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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Jan 18. 2024

열한 번째 장은 실존입니다.

-시가 흐르는 철학카페-

  안녕하세요?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의 책장 지기입니다. 청룡의 해가 밝은지 어느덧 보름이 지났습니다. 새로운 해가 되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지언정 끝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여러분은 풍요와 번영의 상징인 청룡의 해에 어떤 목표를 세우셨나요? 새해에 세운 목표를 잘 지키고 있으신가요? 책장 지기인 저는 2024년을 맞아 10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큰 소망도 있고, 일상의 소소한 소망도 있습니다. 새해가 보름 정도 지났는데 한 가지 목표는 벌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실망과 다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처럼 작심삼일이신가요? 보름이 지난 지금도 목표를 잘 지키고 있으신가요?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했고,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르트르와 니체의 말을 위안 삼아 오늘은 디카페인 카페라테를 준비했습니다. 아메리카노의 산미보다 고소한 맛의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책장 지기는 고소한 맛의 아메리카노를 준비하려다 시럽을 듬뿍 넣은 카페라테를 준비했습니다. 달콤한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책장의 첫 페이지를 넘기겠습니다. 


한 마음이 부서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나는 헛되이 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또는 고통을 식힐 수 있다면,
기절하는 지빠귀 한 마리를
그의 보금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나는 헛되이 살지 않을 것입니다.

-에밀리 디킨스, ‘한 마음이 부서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시에서 화자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삶을, 기절한 지빠귀가 둥지로 돌아가는 것을 돕는 삶을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헛되이 살지 않을 것임을 다짐합니다. 신념을 가지고 의미 있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은 존재의 의미일 것입니다. 실존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모든 철학적 입장은 크게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나뉩니다. 유물론에서는 만물은 물질로 만들어져 있고, 모든 행동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말합니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현상은 물질과 에너지의 상호작용의 결과일 뿐인 것이지요. 한편 관념론은 물질계는 부차적인 것이고, 사고와 관념이야말로 실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굳이 철학적 입장에서 실존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증명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질지 몰라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는 의미 없는 것일까요? 어느 날, TV를 보다 해답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업적으로 증명하려는 경향이 많은 것이 대한민국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조건부로 칭찬을 많이 받아요. 엄마 말 잘 들어서 좋아. 웃겨서 좋아. 공부 잘해서 좋고, 운동 잘해서 좋아. 즉 네가 무엇을 해서 좋다는 칭찬을 받습니다. 항상 전제 조건이 네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해야,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습니다. 그냥 전 형이 좋아요. 나는 그냥 네가 좋아. 네가 1등 해서 좋고, 인기가 많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존재만으로도 좋아. 이런 이유 없는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빛이 납니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꼭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가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조건부 사랑이 아닌 이유 없는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전제 조건 없는 사랑과 칭찬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소중함을 마음 깊이 느낄 것입니다. 


어려서 어머니 곧잘 말씀하셨다
얘야, 작은 일이 큰일이다
작은 일을 잘하지 못하면
큰일도 잘하지 못한단다
작은 일을 잘하도록 하려무나

어려서 어머니 또 말씀하셨다
얘야, 네 둘레에 있는 것들을 아끼고 사랑해라
작은 것들 버려진 것들 오래된 것들을
부디 함부로 여기지 말아라

어려서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했다
자라면서도 끝내 그 말씀을 기억하지 않았다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얼른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 한 날도
평화로운 날이 없었고 행복한 날이 없었다
날마다 날마다가 다툼의 날이었고
날마다 날마다가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었다 

이제 겨우 나이 들어 알게 되었다
어머니 말씀 속에 행복이 있고
더 할 수 없이 고요한 평안이 있었는데
너무나 오랫동안 그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 젊은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작은 일이 큰일이니 작은 일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네 주변에 있는 것들이며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라
어머니 말씀의 본을 받아 타일러 말하곤 한다

지금껏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목을 매고 살았다
기를 쓰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만 애썼다
명사형 대명사형으로만 살려고 했다

보다 많이 형용사와 동사형으로 살았어야 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 것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살았어야 했다
내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를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다

당신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애당초 그것은 당신 안에 있었고
당신의 집에 있었고 당신의 가족, 당신의 직장 속에 있었다
이제부터 당신은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나태주, 어머니 말씀의 본을 받아 


  기를 쓰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기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명사와 대명사가 아닌 형용사와 동사형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빛이 나고,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책장을 덮겠습니다. 


꽃은 꽃 그대로가 아름답다 
너도 너 그대로가 아름다움인데 
왜 다른 사람에게서 너를 찾으려고 하는가 
- 딕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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