬, 은은한 재스민 향이 더해진 달콤한 차가 오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런 달콤한 차를 한 모금 머금고, 시가 아닌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책장을 펼치겠습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가매 흰머리가 들어가매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나를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먼 길을 먼저 가는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 슬픔을 넘어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우리의 삶이 언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감히 이별하는 노부부의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기 송구스럽습니다. 60년의 삶 속에 아로새겨진 노부부의 사랑과 정(情)이, 함께 한 삶 속에서 맞닥뜨리니 많은 시련과 아픔이, 이별의 말속에서 느껴집니다. 60대, 70대가 되면 이런 노부부의 애틋함이 저의 삶 속에도 묻어날까요? 에머슨이 ‘아름다운 모습은 아름다운 얼굴보다 낫고, 아름다운 행동은 아름다운 자태보다 낫다.’라고 했습니다. 책장 지기가 소망하는 60대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행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삶이, 지금의 삶이 아름다워야겠지요. 켈러는 ‘미는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죄스럽게 느껴지는 수많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중에도 마음 한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죄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어느 순간 참 부끄러워 감히 꺼내기도 민망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어려서 무엇을 몰라 그랬다고 핑계를 대고 싶으나 대학생이었기에 그 핑계도 참 구차합니다.      


  어느 날, 집에 왔더니 엄마가 안 계셨습니다. 식탁에 메모만 있을 뿐.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그리로 오라는 아빠의 메모였습니다. 대학교 3~4학년일 때 엄마는 유방의 혹을 제거하기 위해  입원하셨습니다.  


  “혹만 제거하는 수술이니까 별거 아니야.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학교와 직장 잘 다녀야 해. 엄마는 아빠가 간호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밑반찬 해 놓았으니 냉장고에서 꺼내 먹고, 밥은 아빠가 밥솥에 해 놓을 테니 잘 챙겨 먹으렴.”


  놀란 삼 남매를 수술을 앞두신 엄마도, 엄마를 돌보시는 아빠도 안심시키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부모님의 애씀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무섭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엄마 병실에 들리는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다행히 엄마의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도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가족끼리 대화하다 옛날 엄마의 수술 얘기가 나왔습니다.


  “아빠가 살면서 그때 처음 밥을 하신 거야. 그전엔 쌀 한 번 씻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 전기밥솥에 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줬어. 그래도 제대로 할지 걱정했어. 그런데 아빠가 처음 밥해서 가져왔는데 제법 하셨더라고. 그래도 자식 밥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엄마 없는 동안 너희 잘 챙겨서 고마웠어.”


  엄마의 말씀을 듣고서야 아차 싶었습니다. 그때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요. 아빠는 엄마 병간호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식사까지 챙기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저희는 아빠의 고생스러움을 몰랐을까요? 엄마, 아빠의 식사를 챙길 생각은커녕 아빠가 챙겨주시는 밥을 잘 먹기만 했습니다. 단지 철없음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죄스럽습니다. 스무 살도 넘은 성인이었지만,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부모님의 걱정은 잔소리, 간섭으로 치부했습니다.  자식 입장에서 너무 부끄럽고, 죄스러운 기억입니다. 부모님은 이렇듯 자신들의 힘든 순간에도 자식을 먼저 걱정하고, 보살핍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요?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은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 ‘못 위의 잠’


  못 위의 잠으로 표현된 아버지의 삶이 오늘은 마음을 더 울립니다. 숭고한 아름다움을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책장 지기의 필력이 한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부모님의 숭고한 사랑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저도 그런 부모님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본받고자 합니다. 오늘은 지난날의 죄스러운 행동을 반성하면서 조금 더 내면이 성장하는 삶을 다짐해봅니다.

여러분의 삶은 숭고한 아름다운 순간으로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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