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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Jan 11. 2024

열 번째 장 모순입니다.

  안녕하세요?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의 책장 지기입니다. 여러분은 너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시면서 지친 마음이 앞서 사색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으신가요? 마음도, 몸도 바쁘기에 책장 한 장을 넘길 여유도 없으신가요? 책장 지기인 저는 그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 오늘은 조금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올타임콜드브루라는 새로운 커피를 준비했습니다. 연유와 생크림, 커피의 조화로 달콤함이 배가 되는 맛이 매력적입니다. 이렇듯 새로운 것은 사람을 매혹시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음도 머릿속도 새로운 것으로 가득해집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던 존재들도 처음에는 이렇듯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함에 젖어 처음 느꼈던 매력도, 소중함도 상쇄되었지만, 처음엔 마음을 온통 뺏겼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봄 길’로 책장의 첫 장을 넘기겠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시련을 극복하고 스스로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화자의 태도보다 시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모순(역설법)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지 된 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라는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온통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은 지금 삶에 너무 만족하고, 어느 날은 지금 삶의 불만으로 가지 않은 또 다른 길을 열망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책장 지기인데, 새로운 도전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합니다. 저의 글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또 저의 글을 많은 사람이 읽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모순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모순(矛 창 모 盾 방패 순)
초나라 때 이야기이다. 장사꾼이 시장에서 창과 방패를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여기 방패를 보세요. 이 방패는 어찌나 단단한지 아무리 세고 날카로운 창이라도 다 막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방패 자랑을 늘어놓고, 다음에는 창을 들고 외쳤다. 
“자, 이 창을 보세요. 이 창은 어찌나 세고 날카로운지 아무리 단단한 방패라도 다 뚫을 수 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구경꾼이 이상하다는 듯이 질문했다. 
“여보시오. 당신 말이 그렇다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
장사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채근담에 ‘탐욕이 많은 사람은 금을 나눠 주어도 옥을 얻지 못함을 한하고, 공에 봉하여도 제후 못됨을 불평한다.’라는 구절이 있듯이 이 모순의 근원은 인간의 탐욕 때문일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현재 삶의 불만으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열망하기도 합니다. 


  교직 생활에 회의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견디고 있을 때 결혼으로 도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인이 소개한 돈 많은 대학 교수와 맞선을 보았지요. 그 사람은 눈을 마주 보면서 대화하지 않고, 자꾸 흘끔흘끔 곁눈질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이 사람과 사귈 수 없겠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의 직업과 부를 놓을 수 없어서 몇 번 더 만났습니다.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사람의 곁눈질을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배가 되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만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정반대의 이미지인 지금의 남편을 만났지요. 약간 속물적인 느낌의 그 사람과 다르게 세속적이지 않으면서 거칠고 고뇌에 찬 남편의 모습에 저는 한눈에 반했습니다. 정말 후광이 비친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괜히 11월일까
마음 가난한 사람들끼리
따뜻한 눈빛 나누라고
언덕 오를 때 끌고 밀어주라고
서로 안아 심장 데우라고
같은 곳 바라보며 웃으라고
끝내 사랑하라고
당신과 나 똑같은 키로
11
나란히 세워놓은 게지
        -이호준, ‘11월’


  이렇게 따뜻한 눈빛을 나누고, 심장을 데우면서 똑같은 키로 나란히 걸어가는 동반자가 배우자이고, 남편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신 분들은 아시겠지요? 열렬했던, 뜨거웠던 사랑이 일상이 되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가끔 미련을 갖습니다. 혹시 맞선남의 곁눈질을 견디었다면 지금 삶이 더 행복했을까? 전혀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갖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10년을 투병하시고, 건강했던 남편이 많이 아팠을 때는 정말 책장 지기의 선택을 원망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평온한 일상에 감사하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가끔 명예와 돈을 탐할 때면 참 모순적입니다. 정말 이런 모순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산물인가 봅니다.   


  오늘은 조금 덜 모순적인 삶을 소망하면서 책장을 덮겠습니다. 




이전 09화 아홉 번째 장 그리움 두 스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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